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는 공연만 남는다면, 공공지원은 왜 존재하는가
[이규승 기자]
|
|
| ▲ 서울예술상 특별상 장애예술인 수상작(런웨이) |
| ⓒ 서울문화재단 |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서울문화재단 역시 예술지원사업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 그런 시점에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 것이 '2026 대표공연 콘텐츠 지역유통 지원사업'이다. 취지를 보면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공연 콘텐츠를 지역 공공 공연장으로 확산해 문화 향유의 격차를 줄이고, 지역민에게 더 많은 공연 관람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 좋은 공연이 지방에도 가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이 누가 있을까.
국가의 기금이 먼저 향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들었다. 무엇을 '좋은 공연'이라 부를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공공의 이름으로 먼저 밀어줄 것인가. 이번 사업은 이름만 들으면 지역의 기초공연예술을 넓게 확산하는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제 작동 방식은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공연을 우선 유통하는 데 더 가까워 보인다. 장르별 티켓 판매액 상위 공연, 회당 매출 상위 공연을 중심으로 대상작이 짜이면서, 정책의 출발점은 예술적 필요나 공공적 결핍보다 이미 확인된 판매력에 놓이게 됐다.
바로 이 대목에서 현장의 궁금증이 시작된다. 국가의 기금이 먼저 향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이미 시장에서 생존력을 입증했고, 팬덤과 자본, 홍보력을 바탕으로 전국 유통이 가능한 작품들인가. 아니면 시장의 논리만으로는 쉽게 살아남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동시대의 질문과 미학적 긴장, 공동체의 감각을 가장 예민하게 붙드는 순수기초예술인가. 이 질문은 장르 간 다툼이 아니다. 공공지원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 질문이다.
공연은 상품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은 상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표가 잘 팔린다는 이유만으로 공공재의 우선순위를 얻는다면, 공공지원은 어느 순간 시장의 사후 보조금으로 변질된다. 흥행성이 높은 작품이 지방 무대에 오른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잘못은 아니다. 지역 관객은 서울에서나 보던 화제작을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울 수 있다. 공공정책이 수요를 살피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수요를 확인하는 잣대가 오로지 매출과 판매량으로 수렴되는 순간, 국고지원은 시장의 승자를 다시 한 번 밀어주는 장치가 되고 만다.
이번 논란이 더 민감한 까닭은 실제 선정 목록에서 드러난다. 특히 클래식 분야를 보며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통적인 의미의 교향악이나 오페라, 창작 기반의 음악 작품들과 더불어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음악에 기반한 오피셜 콘서트와 필름콘서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공연들이 관객의 사랑을 받고, 오케스트라 편성과 무대 완성도를 갖춘 공연일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묻게 되는 것은 그 작품들의 흥행성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과연 공공지원이 가장 먼저 보듬어야 할 '기초예술'의 자리와 얼마나 맞닿아 있느냐는 점이다.
행정적으로는 기초예술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미 강한 팬덤과 시장성을 확보한 상업 친화적 콘텐츠가 공공지원의 우선순위 안으로 대거 들어온 셈이다. 이것은 단순히 장르의 경계가 넓어졌다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먼저 살리고, 무엇을 공공의 이름으로 떠받칠 것인가에 대한 정책 철학의 문제다. 지금 국가는 예술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달리고 있는 흥행 콘텐츠에 연료를 더 넣고 있는가.
더구나 기초예술은 원래부터 시장의 속도와는 다른 시간 위에서 자란다. 연극 한 편, 현대무용 한 작품, 국악 창작공연 하나가 완성되기까지는 긴 리서치와 훈련, 시행착오와 수정, 실패와 재구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의 판매량으로 환산되지 않는 이 축적의 시간이야말로 기초예술의 몸통이다. 지금 당장 관객 수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가치까지 미리 할인할 수는 없다. 공공지원은 애초에 바로 그 '시장 밖의 시간'을 견디게 하기 위해 존재해 왔다. 그래서 공공이 해야 할 일은 시장의 강자를 다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쉽게 선택하지 않는 것들을 오래 지키는 데 있다.
물론 여기엔 반론도 상당수 있다. 지역에는 대형 공연장을 채울 만한 콘텐츠가 부족하고, 관객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는 친숙하고 흥행력이 있는 작품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지역민의 향유권은 중요하고, 공연 유통의 활성화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하나의 지원틀 안에서, 그것도 티켓 판매액 상위와 회당 매출 상위를 중심으로 작품을 추리는 방식은 결국 시장 점유율이 가장 강한 작품에 유리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살아남는 것은 이미 알려진 것, 이미 팔린 것, 이미 안정적인 것들이다. 아직 작고 낯설지만 다음 시대의 예술이 될 가능성을 품은 작업들은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린다.
