"구조 출동 늦어도 너무 늦었다" 생존자의 목소리로 전하는 이태원 참사의 그날

유지영 2026. 3. 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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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청문회] 참사 골목으로 휩쓸린 생존자 민성호씨 발언 전문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12일부터 13일 양일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진행됩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생존자 민성호씨가 청문회 시작에 앞서 그날의 현장 상황에 대해 발언한 내용을 그대로 전합니다. <기자말>

[유지영 기자]

▲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청문회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렸다. 유가족들이 현장 생존자 민성호 씨(오른쪽)의 피해자 진술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안녕하세요.

저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 현장에서 생존한 민성호라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어 몹시 긴장되지만, 참사 현장의 기억을 1그램이라도 하고 사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이고, 기록으로 남겨야 된다는 생각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신 영혼들은 잊혀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태원을 참 사랑합니다. 참사 이전에도 자주 갔지만 참사 이후에도 종종 놀러 가곤 합니다. 최근에도 다녀왔습니다. 다만, 참사 전에는 이태원에서 프리랜서로 노래 부르고 친구들과 만나는 장소였다면, 참사 이후에는 고인들을 만나는 목적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이태원 참사 당일에도 예년처럼 친구들과 분장하고 핼러윈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이태원역에 내렸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아 깜짝 놀라며 사진을 찍었는데 오후 7시 29분이었습니다.

10시까지 주점에서 술과 안주로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왔는데 제 의지와 상관없이 참사 골목 방향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나와 같은 방향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골목 위쪽의 세 개 방향에서 사람들이 계속 유입되면서 자동으로 빨려 들어갔고, 꼼짝없이 갇혔습니다.

내가 나온 술집에서부터 참사 현장 방향으로만 사람이 다니는 상황이었습니다. 밀린 곳이 108펍 앞이었고, 앞으로 다섯발자국도 안되는 곳까지 밀렸는데 거의 55분이 걸렸습니다. 10시부터 11시까지 있었고 3차례의 큰 밀림이 있었습니다. 누가 밀었다기 보다는 사람들의 무게가 몇 톤이 쌓이면서 모아진 힘으로 동시에 움직여졌습니다.

'첫 번째 밀림'에서 내리막길이다 보니 조그마한 힘이지만 아래쪽에 있는 사람은 그 작용을 크게 받았을 것이고, 저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상체가 약 10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였어요.

당시 제 위치가 차도 쪽을 등지고 있는 상태였는데 어떠한 밀림에 의해서 차도 반대 방향으로 서서히 회전이 됐고, 나보다 위쪽에 있던 친구의 얼굴을 서로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참사 골목 초입인 삼거리 방향을 쳐다보게 된 건데 차도 방향이었다면 몸이 앞쪽으로 쏠려있기 때문에 얼굴이 누군가에 파묻혔을 것이고 숨쉬기 힘들어서 더욱 위험했을 것입니다.

30여 분이 지나간 즈음 '두 번째 파동'을 느끼면서 몸이 기울어지자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정신을 잃어가는 모습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 역시도 정신도 없고 힘들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볼 새가 없었고, 소리 지르는 소리, 신음소리 그리고 '살려 주세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죽을 것 같아요'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주로 여성들이었습니다.

'세 번째 파동'은 10시 40분경으로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같이 있던 지인이 운 좋게 핸드폰을 머리 위로 들고 있어서 119에 신고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미 신고를 많이 했을 것 같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인사하려고 지인에게 전화번호를 불러주고 통화를 했습니다. '엄마, 나 성호야. 나 죽어가고 있어.' 나중에 들은 얘기로 엄마는 너무 시끄러워서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시 친형과 영상 통화했지만 각도가 틀어져서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았고, 지인도 살아야 하니까 더 이상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고 그냥 끊었습니다.

그 과정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심장부가 눌리면서 숨을 못 쉬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다리가 불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평생 못 걸어도 좋으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숨 건지는 것이 우선이었고, 하늘 보고 기도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2층의 술집에서 사람들이 정신 차리라면서 생수를 뿌리고, 한 병씩 전달 전달해서 마실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저는 손이 갇혀 있다 보니 비교적 손이 자유로운 친구가 먹여 주었습니다.

손을 움직이지 못한 상태에서 당시 장난감 총을 들고 있었는데 한 번 밀리자 자세가 점점 눕는 자세로 기울어지면서 40도를 유지한 채 55분 정도 권총의 모서리가 낭심을 눌러서 고통이 심했습니다.

차도 방향의 내 뒤쪽에서 남자가 '와이프가 숨을 안 쉬어요' 하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어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구나' 하며 빨리 구출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점점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아가미 허파처럼 가쁜 숨을 쉬었어요.

만약에 이때 '4차 파동'이 있었다면 저도 죽었을 겁니다. 이미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헛구역질을 했습니다. 내가 기절하면 죽는다는 공포감이 생기기 시작하자 기절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요. 아버지가 2021년도에 돌아가셨는데 나까지 잘못되면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아빠에게 살려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구조인력이 도착한 시간은 11시경이었던 같아요. 구조되고 바로 찍은 영상이 11시 10분이었습니다. 켜켜이 끼인 상태에서 윗줄부터 한 명씩 구조가 되기 시작했고, 공간이 생기면서 숨 쉬기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갇혀 있고 피가 통하지 않은 채 같은 자세로 움직임 없이 있다 보니 몸이 마비가 됐습니다.

저는 군인이 구조해 주었는데 구조자가 '걸을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고,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아요. 움직이지 않아요'라고 대답하자 바로 저를 들쳐 업고 와이키키 계단 후문에 내려놓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널브러진 채 바닥에 누워 있었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는데 소방관도 있었지만 일반인도 많았습니다.

구조 과정에서 얼굴과 몸이 보라색이 된 사람을 보았어요. 나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영상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이태원에 오지 마라.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게시를 했습니다.

구조되고 걸음을 뗄 수 있게 되자 해밀턴 호텔 뒤길로 이동하는 중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참사 현장을 알지 못한 채 참사 골목 방향으로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었습니다. 나는 신발이 어느 때 어떻게 벗겨졌는지 알지 못한 채 맨발로 삼각지까지 걸어갔습니다.

구조 출동이 늦어도 너무 늦었어요. 구조대가 빨리 오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헬기를 동원해서라도 구조는 빠르게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한 10분이라도 빨랐다면, 100명은 살아남았을 겁니다.

저는 제가 피해자고, 트라우마가 있다고 말하는 게 유가족들에게 죄송합니다. 고인의 유가족은 자식이 죽었잖아요. 죄책감은 아니지만 유족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지켜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무엇보다 심폐소생술을 해서 한 명이라도 살리기 위한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다는 미안함이 있습니다. 유가족에 대해서 따뜻한 시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남모르게 상처와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피해자들에게도 관심의 손을 내밀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제 얘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를 12일과 13일 양일간 서울 중구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연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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