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피케어 특화…6년 만에 매출 2000억 어디? [K뷰티 숨은 거인]
일반인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한 뷰티 기업이 있다. 그런데 이 회사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다. 2020년 8월 닻을 올린 지 6년 만에 매출 2000억원 돌파가 확실시된다. 설립 당시 이 회사가 한국 뷰티 생태계를 흔들 신흥 강자로 떠오를 줄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이 회사는 2024년 기준 매출 1259억원을 돌파했다. 이후 성장세는 더 뚜렷하다. 가결산이긴 하지만 지난해(2025년)는 매출 2200억원과 영업이익률 25% 달성이 유력하게 추산된다. 주인공은 아이리스브라이트다.


‘두피도 피부’…스키니피케이션 주목
창업자는 1992년생 김민욱 대표. 창업 계기는 ‘사람들은 얼굴 피부는 정성스럽게 관리하면서 얼굴과 이어진 두피는 왜 피부처럼 관리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비롯됐다.
당시 스킨케어 시장은 수많은 브랜드가 혈투를 벌이는 레드오션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이에 포털 사이트와 소셜 미디어 등에서 두피 트러블, 탈모 전조 증상, 두피 열감 검색량과 고민은 폭발하듯 늘고 있었다. 반면 이를 체계화된 카테고리로 묶어 해결해주는 브랜드는 거의 없었다.
김 대표는 여기에 글로벌 트렌드 변화를 감지했다. 피부와 화학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 스키니피케이션(Skinification) 바람이다. 좋은 농작물을 얻기 위해 토양을 관리하듯 건강한 모발을 위해 두피에 스킨케어 수준 영양을 제공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아이리스브라이트는 이 지점을 기회로 봤다.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씨퓨리(Seapuri)다. 바다 생명력과 정화 능력을 담은 심해수를 기반으로 두피를 피부처럼 관리한다는 콘셉트다.
씨퓨리 아이디어를 현실 수익으로 연결한 핵심 동력은 사업 구조에 있다. D2C(소비자 직접 판매) 모델과 제품 기획부터 생산, 마케팅, 유통까지 전 과정을 회사가 직접 통제하는 풀 밸류체인(Full Value Chain) 결합이다. 쉽게 말해 농장을 소유한 셰프가 중간 유통상 없이 재료를 직접 수확해 요리하고 손님 식탁에 올리는 방식이다.
전통 화장품 산업은 제조사에서 출발해 총판, 도매상, 소매점을 거쳐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다단계 유통 구조를 띤다. 제품이 유통 단계를 거칠 때마다 중간 마진이 붙는다.
아이리스브라이트는 이 관행을 깼다. 기획부터 물류, 고객 서비스까지 모든 가치사슬을 직접 통제하는 구조를 짰다. 감사보고서에 나타난 아이리스브라이트 2024년 별도 기준 매출은 949억원인데 물건을 만드는 데 든 원가(매출원가)는 105억원에 불과하다.
매출에서 원가를 뺀 매출 총이익률이 89%에 달한다. 1만원짜리 제품을 팔면 원가는 1100원 남짓이라는 뜻으로 제조업 기반 뷰티 업계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마진 구조다. 자회사와 긴밀하게 연계해 비용을 통제하고 효율을 높인 결과다.
이렇게 아낀 중간 유통 비용을 고객 편의 강화와 신제품 연구개발에 다시 쏟아부었다. 이처럼 이익을 고객에게 돌려주고 제품 만족도를 높여 다시 매출을 끌어올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마케팅 효율을 낳았고 영업이익 301억원이라는 숫자로 증명했다.

