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체크 포인트 [스페셜 리포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최종 문턱을 넘었다.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할 경우 1년 내 소각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 배경으로 지목된 기업 지배구조 불투명성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시장 공정성을 회복하고 주주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한다는 목적이다.
그동안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는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상장사 중 약 66%인 1723개 회사가 자사주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사주 보유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자사주가 어떤 방식으로 처분됐느냐다. 처분 목적과 대상에 따라 지배구조를 왜곡하거나 주주가치 훼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장사가 자사주를 처분한 공시는 총 647건으로 집계됐다. 유형별로는 임직원 보상이 47%로 가장 많았고, 특정인·특정회사 대상 처분이 26%, 교환사채(EB) 발행이 18% 순이었다.
이 중 특정 대상 처분에는 최대주주와 최대주주의 직계비속, 특수관계인이나 계열회사를 상대로 한 거래가 포함된다. 최대주주 본인이나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에게 자사주를 처분하면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고, 주주가치 훼손 문제가 발생한다. 처분 대상을 구체적으로 공시하지 않거나, EB 발행 등을 통해 우호지분을 늘린 사례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자사주의 배당권과 의결권이 인정되지 않고, 처분 시 주주의 우선권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자사주를 제3자에게 처분하는 경우에는 주주총회 결의 등 별도의 절차를 요구한다. 그러나 기존 국내법은 자사주를 처분할 때 주주 보호 장치가 미흡해 불공정한 지배권 강화를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지적됐다.
이번 3차 상법 개정안 통과로 기업의 자사주 소각이 가속화될 환경이 조성됐다. 지배구조 투명성 개선과 주주가치 보호는 물론, 주식 수 감소로 전반적인 주가 상승이 기대된다. 각 주식의 주당순이익(EPS)과 주당배당금(DPS) 상승 효과가 나타날 전망이다.

자사주 취득 시 1년 내 소각
개정안이 통과되며 앞으로 기업은 자사주 신규 취득 시 취득일로부터 1년 내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해야 한다. 법 시행 전 기존 보유분은 시행일 이후 최대 1년 6개월 안에 소각하거나, 보유·처분계획을 세워 주주총회 승인을 받으면 된다.
일부 업종에는 예외 규정을 뒀다. 방송·통신·항공 등 외국인 투자 제한 업종은 외국인 지분 한도 문제를 감안해, 소각 의무 대신 법 시행일로부터 최대 3년 내 시장 매각 등으로 처분하도록 특례가 적용된다. 자사주 소각이 외국인 지분을 끌어올려 법 위반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자사주의 법적 성격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자사주가 ‘자산’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자사주를 자산처럼 활용할 수 없도록 제도를 보완했다. 자사주를 담보로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자사주를 교환·상환 대가로 활용하는 EB 발행도 제한했다. 인적분할이나 합병 과정에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발행도 차단해 자사주가 대주주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되는 길을 막았다.
자사주 처분 절차 또한 신주 발행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동안 국내법은 신주 발행에 엄격한 요건을 둔 반면, 자사주 처분은 이사회 결정으로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자사주를 제3자에게 넘기는 행위는 사실상 신주를 발행해 특정인에게 배정하는 효과와 유사하다. 이로 인해 자사주 처분과 신주 발행 사이 규제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개정안은 자사주 처분 절차와 사유를 신주 발행에 준해 규정하며 이 격차를 줄였다.
자사주 처분 의사결정 구조가 달라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개정안은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계속 보유하거나 처분하려면, 계획을 세워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했다. 기존에는 이사회가 처분 대상과 목적을 비교적 자율적으로 정하던 구조였다. 이제는 주주총회에서 승인한 계획 범위에서만 보유·처분이 가능하다. 주주에게 균등하게 배분하거나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 출연, 합병 대가 지급 등은 허용된다. 다만 제3자에게 넘기는 경우는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 경영상 목적이 있을 때만 가능하도록 문턱을 높였다.
자사주를 신탁 계약 방식으로 취득해 규제를 우회하는 방법도 차단했다. 상장사가 신탁으로 자사주를 매입해도 소각 의무와 처분 규제가 동일하게 적용된다. 신탁업자는 계약 기간 중 해당 자사주를 처분할 수 없다. 이사회가 소각 의무를 위반하거나 주주총회 승인 없이 보유·처분할 경우 주주가 유지청구권을 행사하거나 처분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구제 수단도 강화됐다.



