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해녀 연심’, 일본에 간 출가 해녀의 삶은 어떻게 됐을까

장지영 2026. 3. 12.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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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작산실의 마지막 연극 … 연출가 나옥희-극작가 김민정 인터뷰
연출가 나옥희(오른쪽)와 극작가 김민정이 최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일본 오사카로 출가 물질을 갔다가 정착한 제주 해녀 연심과 세 딸들의 이야기를 다룬 ‘해녀 연심’을 선보인다. (c)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이하 창작산실)이 종점을 향하고 있다. 매년 1~3월 열리는 창작산실은 다양한 장르의 신작을 만날 수 있는 축제. 7편이 선정된 연극 장르에서는 ‘해녀 연심’(3월 14~2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이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갈 차비를 하고 있다.

‘해녀 연심’은 제주 4.3 사건으로 남편을 잃고 오사카로 건너간 연심과 그 딸들의 이야기다. 연심은 다섯 살의 둘째딸 수자를 친정에 맡긴 채 여덟 살의 맏딸 화자를 데리고 오사카로 떠났다. 이곳에서 해녀로 일하던 연심은 재혼으로 가정을 꾸리고 셋째딸 기자를 낳았다. 세 딸들과 함께하고픈 연심의 꿈은 가혹한 현실에 부딪힌다.

다큐멘터리에서 출가 해녀 아이디어 얻어

극단 58번국도가 ‘해녀 연심’을 연습하고 있다. (c)극단 58번국도

이 작품에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극작가 김민정과 연출가 나옥희 때문이다. 김민정은 2004년 ‘가족 왈츠’로 연극계에 데뷔한 후 영화의 원작이 된 ‘해무’를 비롯해 ‘너의 왼손’ ‘하나코’ ‘짐승의 시간’ ‘시간을 칠하는 사람’ 등 근현대 한국사의 비극적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희곡들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과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김수근을 다룬 ‘미궁의 설계자’는 2023년 창작산실 초연 이후 여러 차례 재공연되는 한편 김민정에게 ‘차범석 희곡상’을 안겼다.

연출가 나옥희는 낯선 이름이지만, 사실은 배우 고수희가 연출가 겸 번역가로 활동할 때 사용하는 예명이다. 고수희는 1999년 연극 ‘청춘예찬’으로 데뷔한 후 탄탄한 연기력으로 무대에서 사랑받아온 배우다. ‘경숙이, 경숙아버지’로 2006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으며, 한일 합작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2009년 한국인 최초로 요미우리연극상 여배우상을 받았다. 또한 영화계에서 ‘친절한 금자씨’ ‘써니’ ‘괴물’ ‘타짜’ 등에 출연해 신스틸러로 각광받았다. 2023년 극단 58번국도를 창단하더니 직접 희곡을 번역하고 연출까지 맡고 있다. 그동안 접점이 없었던 김민정과 나옥희가 ‘해녀 연심’으로 의기투합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녀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을 보다가 ‘출가 해녀’에 대해 알게 됐어요. 출가 해녀는 돈을 벌기 위해 제주도 밖으로 물질하러 나간 해녀를 뜻해요. 일본 등 외국에도 갔더라고요. 연극으로 만들기에 흥미로운 소재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중단됐지만 2023년 당시 창작 전 단계의 연구, 리서치, 쇼케이스를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의 과정’에 신청했고, 저희 극단이 운좋게 선정됐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같이 작업하고 싶었던 김민정 작가님에게 연락해서 함께하자고 제안했죠.”(나옥희)

해녀 엄마와 한국·북한·일본 택한 세 딸의 이야기

연출가 나옥희(왼쪽)와 극작가 김민정이 최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일본 오사카로 출가 물질을 갔다가 정착한 제주 해녀 연심과 세 딸들의 이야기를 다룬 ‘해녀 연심’을 선보인다. (c)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나옥희 대표의 연락을 받았을 때 저 역시 흥미로운 소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극단 58번국도 단원들과 부산, 제주도, 오사카로 출가 해녀 리서치를 다녔습니다. 취재한 이야기가 정말 많았지만, 고민 끝에 오사카에 자리잡은 출가 해녀 엄마와 세 딸들의 이야기로 담아내기로 했습니다. ‘해녀 연심’은 큰딸은 북한에, 둘째딸은 한국에, 막내딸은 일본에 둔 엄마가 임종을 앞두며 벌어지는 이야기에요.”(김민정)

얼핏 줄거리를 들으면 ‘해녀 연심’ 속 세 딸의 이야기가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이 한일 양국에서 여러 차례 선보인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1969∼71년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 근처에서 곱창구이집을 운영하는 용길네 가족을 그렸다. 재일교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 속에 외아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다 자살하고, 세 딸은 각각 배우자와 함께 한국과 북한으로 떠나거나 일본에 남는 선택을 한다.

