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서 일어난 초유의 사건...극우에게 기회 주는 영국 [권신영의 애틀랜틱 월드]
바야흐로 '극우의 시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배타주의와 인종주의를 극대화하며 세계를 혼란에 몰아넣었고, 유럽에서는 이민자들을 몰아내려는 정당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남미인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선 극우 지도자가 선출되는 모습도 심상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윤석열의 12.3 내란 이후 극우세력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한국의 상황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세계의 극우> 기획은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평화적 질서를 무너트리는 극우의 모습을 추적하며, 이에 맞서기 위한 방법을 모색합니다. <편집자말>
[권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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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 27일 영국 맨체스터 고튼·덴튼 보궐선거 개표 후 열린 선거 후 행사에서 녹색당 당선자 한나 스펜서가 지지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
| ⓒ EPA/연합뉴스 |
"진보는 보다 왼쪽을, 보수는 보다 오른쪽을" 선택한 결과였다. 이는 24년 총선 득표율과의 비교에서 선명해진다. 노동당 지지율은 불과 2년만에 52.8%에서 25.4%로 반토막났고 이탈표는 녹색당으로 이동, 녹색당은 13.2%에서 40.7%로 지지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다른 한편으로 보수당 지지층을 흡수한 영국 개혁당은 지지율을 14.1%에서 28.7%로 끌어올렸다. 지지율이 1.9%까지 떨어진 보수당은 존재감을 상실했다.
양대 정당이 동시에 비틀거리는 희귀 현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 반-엘리트주의(anti-elitist)가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코로나 시기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일으킨 파티게이트(방역수칙 어기고 와인 파티)가 보수당발 촉매제라면, 노동당에는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을 " 최고의 친구(My best pal)"로 지칭했던 피터 만델슨(Peter Mandelson)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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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영국 주미대사 피터 만델슨이 지난 2월 26일 영국 런던에서 금융가이자 유죄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된 미국 법무부 문서 공개 이후, 공직상 부정행위 혐의로 런던 경찰에 체포됐다가 석방된 뒤 자택을 떠나 차에 오르고 있다. |
| ⓒ 로이터/연합뉴스 |
흥미롭게도 만델슨과 클린턴은 1990년대 초 노동당과 민주당이 채택했던 '제 3의 길'을 구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클린턴이 공화당의 친시장주의와 민주당의 사회 복지를 결합해 "신민주당"을 제창했다면, 만델슨은 토니 블레어의 핵심참모로서 '신노동당' (New Labour) 노선을 설계했다.
1953년생으로 옥스퍼드 대학 졸업 후 노동조합 연맹(Trade Union Congress)의 경제부에서 일하다 정치계에 입문, 1992년에 하원에 진출했다. 신노동당 설계부터 블레어 시대를 열었던 1997년 총선 승리까지의 공을 인정받아 블레어 내각에서 핵심 참모로 활약했다. 2004-2008년에는 EU 무역 집행위원 (European Commissioner for Trade)을 역임하고 2008-2010년 고든(Gordon) 내각에서는 산업부 장관 (Secretary of State for Business, Innovation and Skills)을 역임했다.
친재계 노선을 걸은 만델슨은 두 번의 논란에 휩싸였다. 이해 충돌 관계에 있는 재계 인사 제프리 로빈(Geoffrey Robin)에게 이자 없이 돈을 받아 노팅힐에 집을 구매한 사실이 알려져 1998년 블레어 내각을 떠났다. 이후 복귀했지만 2001년 인도출생 억만장자의 영국 시민권 획득 과정에 혜택을 주어 다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블레어식 '신노동당' 노선 연장을 취하는 키어 스타머 총리는 2024년 총선 승리 직후 만델슨을 주미대사로 임명해서, 부적절한 전력에도 그를 트럼프 행정부와의 외교 최전선에 세웠다.
하지만 2025년 9월 엡스타인과 만델슨의 친분이 드러나면서 스타머 총리는 만델슨을 해고했다. 나아가 만델슨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산업부 장관으로서, 엡스타인에게 정부의 보안 정보를 넘기고 모종의 금전 거래를 한 혐의로 체포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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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런던 밀뱅크 타워에 위치한 영국 개혁당(Reform UK) 당사에서 지난 4일 나이절 패라지 당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 ⓒ EPA/연합뉴스 |
엘리트 집단에 대한 불신임, 즉 '반 엘리트주의'는 2020년대 포퓰리즘의 자양분이다. 포퓰리즘이란 사회를 '선한' 서민과 '부패한' 엘리트와의 대립으로 이해하고 기득권에 대항해 서민 전체의 이익을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관이다.