기업 자발적 노력 중요
상법 개정에 대비해 기업은 선제적인 조치에 나섰다. 법안 통과 가능성이 커지던 지난 연말부터 자사주 처분 공시가 급증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사주 처분 전체 공시의 25%인 164건이 12월 한 달에 집중됐다. 제도 변화가 확정되기 전부터 기업들이 보유 자사주 활용 계획을 재검토하고, 잠재적인 규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서둘러 정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수 기업이 정관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철강·반도체 등 주요 산업 전반에서 개정 상법 내용을 정관에 반영하고, 이사회 구성과 주주권 관련 지배구조 규정을 손질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포스코홀딩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할 계획이다. 현대제철 역시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삭제하고,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를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정관 개정을 추진한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 등 개정 상법 반영을 위한 정관 정비에 나섰다.
상법 개정을 정면 돌파하는 기업도 눈길을 끈다. 두산이 대표적이다. 두산은 보유 중인 자사주 256만8528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그 외 기업들도 자사주 소각을 적극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3차 상법 개정안 통과로 기업들은 현금 배당과 주주환원을 우선시할 것”이라며 “앞으로 자본 배분을 주주 가치 중심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자사주 소각이 지속 가능한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기업의 자발적 노력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잇따른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사주 보유와 처분 계획에 대한 주주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더욱 구체적인 공시로 주주를 납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도 “3~5년 단위 총주주환원율 목표를 설정하고 배당·자사주·투자 간 우선순위를 사전에 공표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며 “자기자본이익률(ROE)을 핵심 지표로 삼아 자본 배분 원칙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권 보장을 위해 제도 설계를 더 정교하게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특히 합병 등으로 기업이 의도하지 않게 자사주를 보유하게 된 경우, 이를 소각할 때 세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세법에서는 자사주 소각 효과를 주주에게 배당한 것과 동일하게 간주해 과세하는 의제배당 규정이 적용된다.
김규식 비스타글로벌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합병 과정에서 비자발적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할 때 배당으로 간주해 과세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동시에 세법 정비가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에 이중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배력 변화·현금흐름 함께 따져야
기업의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며 수혜주를 찾기 위한 투자자 움직임이 분주하다. 단, 종목 선별 시 자사주 비율뿐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최대주주 지배력 변화, 이익잉여금, 현금 창출력 등 자사주 소각에 따른 후폭풍을 점검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업종은 증권·보험 등 금융 업종과 지주회사다. 금융 업종과 지주회사는 자사주 비율이 높고, 제도 변화의 압력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대규모 자사주를 보유한 금융회사에 관심이 쏠린다. 자사주 보유 비중이 10%를 넘는 금융사는 증권·보험업권을 중심으로 10여곳이 거론된다. 그중에서도 신영증권(51%)과 부국증권(43%)은 전체 중 절반 가까운 수준으로 자사주를 쌓아둔 상태다. 자사주 소각 효과가 클 수 있다는 진단이다.
단, 자사주 비율이 높다고 무조건 수혜를 보는 건 아니다. 다올투자증권은 2024년 이후 주가순자산비율(PBR) 개선이 제한적이었던 필수소비재·유통 업종 가운데, 자사주 비율이 10% 이상인 기업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샘표와 YW 등이다.
최대주주의 지배력 변화도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요소다. 그동안 자사주를 대주주 지배력 강화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한 기업일수록, 자사주 소각 시 지배구조 재편과 맞물려 변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유통 주식 수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자사주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 실제 유통 물량이 적은 기업은 자사주를 전량 소각할 경우, 유통 주식 수 부족으로 상장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투자자가 눈여겨봐야 할 핵심 재무 지표는 이익잉여금과 잉여현금흐름이다. 이익잉여금이 충분하고 영업현금흐름이 안정적이면 소각 이후 배당과 투자의 균형을 유지할 여력이 커진다. 반대로 현금 여력이 취약하거나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은 추가 매입·소각을 확대하기 어렵다.
돌아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 관심이 쏠린다. 기업이 자사주를 계속 보유하려면 보유·처분 계획을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주들이 배당 확대나 소각 계획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커졌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기업에 제시하는 안건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사주 비율이 높거나 회사가 자사주를 연장해서 보유해야 하는 경우, 주주에게 배당 확대 등 우호적인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개선할 부분 많아…‘독일식 10% 보유’ 검토해야”

Q. 3차 상법 개정안 통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A. 자사주 소각으로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면 분모가 감소해 EPS가 올라갈 수 있다. 다만 효과가 영구적으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부분이 문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고 본다. 취지와 달리 기업에 대한 규제가 과도할 경우 자본 시장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자사주는 기업 경영권 안정화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자사주가 기업 경영에 유연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자사주 취득 유인이 사라지면 일부 기업은 본거지를 해외로 옮기거나 해외 증권 시장 상장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Q. 자사주 소각 의무화 부작용은 무엇인지.
A. 자사주가 사라지면 배당 확대 압박이 커진다. 그동안 기업은 배당 대신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주주환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자사주 활용이 제한되면 배당을 통해 주주환원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 물론 주주 입장에선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기업 관점에서는 설비투자 여력이 줄어든다는 문제가 생긴다. 투자 재원이 부족해지면 기업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인수·합병(M&A)을 할 때 자사주를 활용할 수 없게 돼 M&A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 경영권 안정화 수단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한국에 신주인수권부여(포이즌필)나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안정화 제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Q. 제도 실효성을 높이려면.
A. 특정 목적을 위한 자사주 취득은 소각 의무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발행주식총수의 10% 범위에서는 자사주 보유를 허용한다. 이런 방식처럼 일정 범위 내에서는 자사주를 탄력적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또, 자사주 보유를 위해 매년 주주총회 결의를 받아야 하는 방식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일정한 보유 기간을 정하고, 그 기간에 대해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0호(2026.03.11~03.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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