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임제를 향한 투쟁은 저물지 않는다
[전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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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속도로 휴게소에 늘어선 화물 운송 자동차들 |
|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여기에 비라도 내리면 더 무시무시해진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2~2024년 사이 '맑음' 상태에 비해 비가 왔을 때 고속도로에서의 화물차 교통사고 치사율은 5.6배 높아진다(6.94/100건)2) 한 마디로 비 오는 날 고속도로에서 화물차는 피하고 볼 일이다.
"도로 위의 무법자" 화물차의 신자유주의적 기원
'도로 위의 무법자'가 된 화물차 교통사고의 주된 원인은 '졸음운전과 주시 태만'이고, 그 원인으로 '과적, 과속, 과로'를 꼽는다. 이는 화물 노동자의 신자유주의적 삶과 노동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 기원에는 신자유주의적 상품생산 흐름을 가속하기 위한 규제철폐가 있다.
1997년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이 제정되었다. 자본의 위기, 즉 낮은 이윤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자본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이를 방해하는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화물운송산업의 경영개선'을 도모하여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시장 내 거래 구조의 다양화를 촉진하는 방향의 규제 완화'라는 매끈한 수사(레토릭, rhetoric)가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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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물 운송료의 다단계 구조 |
| ⓒ 매일경제 |
운송회사들은 자신들이 소유하던 차량을 화물 노동자에게 불하하고, 이들과 '지입 및 위탁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계약 형태만 바뀌었을 뿐 화물 노동자는 이전과 동일한 노동을 수행했다. 다만 그들은 이제 '노동자'가 아닌 '차량 소유주'가 된 것이다.
이제 사업 주체들 간의 거래가 복잡해졌다. 화주(화물 주인)과 차주(실제 운송기사) 간에 운송사와 주선사와 같은 중간 거래가 증가했다. 다단계 거래 구조의 심화는 화물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운임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실제 화물 노동자들은 주선사와 운송사들의 여러 단계를 거쳐 각종 알선료를 떼이고 나면 화주가 내는 운송료의 60~70%밖에 받지 못한다.4)
모든 다단계 하청 구조의 특징은 '사람장사'와 '중간착취'의 합리화다. 화물운송노동자들 역시 다단계 거래로 인한 중간착취로 고통받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화물운송산업을 '흡혈 자본'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화물 노동자로 하여금 과적, 과속, 과로의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들었다.
안전운임제의 전략, 과로를 줄여라
너무 많이 싣고(과적), 너무 빨리 달리는(과속) 것과 과로는 연결된 현상이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이다. 과적과 과속은 화물 운송상의 부적합한 방법을 의미하지만, 과로는 인간의 신체와 생명의 지속과 관련된다. 과적과 과속은 신자유주의적 속도 과잉을 추구한다. 그러나 '과잉'은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는 차 한 대에 수억 원대에 이르는 화물차 소유주의 욕망과 외견상 맞닿아있다. 그러나 과로는 어떤가? 과로는 아쉽게도 임계점이 있다. 과로는 자율적 노력과 성취의 임계점을 초과한 과도한 신체 소진의 구간이다. 과로는 부정적이고, 타율적이다. 화물차 소유주에게 과로조차 선택이지만 어디까지나 '강제된 선택'이다.
지입차주 겸 화물운송노동자라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위치는 과적과 과속, 그리고 과로를 마치 하나의 현상처럼 연결했지만, 이에 대항하는 화물 노동자의 '안전운임제'는 과적·과속과 과로 사이에 간격을 두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노동자의 과로를 강제하는 조건, 다단계 구조에 따른 저임금의 문제를 겨냥했고, 이로부터 과적과 과속을 강제하는 기형적 물류산업이 바로 사회적 위험의 출처임을 알렸다.