“재일교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오사카에서 취재한 이야기들 자체가 ‘야끼니꾸 드래곤’ 속 이야기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요. 제주도 출신이 많은 것이나 일본에서 선택한 직업 등 재일교포들이 비슷비슷하게 겪었던 일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 작품은 ‘야끼니꾸 드래곤’과 달리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한국, 북한, 일본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맞이한 결말을 보여주려고 합니다.”(김)

“저희가 재일교포에 대해 취재할 때 정말 큰 도움을 준 분이 있어요. 재일교포 3세 연극인 김기강 씨인데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재일교포의 삶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온 분입니다. ‘해녀 연심’에 배우로 출연하는 한편 다른 배우들의 일본어 발음 교정도 맡고 계세요.”(나)

나옥희, 정의신의 작품 출연 계기로 일본어 습득

배우 고수희가 2008년 출연한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 예술의전당

공교롭게도 나옥희가 극단을 만들고 연출가로 나선 출발점에는 재일교포를 다룬 정의신의 작품에 출연한 인연이 있다. 배우 고수희는 2006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연출가 워크숍에서 일본 연출가 마쓰모토 유코가 연출한 정의신의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에 출연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던 그는 2008년 ‘야키니쿠 드래곤’에 캐스팅됐고, 극 중 일본어 대사를 외우며 빠르게 일본어를 익혔다. 이후 ‘야키니쿠 드래곤’의 2011년과 2025년 재공연에도 출연한 그는 일본어를 꾸준히 공부하며 일본 희곡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일본 희곡을 직접 번역해서 연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극단 58번국도를 창단할 때는 제가 연출을 할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제작비가 적어서 외부에서 좋은 연출가를 데려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30년 가까이 무대에 섰던 제가 하게 됐어요. 대신 제가 연출하는 연극에선 절대로 배우로 출연하지 않는 게 철칙입니다. 주변에서 예명 ‘나옥희’에 대해 많이 물어보시는데, 부모님과 남편의 이름에서 한 자씩 가져온 거에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셈이죠.”(나)

김민정, 일본 제작사가 신작 위촉하는 한국 극작가

극작가 김민정에게 차범석희곡상을 안긴 연극 ‘미궁의 설계자’. (c)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나옥희만이 아니라 김민정도 일본과 인연이 깊다. 그는 한국 극작가로는 유일하게 일본 제작사로부터 작품 위촉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일본의 중견 연극 제작사 나토리 사무소는 2018년부터 한국 희곡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는데, 프로듀서인 나토리 도시유키 대표가 영화 ‘해무’를 보고 원작자 김민정에게 연락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근현대사에서 소재를 가져온 김민정의 희곡에 큰 매력을 느낀 나토리 대표는 이후 한국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동안 나토리 사무소에서 일본 초연 또는 라이선스 공연으로 무대에 올라간 김민정의 작품은 ‘갈애’ ‘짐승의 시간’ ‘미궁의 설계자’ ‘마지막 면회’ 등이 있다. 올해는 2차대전과 오키나와 사람들을 다룬 김민정의 신작 ‘빨간 기와집의 여자’(가제)을 제작해 도쿄와 오키나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나토리 대표님이 한국 지인들을 통해 저를 수소문해서 찾은 뒤 신작을 제안했을 때 경계와 의심이 먼저 들었어요. 게다가 저를 포함해 많은 한국인은 일본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잖아요. 하지만 꽤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나토리 사무소는 제 연극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파트너가 됐죠.”(김)

6월 조세이 탄광 다룬 한일 합작 연극 ‘갱구’도 함께

극단 58번국도가 ‘해녀 연심’을 연습하고 있다. (c)극단 58번국도

‘해녀 연심’을 만들며 친밀해진 나옥희와 김민정은 올해 6월 한일 합작 연극 ‘갱구’도 함께한다. 나옥희의 극단 58번국도와 일본 극작가 겸 연출가 시라이 게이타가 이끄는 극단 온천드래곤은 올해와 내년 양국을 오가며 합작 공연을 선보인다. 먼저 올해는 김민정의 희곡을 시라이가 연출하고, 내년에는 일본 극작가(미정)의 희곡을 나옥희가 연출한다. 연극 ‘갱구’는 1942년 일본 야마구치현 조세이 해저 탄광에서 무리한 채굴로 갱도가 붕괴돼 조선인 136명을 포함한 총 183명이 사망한 사건을 다룬다. 80년 넘게 방치됐던 조세이 탄광 수몰 사건은 최근에야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연극 ‘갱구’는 6월 1~14일 도쿄 자코엔지 극장과 26~28일 서울 꿈빛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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