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요환 목사의 새벽묵상] 나의 분노는 어디로 향하는가

2026. 3. 1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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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를 정의하는 단어 중 하나는 분노입니다. 보복운전, 층간소음 갈등, 그리고 무차별적인 혐오 게시물까지. 철학자 한병철이 진단한 ‘피로사회’는 이제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폭발하는 ‘분노사회’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흔히 “성도는 온유해야 한다”며 분노를 죄악시하지만 정작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불길을 다스리지 못해 영적 자책감에 빠지곤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분노를 2차 감정이라 부릅니다. 거대한 빙산의 수면 위에 드러난 분노 아래에는 더 깊고 본질적인 1차 감정이 숨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날 선 화를 낼 때, 그 본질은 분노 자체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 깊은 밑바닥에는 거절감 수치심 외로움 혹은 나만 뒤처질지 모른다는 무력감 같은 연약한 1차 감정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 윌이 공격적인 언행으로 자신을 무장했던 이유는 어린 시절의 입양과 파양 그리고 양부의 학대로 인한 상처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분노는 일종의 갑옷과 같습니다. 내가 약해 보이는 것이 두려워 혹은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본능적으로 거칠고 무거운 갑옷을 입고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뱉는 독한 말들은 사실 “나를 좀 도와 달라”거나 “나 지금 너무 아프다”는 내면의 비명일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노하지 말라”고 단정짓지 않습니다. 대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엡 4:26)고 권면합니다. 감정의 발생 자체보다 그 분노가 향하는 방향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가인은 거절감이라는 1차 감정에 휩싸였을 때, 하나님의 시선을 피하며 분노의 갑옷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냐”(창 4:6) 물으시며 그의 마음 바닥을 대면하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그 분노를 가장 가까운 형제 아벨에게 쏟아붓고 말았습니다. 방향을 잃은 분노는 결국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을 파괴하는 흉기가 됩니다.

반면 예수님의 분노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했습니다.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실 때, 생명보다 형식을 중시하는 종교인들의 완악함을 보시고 주님은 노하셨습니다.(막 3:5) 하지만 주님의 분노는 타인을 찌르는 칼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완악함과 죄를 짊어지시고 스스로 십자가라는 죽음의 길로 향하셨습니다. 분노가 사람을 향하면 폭력이 되고, 자신에게만 향하면 자기연민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할 때 분노는 비로소 기도가 됩니다.

우리의 분노는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혹시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가족이나 공동체 구성원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무작정 폭발하거나 억누르기 전에 10초의 멈춤을 실행해 보길 제안합니다.

분노의 칼을 휘두르기 전 10초만 멈추고 주님께 정직하게 묻는 것입니다. “주님, 제 분노의 갑옷 아래 숨겨진 진짜 아픔은 무엇입니까. 저는 지금 무엇이 두려워 이토록 화를 내고 있습니까.” 이 짧은 10초의 멈춤은 분노의 에너지를 파괴에서 기도로 전환하는 ‘영적 골든타임’입니다. 하나님께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그분과 씨름하며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신앙의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모든 죄와 분노를 통째로 삼켜버린 자리입니다. 그 거룩한 사랑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무거운 갑옷을 입고 강한 척 버틸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도 문득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온다면, 그 분노를 십자가 아래로 가져가십시오. 거기서 분노는 복수가 아니라 회개가 되고 파괴가 아니라 치유가 됩니다. “내가 지금 너무 지쳐서 이 갑옷이 없으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할 때, 주님은 우리의 분노를 죄로 묻지 않으시고 상처 입은 내면을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분노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릴 때, 비로소 우리의 깨어진 마음은 회복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허요환 목사(안산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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