포퓰리즘은 보수와 진보 모두와 결합할 수 있다. 우파와 결합되었을 경우, 애국주의, 민족주의에 기반해 엘리트와 지식인, 특히 외부인들에 대한 적대심을 나타낸다. 좌파 포퓰리즘은 경제 엘리트, 세계화, 자본 권력을 비판하고 해결책으로서 복지를 통한 경제적 재분배와 노동자 권익을 외친다.
2020년대 중반 유럽은 우파 포퓰리즘이 대세다. 2010년대 중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수백만이 몰려들었던 이주자 위기(migrant crisis)가 촉발제였다. 이들은 유럽문화 정체성 상실을 우려하며 반이슬람, 반외국인 성향을 보인다. 특히 자신의 문화를 고수하는 이주자들을 유럽 사회의 다양화가 아닌 동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EU(유럽연합)가 개인이나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다며 세계화의 상징 EU에 물음표를 던진다.
현재 이들은 정치 중앙부까지 진출해 있다. 이탈리아 형제들(Brothers of Italy)의 조르자 멜로니와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는 이미 집권 중이고 독일의 AfD (독일 대안당)는 제 1야당이다.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영국 개혁당과 마린 르펜의 프랑스 국민연합(National Rally)는 지지율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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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2일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야간 경제 정상회의에 참석한 그레이터맨체스터 노동당 시장 앤디 버넘. |
| ⓒ EPA/연합뉴스 |
하지만 2010년대 중반 런던 중심 엘리트 정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지역 사회로 눈을 돌린 그는 2017년 맨체스터 시장 선거에 출마, 당선된다. 시장 재직 8년간 그는 공공성 회복에 무게를 두었다. 버스와 트램 등 민영화된 대중교통을 공공 영역으로 옮기고 무료 버스 승차 대상을 확대한 것이 대표적 예다. 블레어가 전통 노동당의 복지국가와 보수당의 시장주의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았다면, 그는 복지국가 노선과 블레어 노선간의 타협점을 모색한 것이다.
버넘은 또한 인적·물적 인프라 및 정책 결정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런던 중심의 구조를 비판, 지역 사회의 권한 확대와 중앙 정책의 지역화를 지지한다. 지역 사회를 대변하는 행보에 그에게는 '북쪽의 왕(King of the North)'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올해 초 고튼 앤 덴튼 보궐 선거 노동당 후보로 앤디 버넘이 거론되었다. 1906년 노동당 창당 아래 단 한번도 내주지 않았던 지역구지만 지지도에서 극우 영국 개혁당에 밀리고 있었던 터라 거물급 후보가 필요했다. 동시에 그가 차기 총리 후보가 되려면 하원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출마 의향을 내비쳤다.
위협적인 존재였다. 지난해 12월 유력 정치인들을 1:1로 붙여 총리 자격을 묻는 입소스(Ipsos) 설문 조사에서 버넘은 스타머를 상대로 28%대 12%로 이겼다. 영국 개혁당 나이절 패라지와의 가상 대결에서도 33%의 지지도를 얻은 버넘이 29% 패라지를 앞섰다. 반면 스타머와 패라지는 31%로 동률을 이루었다.
그러나 영국 개혁당에 맞설 노동당의 최종 선택은 버넘이 아니었다. 대신 그리스 태생의 이민자 여성 정치인 안젤리키 스토지아였다. 경쟁자 견제에서 온 오판이란 비판을 향해 스타머 총리는 "(버넘이 시장직을 사퇴해서) 불필요하게 맨체스터 시장 선거까지 치를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결과는 완패였다. "대단히 실망스럽다"는 논평을 내놓은 스타머 총리는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영국을 갈라놓는 양극단의 정치세력과 싸울 것"이라며 "노동당이 나라와 공동체를 통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스타머가 현재까지 보여준 사회 통합은 영국 개혁당과의 타협이다. 지난해 난민의 가족 초청 보류와 난민신청자들의 숙소를 호텔에서 군병영 생활관으로 옮겼던 스타머 내각의 샤바나 마무드 장관은 지난 2일 난민 신청자들의 보호 기간을 최대 30개월로 한정지었다.
영국 개혁당은 노동당의 정책에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듯 강경일변도다. 장기 체류자에게 주어진 영주권 제도를 폐지하고 5년마다 비자를 갱신하게 하겠다고 했다. 유럽인권협약 탈퇴를 공약으로 내세운 뒤,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 ICE(이민세관단속국)와 유사한 강제 추방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와 독일 등에서 등장하기 시작, 대량 추방을 의미하는 재이주(remigration) 담론이 도착하기까지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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