공공지원은 본래 형평의 장치이자 균형의 장치다. 민간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영역까지 공공이 앞장서서 떠받치기 시작하면, 가장 취약한 곳은 더 빨리 무너진다. 지원이 끊기면 곧바로 소멸 위험에 놓이는 순수기초예술과, 이미 민간 투자와 브랜드 파워로 자립 가능한 공연을 같은 출발선에 세우는 것은 공정이 아니라 착시다. 보기에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경쟁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유통 경험과 판매 실적, 인지도를 축적한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늘 두 개의 질문 사이에 선 예술정책
바로 그런 점에서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예술상'은 지금 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서울예술상은 한 해 동안 서울에서 발표된 기초예술 작품 가운데 시민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 작품을 가려내고, 그것을 공적으로 호명하는 제도다. 이 상의 미덕은 분명하다. 잘 팔린 작품이 아니라, 깊이 남는 작품을 본다는 점이다. 단지 숫자로 환산되는 흥행 지표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어떤 형식적 실험을 감행했는지, 어떤 미학적 긴장을 남겼는지, 시민의 삶과 감각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는지를 살핀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울예술상은 단순한 시상식이 아니다. 그것은 한 도시가 무엇을 예술로 기억할 것인가를 선언하는 공적 장치에 가깝다. 시장의 박수보다 먼저 예술의 밀도와 울림을 살피고, 그 가치를 다시 시민 앞에 세우는 일. 이는 공공이 해야 할 유통의 또 다른 모델이기도 하다. 이미 잘 팔린 작품을 다시 돌리는 방식만이 유통은 아니다. 공공이 발굴한 우수한 기초예술 작품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내고, 더 많은 시민과 만나게 하고, 사회적 기억 속에 남도록 돕는 것 역시 중요한 유통이다. 오히려 공공이 감당해야 할 유통은 이쪽에 더 가깝다.
예술정책은 늘 두 개의 질문 사이에 서 있다. 지금 시민이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지금 당장 시민이 잘 모르더라도 국가가 지켜야 할 예술은 무엇인가. 전자만 남기면 문화정책은 흥행산업의 보조금 체계가 되고, 후자만 붙들면 예술은 자기만의 섬에 갇힌다.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그러나 공공지원의 첫 번째 임무는 여전히 후자 쪽에 조금 더 가까워야 한다. 시장이 해줄 수 없는 일, 민간이 떠받치기 어려운 영역, 예술적 모험이 구조적으로 불리한 분야를 지키는 것. 그것이 국가와 공공재단이 존재하는 이유다.
예술은 늘 눈에 잘 띄는 곳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대중의 환호가 쏟아지는 무대 뒤편, 당장은 관객 수가 많지 않은 소극장과 연습실, 몇 해를 버텨야 비로소 하나의 형식과 언어가 되는 실험의 시간 속에서 다음 시대의 예술은 만들어진다. 순수기초예술은 그런 시간의 예술이다. 당장 표 값으로 환산되지 않는다고 해서 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공동체가 더 오래 지켜야 할 것은, 시장이 쉽게 계산하지 못하는 예술의 뿌리 쪽이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공공지원은 왜 존재하는가. 이미 팔리는 공연을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공공지원은 팔리지 않아도 사라져선 안 되는 예술, 당장은 작아 보여도 우리 사회의 감각을 더 깊고 넓게 만드는 예술, 언젠가 시민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될 예술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서울예술상은 지금 더 크게 읽혀야 한다. 시장의 성과보다 예술의 본령을 먼저 기억하려는 제도, 그것이야말로 한 도시 문화정책의 품격이다.
잘 팔리는 공연은 필요하다. 그러나 더 절실한 것은 오래 남아야 할 예술이다. 그리고 그 예술의 이름은 대개, 순수기초예술이다. 오는 4월 5일 오후 5시,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제4회 서울예술상은 바로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한 해 동안 서울 시민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 우수 기초예술 작품들이 그날 무대 위에서 다시 호명된다. 독자들도 그 자리에서 지금 우리 시대의 우수한 기초예술이 무엇인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먹방 찍고 간 거다"...한동훈 방문했던 구포시장 상인의 냉소
- [단독] 박상용 검사실 드나든 쌍방울 직원들... '참고인' 출입증 소지
- 보완수사권 없으면 이런 일 생길 수도...이런 세상 원하십니까
- 직장 생활 15년 차의 연차 23일... 2년 후가 더 두렵다
- 태어난 이후 사라진 아이들 23.1%...이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 "대통령 뜻, 공소 취소 지시" 김어준 방송 논란... "출처 못 밝혀"
- "한국 사회, 여전히 진보와 야만의 각축장...조희대 내란재판 주도, 엄청난 모순"
- "기름값 올라 난방 줄여, 여전히 추워 걱정" 전쟁 여파에 딸기 농가도 '시름'
- [오마이포토2026]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 즈음한 유가족 기자간담회
- [오마이포토2026] "중수청·공소청법 입법 청원... 검찰 개혁 뒷걸음질 쳐서는 안 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