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포괄케어, 쓰러진 옛 올림픽 유망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정헌 2026. 3. 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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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돌봄, 현장에 가다]
<1부> 돌봄의 정석 ⑥
<上> 韓 통합돌봄의 ‘모델’ 일본 ‘지역포괄케어’
젊은 시절의 이마이즈미 다케시(위부터)씨가 1964년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링 종목을 훈련하는 모습. 2021년 식도암 진단을 받은 뒤 와상 상태에 빠졌던 다케시씨가 건강을 되찾은 뒤 지난 1월 22일 자택 앞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다케시씨는 매주 3회 하루 2~3시간씩 인근 진료소 4층 실내 운동장에서 체력 단련을 한다. 다케시씨 제공, 이정헌 기자


“아사쿠사의 밤은 깊어가고 종소리가 잔잔히 울릴 무렵이면…”

지난 1월 22일 일본 도쿄 다이토구 자택에서 만난 이마이즈미 다케시(86)씨는 기관 절개로 난 목의 구멍을 손으로 막은 채 194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아사쿠사의 노래(浅草の歌)’를 부르고 있었다. 불과 3년 전 일어나지도,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와상 상태에 빠졌던 그에게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모습이라고 가족들은 입을 모았다.

22세 때 도쿄체육협회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다케시씨는 1964년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국가대표 후보군에 들었을 만큼 촉망받는 선수였다. 특히 두 팔로 버티는 링 종목이 그의 장기였다. 지상 2m 높이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와 과감한 스윙 동작으로 관중의 환호를 받곤 했다. 이랬던 그조차 세월과 질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2021년 9월, 81세의 다케시씨는 식도암을 진단받고 삶이 빠르게 무너졌다. 식도 절제 수술을 받은 뒤 반(半)신경마비, 연하장애(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장애)가 생겨 결국 기관 절개까지 했다. 입원 5개월 만에 퇴원했지만 그는 집에서 누워만 지내는 와상환자가 됐다. 당시 그의 개호보험(일본의 장기요양보험) 등급은 최중증에 해당하는 ‘요개호 5등급’이었다.

가족의 삶도 뿌리째 흔들렸다. 딸 히카리씨는 아버지 간병에 전념하기 위해 일을 그만뒀다. 일본의 사회문제로 지적되는 ‘개호이직(介護離職)’이다. 당시 가족들의 기억 속에 다케시씨는 “죽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정작 다케시씨 본인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누워있게 된 이유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케시씨를 일으켜 세운 건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이었다. 오는 27일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통합돌봄의 근간이 된 제도다.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은 기초자치단체(시정촌) 단위에 설치된 ‘지역포괄지원센터’와 ‘자택(일본 표기로 居宅·거택)개호사업소’가 함께 대상자의 돌봄계획(케어플랜)을 수립하고 필요한 의료·돌봄 서비스를 연계, 제공한다. 제공되는 서비스는 방문간호, 방문재활, 방문목욕, 생활지원 등 9가지다. 개호 등급(1~5등급)별로 월 5만5000엔~39만8000엔의 서비스 이용료가 정해지는데 대상자는 이 금액의 10%만 부담하면 금액 한도 내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다케시씨를 위한 지역포괄케어도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퇴원 직후 다이토구 소재 지역포괄지원센터의 의뢰를 받은 케어매니저 야마다 리에코씨(자택개호사업소 ‘웰빙21’ 소속)는 다케시씨만을 위한 케어플랜 마련에 착수했다. 다케시씨에겐 주 1회 방문진료와 주 3회 방문재활, 하루 2차례 방문간호가 이뤄졌다. 다케시씨와 그의 가족은 “과거처럼 집 밖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고, 다케시씨의 모든 조력자가 이를 목표로 삼았다.

기자가 다케시씨의 집을 찾았을 때 그의 외출에 장애가 될만한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대문 앞부터 집 내부는 온통 다케시씨를 위해 개조된 상태였다. 현관 앞 계단에는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얕은 경사로가 설치됐고, 거실에는 전동침대가 놓여 있었다. 일본에선 지역포괄케어 대상자가 비용의 10% 정도만 부담하면 거동용 리프트부터 자동배설처리장치, 욕창방지용품 같은 복지용구를 최대 13종까지 대여할 수 있다.

다케시씨는 와상 시절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언어치료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재활이었다고 말했다. 식도 절제로 목에 구멍이 생긴 그는 말을 할 수도, 음식을 삼킬 수도 없었고, 인지 기능까지 빠르게 감퇴하고 있었다. 이에 언어치료사는 젤리를 이용한 삼키기 훈련(연하 운동)을 계속했고, 기도를 눌러 말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2달이 지나자 걸쭉한 된장국, 소면 등을 먹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다케시씨의 건강은 호전됐다. 다케시씨는 평소 좋아하던 ‘아사쿠사의 노래’를 부르며 달라진 목소리에 적응해갔다.

다케시씨의 케어플랜은 그의 상태에 맞춰 유연하게 바뀌었다. 케어매니저 야마다씨는 다케시씨의 외부 활동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2024년 1월 방문재활을 통원재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다케시씨는 인근 다이토진료소에 매주 3회(월·목·토) 통원하며 오전 9시부터 11시30분까지 2~3시간 운동했다. 이제는 진료소 4층에 마련된 33m 길이의 트랙을 10바퀴 이상 돌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다케시씨는 “진료소에서 만난 94세 할머니를 보면서 나도 10년은 더 운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다케시씨를 담당한 왕진 의사 치바씨(소화기내과 전문의)는 약물과 환경 조절에 각별히 신경 썼다. 다케시씨의 기도가 외부에 노출된 상태라서 습도 및 온도 관리가 중요했고, 알레르기 반응이 많아 약물과 수액량의 미세 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치바씨는 지역포괄케어의 개별적인 서비스를 잇는 건 사람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케시씨가 병원에서 치료, 재활만 받았더라면 이만큼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다케시씨 곁을 지킨 가족과 헬퍼(요양보호사), 간호사, 케어매니저 등이 수시로 알려준 정보가 치료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케어매니저 야마다씨는 “다케시씨를 보면서 그동안 현상 유지가 최선일 것 같은 노인도 지역포괄케어를 통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당사자가 회복할 의지를 갖도록 조력하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한다면 한국의 통합돌봄도 더 큰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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