맞춤형 마케팅…‘핀셋 번역’ 전략
씨퓨리는 2024년 하반기 북미 시장에 본격 진출해 1년 만에 틱톡, 아마존, 올리브영이라는 3대 플랫폼에서 동시에 상을 휩쓰는 기록을 세웠다. 이른바 핀셋 번역 전략이다. 아이리스브라이트 마케팅팀은 플랫폼마다 주 사용 연령층과 소비 패턴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했다. 10~20대가 짧은 영상으로 소통하는 틱톡, 실용적인 정보와 리뷰를 꼼꼼히 따지는 미국 아마존, 미용에 관심 많은 한국 소비자가 모이는 올리브영은 각기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하나의 제품을 팔더라도 플랫폼 성격에 맞춰 소구 포인트를 다르게 설정했다.
틱톡 진출을 예로 들면 틱톡에서는 길고 지루한 성분 설명이나 논문 자료를 과감히 없앴다. 틱톡 사용자는 즉각적이고 시각적인 변화 순간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아이리스브라이트는 두피가 진정되고 열감이 내려가는 감각적인 순간, 사용 전후 극적인 비포 앤 애프터 영상에 집중했다. 그렇게 진출 6개월 만에 콘텐츠 조회 수 1억회 돌파라는 입소문(바이럴)을 만들어냈다.
반면 아마존은 수많은 리뷰를 읽고 다른 제품과 사양을 비교하며 이성으로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 특성을 감안, 감각적 영상을 버렸다. 대신 심해 미네랄 기반 두피 밸런스 케어라는 논리적이고 기능적인 언어로 씨퓨리를 재포장했다. 임상 데이터와 성분 분석, 명확한 효능 결과를 전면에 내세웠다. 론칭 1개월 만에 발모(Hair Regrowth) 부문 상위 5위에 오른 비결이다.
더불어 엔터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멀티 레이블’, 즉 ‘계란을 나눠 담는다’는 성장 전략으로 차별화했다. 참고로 뷰티 업계에는 고질적 위험 요소가 있다. 메가 히트작 하나에 회사 명운이 좌우되는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 함정이다. 흐름이 바뀌거나 경쟁사가 유사 제품을 내면 회사 전체가 흔들린다.
아이리스브라이트는 현재 20여개 브랜드를 운영하며 이 위험을 차단했다. 상위 10개 브랜드 평균 매출을 100억원 수준으로 유지하며, 단일 브랜드 매출 비중이 전체 20%를 넘지 않도록 통제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아이리스브라이트 관계자는 “과거에는 샴푸 하나로 온 가족이 씻었지만, 지금 소비자는 각자 두피 상태와 생활 방식에 맞는 수십 가지 해결책을 원한다. 그래서 소비자 검색 데이터와 구매 후기를 매일 분석한다. 여기서 기존 화장품이 채워주지 못하는 미세한 갈증(마이크로 니즈)을 포착하면 그 갈증을 해소할 맞춤형 브랜드만 기획한다. 지성 두피용, 극손상 모발용, 노화 방지 전문으로 20여개의 브랜드 진용을 갖춘 이유다. 그럼에도 제 살 깎아 먹기(카니발리제이션)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약점은 없나
내수 비중 높아…상장도 해야
단기간에 덩치를 키웠지만 아이리스브라이트가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큰 폭으로 성장했고 글로벌 브랜드를 표방하지만 90%나 되는 내수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많은 브랜드를 동시다발로 운영하다 보니 자원과 인력이 분산돼 선택과 집중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부 자금을 유치한 만큼 재무적투자자(FI) 자금 회수를 위해 성공적인 상장(IPO)을 이뤄내야 한다는 숙제도 있다. 참고로 2024년 말 사모펀드(PEF) 운용사 큐캐피탈파트너스는 아이리스브라이트 지분 40%를 약 600억원에 매입했다.
아이리스브라이트 측은 “최종 지향점은 ‘넥스트 유니레버’ ”라며 “데이터 분석으로 시장에 숨겨진 욕구를 찾아내고 이를 제품과 콘텐츠로 번역해 끊임없이 새로운 글로벌 카테고리를 창조해내는 데이터 기반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0호(2026.03.11~03.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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