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가 곧 예술 매체… “예수님도 몸을 통해 희생”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후원
이건용 작가 개인전 ‘사유로서의 신체’

신경다양성 신진 작가 등용문인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을 후원하는 이건용(84) 작가는 1970년대 태동한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이다. 실험미술은 지금은 세계에서도 조명받는 미술 사조가 되었지만 주목받기 시작한 건 1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부상의 중심에는 2014년 실험미술 작가 중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한 이 작가가 있다. 그는 현재 세계 톱 갤러리인 페이스갤러리 전속 작가로 있다. 최근 페이스갤러리 서울점에서 두 번째 개인전 ‘사유로서의 신체’전을 시작한 그를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갤러리에서 만났다.
평생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체를 사용한 퍼포먼스(행위예술)다. 이번 전시도 1970년대 신체를 매개로 펼쳤던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과 작가 노트, 영상 작업을 중심으로 구성해 시대를 앞서간 아방가르드 정신을 조명한다.
퍼포먼스는 일시적이라 행위가 끝나고 나면 사라진다. 그래서 작가들은 사진과 영상을 찍어 기록해뒀다. ‘동일면적’(1975), ‘실내측정’(1975)의 초연 영상과 ‘손의 논리 3’(1975), ‘건빵먹기’(1977), ‘화랑 속의 울타리’(1977)의 기록 사진 등 기록의 수단이었던 사진과 영상을 작품으로서 공개해 눈길을 끈다.
이 작가는 개념미술의 세례를 받은 설치미술과 퍼포먼스를 했지만 홍익대 미대 졸업 후 초기에는 옵아트로 불리는 기하학적 추상 회화도 했다. 그 얘기를 꺼내자 “구상회화도 잘했다. (미술반을 하던) 고교 2학년 때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나이를 속이고 출품해 당선된 적도 있다. 구상 회화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석한 부인 승연례 작가는 “국립군산대 교수 시절 원로 교수님이 ‘전주에서 전시하면 서울에서 모를 테니 (잘 팔리는 구상 회화) 전시를 해보라’고 권유했지만 바로 거절했던 사람”이며 “한길로 쭉 예술 활동을 해온 사람”이라고 거들었다. 고교 시절 이름 중 ‘건’자에 ‘깡’(오기를 뜻하는 속어)을 합쳐 ‘깐’으로 불렸고, 한때 ‘깐’을 사인으로 쓴 적도 있다고 한다.
그 한길이 된 출발점은 27세 때 절친한 미술가 성능경, 미술비평가 김복영 등과 함께 만든 전위예술그룹 ‘ST(Space and Time, 1969~1981)’다. ST를 기반으로 회화도 조각도 아닌 새로운 미술을 추구했다. 그는 “ST에서는 서구의 새로운 미술 동향을 알기 위해 해외 잡지를 번역하고 인쇄해서 함께 읽는 모임을 했다”고 전했다. ST 시절인 1973년 심문섭과 함께 파리비엔날레에 초대됐다. 뿌리를 둘러싼 흙째로 잘린 아름드리나무 밑둥을 내놨다. ‘신체항’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자신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사용한 퍼포먼스가 나온 것은 1975년부터였다. 파리비엔날레 당시 출품작이 화제가 돼 현지 언론의 조명 속에 관객들이 몰려왔고, 일부가 자신을 껴안으려는 바람에 바닥에 넘어졌다. 그 순간 머릿속에 ‘신체성’, 즉 몸과 예술의 관계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회화, 특히 구상 회화가 지배하던 미술시장에서는 외면받았다. 그러거가 말거나 군산에서 서울로 올 때면 전시 도록을 옆구리에 낀 채 갤러리 대표들을 만나 작업 세계를 설명하고 전시를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30년간 서울에서의 개인전은 관훈미술관 등 대여섯 번뿐이었다.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오후에는 그렇게 시대를 앞서간 퍼포먼스 중 하나인 ‘화랑 속의 울타리’를 재현했다. 나무 기둥을 가지고 갤러리 안에 울타리를 치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가 운동화 한 짝을 벗어 가지 끝에 끼운 뒤 천장으로 밀어 세웠다. “내 밑에서 나를 받쳐주고 지탱해주는 신발을 이 전시장 가장 높은 곳에 전시합니다. 저는 이런 전시를 한 최초의 사람입니다.”
작업 세계는 철학적으로 몸을 매개로 세계와 연결되기를 주창한 프랑스 철학자 메를리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과 연결된다. 신앙과도 관련이 있다. 부친이 목사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이 세상에 정신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철학적으로 현상학이 그 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른 종교는 자기 수행과 정신성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기독교는 신 자체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고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는 데까지 나갔다. 신은 인간처럼 어머니를 통해서 탄생했고, 몸을 통해서 희생했고, 우리 죄를 대신 갚아준 것이다. 그게 몸의 중요성이다.”
마침내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인전을 하며 예술 인생에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그의 나의 72세 때였다. “나는 파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다 때가 있다. 시대가 나를 알아줘야 한다.”
시대가 알아주면서 이건용 개인전은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2018년 페이스 베이징, 2019년 페이스 서울, 2022년 페이스 홍콩, 2024년 페이스 뉴욕과 제네바 등지에서 소개됐다. 2023~2024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는 실험미술 작가를 조명하는 ‘한국 실험미술 1960~1970년대’가 열렸다.
24년간 재직한 국립군산대를 정년 퇴직하고 2019년 서울로 옮겨온 뒤 그는 십일조를 넘어 십이조(수입의 20%를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후원도 그 일환이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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