신자유주의는 화물운송노동자를 '임금노동자'의 범주에서 배제했다. 이에 대해 노동은 2003년 화물연대의 출범으로 저항했다. 화물연대는 출범과 동시에 화물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고 물류 시장을 바꾸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그 중 핵심 요구가 바로 '적정운임'을 보장받기 위한 표준운임제 투쟁이었다. 2020년부터 2022년간 3년 일몰제로 시행된 안전운임제는 18년 화물연대 투쟁의 산물이었다. 투쟁의 과정에서 '표준운임제'에서 '안전운임제'로의 변화는 결정적이다. '불공정거래의 개선과 산업의 표준화'라는 차원의 문제를 화물 노동자의 과로 문제를 전면화하며 '사회적 위험'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안전운임제가 노조법이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에 대한 인정 투쟁 없이 특수고용노동자의 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라는 점이다. 안전운임제는 노동자성을 주장하고 법적이고 제도적인 인정투쟁을 전개하는 경로를 설정하는 대신, '지입차주 겸 화물 노동자'라는 신자유주의적 신분이 곧 과로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복잡한 공급사슬(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노동자의 보수와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경제적 사용자'를 식별하고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안전운임제도 전략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는 플랫폼화되는 모든 노동에 공통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2021년부터 3년간 시행한 안전운임제는 하루 13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감수해 왔던 화물 노동자의 안전과 다단계 산업구조에 변화를 불러왔다.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시행과 맞물려 시행한 실태조사 결과5)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다단계 구조가 개선(1.76단계->1.36단계)되었고, 이에 따라 물량 수주를 위한 저단가 경쟁이 완화(4.47->3.79 경쟁 감소)되었다. 운송사, 주선사에 의한 중간착취 수준도 현저하게 감소(3.92->3.11 하락)하였고, 이로 인해 화물노동자들의 과적 경험(24.3->13.6, 9.7%p 하락), 과속 경험(32.7->21.7, 11%p 하락), 졸음운전(71.8->51.0, 20.8%p 하락)이 모두 감소했다.
반신자유주의적 대항 실천으로서 '안전의 민주화'
'안전'과 '운임'의 연결은 그다지 새롭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의문스러워 보인다. 오랫동안 노동조합에서 임금인상을 위한 수사(레토릭)로 안전을 활용해 왔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투쟁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이 투쟁은 '안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구성해 왔다. 노동에 전가되고 개별화된 '안전'을 자본의 책임으로 전환할 뿐만 아니라, 노동과 자본 간의 '위험'이 사회적 위험으로 전가된 또 다른 문제(도로 위의 무법자)를 제기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안전(안전의 개별화, 안전의 상품화, 안전의 사사화 私事化))에 대항하는 안전의 민주화를 촉진한다.
'안전운임제'는 1990년대 후반 도로 운송 산업의 탈규제에 맞선 투쟁의 하나로 호주운수노동조합(Transport Workers' Union of Australia, TWU)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이후 전 세계 다양한 국가와 규제 체제 속에서, 플랫폼화되고 있는 물류, 운송, 배송 분야 전반의 요구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고, 노동자와 노조의 권력을 강화하는 안전운임 제도가 온전히 갖추어진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6) 한국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에서 안전운임제가 폐기되었고(일몰제 종료), 이재명 정부 들어 겨우 다시 3년 일몰제로 재도입되었다. 앞으로의 3년은 플랫폼화의 첨단을 걷는 거대 물류·운송 산업과 '노동자' 지위를 박탈당한 화물, 운송, 배송 노동자들의 치열한 2라운드가 될 것이다. 그 핵심에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이 있다.
*참고자료
1) 경기일보, 고속도로 사망자 54% '화물차 사고', 2024.4.30.
2) 한국철도일보, 화물차 사고 치사율 5.6배 높다. 2025.7.9.
3) 강경희, <임금 노동 바깥의 노동 정치 : 화물운송산업 안전운임제도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논문, 2024.8. 34쪽.
4) 매일경제, 정부-화물연대 '표준요율제' 의견 접근, 2008.6.16.
5) 한국안전운임연구단, 2019년 10월~2023년 3월 총42개월 조사 기간
6) 임월산, 2021년 공공운수노조 안전운임연속워크숍 자료집, 2021.4.15.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3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전주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장이고, 서교인문사회연구실에서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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