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AI가 바꾼 K-배터리 미래…EV 밖으로 나온 '인터배터리 2026'

‘인터배터리 2026’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배터리 셀도, 전기차(EV)도 아니었다. LG에너지솔루션 부스 입구를 가득 채운 대형 디지털 화면이었다. 푸른 빛으로 구현된 로봇 형상이 화면을 채우고 그 위로 ‘미래를 향하는 로보틱스, 그 너머 AI 산업의 중심’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전기차를 넘어 새로운 산업으로 확장되는 배터리의 방향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11일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6’ 현장은 그 변화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LG에너지솔루션 부스의 디지털 영상은 관람객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멈추게 했다. 화면에는 ‘전기차 배터리에서 시작된 박동은 에너지저장시스템으로 확장되고, 데이터센터를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이 되었다’는 문장이 흘렀다. 이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는 박동한다’라는 자막이 이어졌다. 전기차 중심이던 배터리 산업이 인공지능(AI) 인프라로 확장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연출이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14개국 667개 기업이 참가해 2382개 부스를 꾸렸다. 사전등록 인원도 지난해 5만명에서 올해 5만2000명으로 늘었다. 코엑스 전관을 채운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하나의 흐름이 보였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길어지는 사이 K-배터리의 시선은 이미 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로봇, 드론, 국방·우주 산업 등 새 수요처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 부스에서 관람객이 가장 오래 머문 곳도 정전 체험관이었다. 벽면에는 ‘데이터센터에 전력이 끊긴다면?’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그 아래 붉은 버튼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기술이 작동하는 순간을 직접 확인해보세요’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관람객이 버튼을 누르자 화면은 위기 상황을 연출하듯 붉게 변했다가 곧 파란색으로 안정화됐다. 데이터센터에 정전이 발생했을 때 배터리 백업 시스템이 작동하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체험형 전시였다. 설명을 듣기 위해 주변에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삼성SDI와 SK온 부스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바닥에는 초록빛 인조잔디가 깔려 있었고 전반적인 색감도 차분했다. 기술 전시장이면서도 안정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연출이었다.
그러나 메시지는 확실했다. 두 회사 모두 ESS를 전면에 내세웠다. 삼성SDI는 전기차와 ESS, IT 기기 등 어플리케이션별 배터리 솔루션을 종합적으로 소개했다. 특히 국내 최초 AI 기반 배터리 화재 예방 소프트웨어(SBI)와 ESS 통합 솔루션인 삼성 배터리 박스(SBB) 풀 라인업을 통해 ESS 경쟁력을 강조했다.
SK온 역시 ‘넥스트 에너지’ 시대를 키워드로 내걸었다. 리튬인산철(LFP) 양극재와 각형, 전고체 등 배터리 포트폴리오 확장 전략과 함께 ESS·데이터센터·선박·도심항공교통(UAM)까지 적용 가능한 액침냉각 배터리 팩 기술을 공개했다.


배터리 기업들의 변화는 소재 기업 전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포스코퓨처엠은 ‘함께, 사물배터리의 미래를 그리다’(Together, Drawing BoT Future)를 주제로 전시관을 꾸렸다. 자율주행 전기차와 데이터센터 ESS·휴머노이드 로봇·드론을 연결하는 ‘BoT(Battery of Things)’ 시대를 제시했다.
전시관에서는 자율주행차에는 고에너지밀도 소재를, 데이터센터에는 ESS용 리튬인산철(LFP)을, 휴머노이드 로봇에는 실리콘계 음극재와 전고체 배터리 소재를 연결해 설명했다. 전시관 안쪽에는 4족 보행 로봇도 등장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소재 기업이 공급자를 넘어 미래 산업의 핵심 설계자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 관람객은 “배터리 소재가 이렇게 여러 단계로 만들어지는 줄 몰랐다”며 “전기차만 떠올렸는데 산업 범위가 생각보다 훨씬 넓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부스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다른 기업들이 미래 응용 산업을 강조했다면 고려아연은 전략광물과 공급망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략광물 생산기지’라는 문구 아래에는 게르마늄, 갈륨, 텔루륨, 인듐 등 핵심 전략광물이 전시돼 있었다. 관람객들이 표면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배터리 경쟁이 더 이상 셀 성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원료와 제련, 공급망 확보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공급망 불안이 상수처럼 자리 잡은 상황에서 고려아연이 어떤 역할을 맡으려 하는지도 또렷하게 드러났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AI 데이터센터용 비상전원,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서버용 배터리 백업 유닛, AI 기반 안전 진단 기술 등의 설명이 이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시장의 핵심 언어였던 ‘전기차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 대신 ‘데이터센터가 멈추지 않게 하는 전력’, ‘열폭주를 미리 예측하는 소프트웨어’, ‘AI 시대의 전력 인프라’ 같은 표현이 더 자주 들렸다. 운영 효율과 전력 인프라 대응력이 중요한 경쟁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전기차 배터리가 전시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광물과 소재, 셀, 재활용까지 배터리 생태계 전체를 한 번에 보여주는 전시가 됐다”며 “배터리 산업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인프라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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