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기업 빚 돌려막기 위험” 경고…한국 회사채 118조 만기 비상

박세환 2026. 3. 11.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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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 기업들의 이른바 ‘빚 돌려막기’ 관행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만기가 돌아온 채무를 새 차입으로 상환하는 차환 의존이 커지고 있는 데다, 금리 부담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이유에서다. 올해 회사채 만기 물량이 100조원을 훌쩍 넘는 한국 역시 OECD의 경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OECD의 ‘글로벌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기업의 시장 차입 규모는 약 13조700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회사채 발행은 6조8000억달러였다. 회사채는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기업 부채 잔액도 지난해 말 59조5000억달러에 달했다. OECD는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대규모 설비투자 수요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수요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단순히 빚이 많다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건 그 빚을 언제, 어떤 조건으로 갚아야 하느냐다. OECD는 최근 기업들이 높아진 장기금리 부담을 피하기 위해 장기물보다 만기가 짧은 채권 발행을 늘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장은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만기가 더 빨리 돌아오는 만큼 나중에 다시 높은 금리로 차환해야 할 위험도 커진다는 뜻이다. 저금리 시기에 발행한 채권이 잇따라 만기를 맞고 있는 점도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회사채(ELS·DLS 제외) 만기 도래액은 118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4년(126조2000억원) 이후 가장 큰 규모다. 특히 올해 상반기 만기 도래액은 72조7000억원으로, 하반기(46조1000억원)보다 30조원 가까이 많다. 더 우려되는 점은 자금 조달 여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업들의 만기 역시 이 시기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담보나 보증 없이 신용만으로 투자자에게 돈을 빌리는 무보증 회사채 기준으로 보면 이런 흐름이 더 뚜렷하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AA- 미만 기업의 올 상반기 만기 도래액은 21조원으로, 하반기(10조3000억원)의 배가 넘는다. 쉽게 말해 시장에서 돈을 빌리기 더 어려운 기업들의 ‘빚 갚는 날’이 올해 상반기에 몰려 있다는 뜻이다.

신용등급이 높은 대기업은 시장이 불안해도 비교적 낮은 금리로 다시 돈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등급이 낮은 기업은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거나 훨씬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새 돈을 빌려 기존 빚을 갚는 것 자체가 버거워지고 결국 투자와 고용을 줄이거나 보유 자산을 급히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기업부채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라 한쪽에서 빌린 돈으로 다른 쪽 빚을 갚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며 “이런 차환 구조가 막히면 개별 기업은 물론 금융시장 전체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차환 부담이 커질수록 기업 경영 전반도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만기 연장과 차환에 자금이 먼저 투입되면 투자와 고용, 사업 재편에 쓸 여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공장 증설이나 연구개발, 신규 채용에 들어가야 할 돈이 빚을 막는 데 쓰이면 기업은 성장보다 방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차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개별 기업의 자금난이 회사채 시장 전체의 불안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 등이 회사채 만기 관리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환 시기가 한꺼번에 몰리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 차환에 기대기보다 회사채 만기를 분산하고, 은행 대출과 회사채 발행 비중을 조정해 조달 구조를 나눠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양 교수는 “외환위기 때도 단기로 빌린 돈을 장기로 운용하다가 차환이 막히면서 위기가 커졌다”며 “금리 수준만 볼 게 아니라 만기가 특정 시점에 몰리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취약 기업을 위한 안전판도 필요하다. 특히 A급 이하 기업은 산업은행·기업은행의 매입 프로그램이나 신용보증기금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등을 선제적으로 활용해 차환 실패가 연쇄 부도로 번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부동산 PF나 한계기업처럼 구조적인 취약성이 큰 부문은 무조건 만기만 늘려주기보다 유동성 지원이 필요한 곳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곳을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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