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전 총리의 조언 "韓, 욕 먹더라도 필요한 정책 하라" [단독 인터뷰]

한지혜 2026. 3. 1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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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으며 높은 성과를 내는 경제를 가진 나라다.” "
제8회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 2026) 참석차 방한한 제니 시플리(74) 전 뉴질랜드 총리는 1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치와 경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도전적인 환경 속에서도 한국은 사려 깊고 예측 가능한 국가로 여겨진다”며 “성숙한 경제를 가진 선진국으로 국제사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니 시플리 전 뉴질랜드 총리가 1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뉴질랜드 중도보수 성향 정당인 국민당 소속 정치인인 시플리는 1997~1999년 제36대 총리를 지낸 뉴질랜드 최초의 여성 총리다. 복지·연금·보건 장관 등을 거치며 복지 개혁과 공기업 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재임 중이던 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경제 협력과 개혁 정책을 논의했고, 2008년 방한 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책 대화를 나누며 뉴질랜드 공공개혁 경험을 소개했다.

시플리는 2016년 아시아 리더십 컨퍼런스에 이어 10년만에 방한했다.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이 2018년부터 주최해 온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은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중심으로 국제 협력을 논의하는 행사로, 올해 주제는 ‘행동의 시간: 신흥 기술과 글로벌 연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다.

그는 “한국은 아시아의 역동적 성장 흐름 속에서 발전해 왔고 성장하는 거대 시장들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며 “이 점이 한국을 매우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규모는 작지만 중요한 나라라는 점에서 더 용감할 수 있으며 과거에 머무르기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1999년 9월 17일 당시 제7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차 뉴질랜드를 방문중인 김대중 대통령이 제니 시플리 뉴질랜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는 김 전 대통령을 특히 인상 깊은 지도자로 꼽았다. 약 27년 전 그와의 만남을 떠올린 시플리는 “김 대통령은 매우 집중돼 있었고 개혁에 강하게 몰두한 지도자, 진보적이고 개혁 의지가 강한 지도자였다”며 “위기에서 회복으로 가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는 또 “김 대통령은 ‘우리가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지도자였다”며 협력과 실용을 중시하는 리더십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정책 논의도 언급했다. 시플리는 당시 여러 전직 지도자들과 한국 개혁 방향을 논의하며 “개혁은 더 빨리, 더 멀리 가야 한다(go further, more quickly)”는 조언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무엇을 소유하느냐보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느냐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9년 9월 11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 환영나온 제니 시플리 뉴질랜드 총리등과 함께 환영행사인 마오리족의 전통 민속춤 공연을 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시플리 역시 1997년 집권당 내부 지도부 교체를 통해 총리에 오른 뒤 개혁 정책을 중심으로 국정을 이끈 대표적인 여성 개혁가다. 그는 “1990년대 복지·연금 제도를 개편했을 때 매우 인기가 없는 정책이었다”며 “하지만 국민에게 왜 필요한지 계속 설명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 지도자는 인기 있는 정책이 아니라 필요한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합의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성 리더십에 대해서도 그는 “제가 처음 의회에 들어갔을 때 여성은 매우 적었고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며 “여성과 남성이 함께 정책 논의에 참여할 때 더 깊이 있는 결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2010년 11월 2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한국일보와 여성가족부 주최로 열린 세계 여성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지니 시플리(왼쪽) 전 뉴질랜드 총리가 앤 모리슨 전 아시아위크 매거진 편집국장과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기술 변화에 대해서도 그는 인공지능(AI)과 드론 기술이 고용·교육·복지 체계를 동시에 변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분쟁에서 보듯 드론은 전쟁의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며 “농업에서는 혁명적이지만 개인을 겨냥한 공격에도 사용되는 만큼 국제사회가 윤리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AI와 함께 사는 첫 세대이자 그 경계를 도덕적으로 정할 마지막 세대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인간 사회의 핵심은 관계와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AI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고 당신이 안겨야 할 순간에 당신을 안아줄 수도 없다”며 “정치와 사회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위에서 작동한다”고 말했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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