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변호사 등으로 일하던 여성들이 집안에 갇혀 지냅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아프가니스탄 여성 파티마가 한국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파티마는 탈리반을 피해 지금은 인접국인 파키스탄에서 난민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자라(Hazara)는 아프가니스탄을 구성하는 여러 민족 가운데, 탈레반에게 탄압받고 있는 소수 민족을 말합니다. 파티마가 영어로 쓴 글을 필자가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기자말>
[미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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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티마 카리미 |
| ⓒ 파티마 |
저는 아프가니스탄 가즈니 지역의 한 하자라(Hazara)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자라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겪어온 차별과 소외를 직접 접하며 자랐습니다. 가즈니에서 초등 및 중등 교육을 마친 후, 사회적 불평등을 세상에 알리고 소외된 공동체의 목소리를 널리 전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으로 저널리즘을 공부했습니다. 지난 수년간 저는 아프가니스탄 내 여성 인권과 사회 정의 운동 그리고 소수자 권리 보호 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2021년 8월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은 후,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상황은 급격히 변했습니다. 여성은 교육과 직업 그리고 사회 활동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었습니다. 다른 많은 여성 활동가와 마찬가지로, 저 또한 인권 운동과 평화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심각한 신변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프간 여성들의 경험과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이 글을 통해 아프간 여성들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존엄과 평등 그리고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고 싶습니다.
여성 인권이 사라진 나라에서의 세계 여성의 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은 성평등의 진보를 상징하며 여성이 일궈온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성취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날은 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억압과 차별 그리고 사회적 배제를 뼈저리게 상기하는 날일 뿐입니다.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이 붕괴한 이후, 탈레반은 여성을 공적 영역에서 사실상 완전히 배제하는 일련의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여학생 교육 금지, 여성 취업에 대한 강도 높은 제한, 다수의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출입 금지 그리고 여성 시위에 대한 폭력적 탄압 등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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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 참여한 아프간 여성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
| ⓒ 파티마 |
탈레반 재집권 이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교육과 직업 분야에서 놀라운 진전을 이루어냈습니다. 수천 명의 여성이 의사, 대학교수, 언론인, 변호사, 엔지니어 그리고 공무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여성의 고용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제한 조치를 가했습니다. 많은 여성이 정부 기관과 비정부 기구(NGO), 심지어 민간 경제의 특정 분야에서조차 일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오늘날 이들 중 다수가 직업을 빼앗기고 집 안에만 갇혀 지내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탈레반은 여성들이 여러 국제 인도주의 기구에서 활동하는 것 또한 가로막았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인도주의 위기에 처한 국가에서 필수적인 구호 물품 전달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또한 여성은 남성 보호자(마흐람) 없이는 이동조차 할 수 없습니다. 복장 규정과 공공 장소의 여성 출입에 관한 엄격한 규제는 여성의 개인적 자유를 더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제한 조치가 맞물리면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능동적인 시민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의존적인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하자라 여성들, 다중적 차별의 피해자
아프가니스탄 여성 중에서도 하자라 여성들은 특히 심각한 어려움에 부닥쳐 있습니다. 이들은 성별에 기반한 차별뿐만 아니라, 민족적·종교적 소외까지 겪고 있습니다. 주로 시아파 무슬림으로 구성된 하자라 공동체는 역사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박해와 폭력에 시달려왔습니다.
최근 몇 년간 하자라 거주 지역의 학교, 교육 시설, 종교 시설이 잇따라 치명적인 공격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희생자 중 상당수는 여학생이었습니다. 이러한 폭력 행위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딸을 학교에 보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하자라 여성들에게 성차별은 민족적·종교적 차별과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의 굴레는 기본적인 자원에 대한 접근과 개인적·사회적 발전을 위한 기회를 심각하게 제한하며, 공적 영역에 참여하려는 모든 시도를 극도로 위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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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아프간 여성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
| ⓒ 파티마 |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상황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 위기 중 하나입니다. 국제 사회가 침묵한다면, 젠더 아파르트헤이트가 일상의 현실로 굳어질 심각한 위험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도덕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보편적 인권 가치를 지키는 일입니다.
국제기구, 각국 정부, 인권 단체들은 아프간 여성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탈레반에 대한 정치적·외교적 압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아프간 여성들—특히 하자라 여성—을 위한 교육과 안전 그리고 사회적 기회를 확대해야 합니다. 여성 활동가 지원, 난민을 위한 안전한 이주 경로 마련, 아프간 여학생을 위한 교육에 대한 투자 등은 지금의 어려움을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입니다.
만약 국제사회가 이 위기를 외면한다면,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절반에 가해지는 체계적인 차별과 폭력이 지속되도록 용납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한국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연대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6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여성 인권활동가 파티마 카리미 올림
덧붙이는 글 | 평화운동가. 저서 : <지상 최대의 감옥 - 팔레스타인 가자GAZA의 십대가 한국의 십대에게 전하는 말>, <팔레스타인에 물들다>, <다극화체제, 미국 이후의 세계>(공저), <전쟁국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중동정책>(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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