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입증” vs “조정호 동맹 덕”… 메리츠 김용범 이례적 5연임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이 사실상 5연임을 확정했다. 오너 일가가 아닌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장기 집권에 성공한 것은 금융권에서도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김 부회장 취임 이후 메리츠금융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성과 중심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대주주인 조정호 회장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결정을 잇따라 내리며 ‘오너가 지배력 강화’를 뒷받침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뒤따른다.
메리츠금융은 오는 26일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김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김 부회장은 추후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로도 다시 선임될 예정이다. 임기는 2029년 3월까지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김 부회장에 대해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 대표를 역임하는 등 그룹 대표이사로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1963년생인 김 부회장은 한성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메리츠종금증권 사장으로 합류한 뒤 2014년부터 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또 2015년부터 2023년까지 9년 동안 메리츠화재 대표도 지냈다.

김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은 이후 메리츠금융 실적은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2015년 4421억원에 불과하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연결기준 2조3501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말 매출액은 35조2574억원, 영업이익은 2조8727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총자산은 135조4580억원으로 늘었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2.7%로 업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김 부회장은 금융권에서 대표적인 실용주의자로 통한다.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변화를 주저하지 않는 경영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성과 중심 보수체계를 직접 설계하는 등 내부 관리 능력 역시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런 경영 성과를 감안하더라도 대표이사직을 5차례나 연임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의 임기는 보통 3년 수준이다. 연임 횟수에 대한 법적 제한은 없지만, 10년 이상 재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이후 4연임에 성공한 사람은 김정태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 라응찬 전 신한금융그룹 회장뿐이다. 3연임(9년 재임)을 한 윤종규 전 KB금융그룹 회장도 장기 집권 사례로 분류될 정도다.
김 부회장의 5연임 배경에는 조 회장과의 사실상 ‘동맹 관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금융권 안팎에서 나온다. 메리츠금융 대주주인 조 회장은 5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2023년 2307억원, 2024년 1320억원 등 2년간 3600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받았지만 세금은 내지 않았다. 모두 ‘감액 배당’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감액 배당은 영업이익이 아니라 자본금을 줄여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을 뜻한다. 세법상 투자 원금 반환의 성격으로 분류돼 일반 배당과 달리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조 회장의 감액 배당 수령 사례가 알려지자 국회와 정부는 제도 정비에 착수했다. 지난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감액 배당에도 일반 배당과 동일하게 과세하는 내용의 이른바 ‘조정호 방지법’을 발의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감액 배당 과세 체계를 손질하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이 지난 1월부터 시행되자 메리츠금융은 돌연 지난해 결산 배당을 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회사 측은 최근 주가 흐름이 좋지 않은 데다 기업가치 제고와 주가 관리 측면에서 자사주 매입·소각이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도 지난달 11일 컨퍼런스콜에서 “자본정책의 변화라기보다 현재 주가 수준과 주주가치 제고 효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 결과 조 회장의 현금 배당금은 ‘0원’이 됐다. 대신 주주환원 재원 전액이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투입되면서 오히려 조 회장의 지분율은 자연스럽게 상승하게 됐다. 결국 지배력은 더 강화되는 구조가 된 셈이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세제 정책 변화 시점과 맞물려 회사의 주주환원 기조가 급변한 점이 석연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 부회장은 업계에서도 경영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다”면서도 “조 회장에게 유리한 방식의 결정을 여러 차례 내리면서 더욱 중용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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