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는 CATL이라더니"... 벤츠가 숨긴 이름, 공정위가 꺼냈다

김종철 2026. 3. 1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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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EQE·EQS 일부 모델 파라시스 배터리 은폐… 공정위, 과징금 112억·검찰 고발

[김종철 기자]

 독일 진델핑겐의 메르세데스-벤츠의 팩토리 56.
ⓒ 김종철
메르세데스 벤츠는 왜 전기차 배터리 이름을 숨겼을까.

공정거래위원회가 10일 내놓은 제재 결정은 단순한 표시 누락 사건이 아니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를 감춘 채, 오히려 다른 회사 배터리의 우수성을 영업 포인트로 내세워 소비자에게 차를 팔았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같은 행위를 한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공표명령, 과징금 112억3900만 원을 부과하고, 두 회사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핵심은 소비자를 속인 것이다. 벤츠 전기차 EQE와 EQS 상당수 모델에 실제로는 중국 파라시스(Farasis) 배터리 셀이 들어갔는데, 벤츠는 차량 판매자(딜러) 교육과 판매 현장에서 마치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인 CATL 제품이 들어간 것처럼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중국 파라시스 배터리 셀을 넣고 CATL 홍보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메르세데스벤츠의 소비자 기만행위 내용.
ⓒ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메르세데스벤츠의 소비자 기만행위
ⓒ 공정위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벤츠는 지난 2023년 6월 딜러사에 배포한 '차량 판매지침(EQ Sales Playbook)'에서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를 다뤘다. 그런데 이 자료에는 파라시스에 대한 언급은 아예 빠져 있었다. 대신"벤츠가 CATL을 선택한 이유", "업계 최고의 기술력",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 같은 문구가 반복됐다. 소비자가 배터리 제조사를 묻는 상황에 대해서도 CATL의 강점을 중심으로 응답하라고 안내했다.

문제는 이 문서가 단순 참고자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벤츠코리아는 이를 딜러사에 전파하고 실제 영업 과정에서 적극 활용하도록 했고, 공식 교육자료로도 썼다. 딜러들은 계약상 본사가 제공하는 교육을 따라야 했고, 자의적으로 다른 홍보물을 쓰기도 어려웠다. 결국 판매 현장에서는 딜러들조차 파라시스 배터리 탑재 사실을 모른 채 소비자에게 CATL 배터리가 들어간 것처럼 설명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공정위가 특히 무겁게 본 대목도 이 부분이다. 단순 실수나 정보 부족이 아니라, 제조사가 판매망 전체를 사실상 도구처럼 활용해 소비자를 기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사실관계는 판매 지침과 달랐다. 당시 출시된 EQE 6개 모델 중 4개 모델, EQS 7개 모델 중 1개 모델에 파라시스 배터리 셀이 탑재돼 있었다.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벤츠코리아는 2021년 5월 독일 본사로부터 차종별 배터리 셀 제조사 교육자료를 전달받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판매 지침에서 이를 누락하고 은폐했다.

배터리 셀 제조사는 사소한 정보가 아니다. 전기차에서 배터리는 성능과 안전성, 주행거리, 화재 위험과 직결되는 핵심 부품이다. 더구나 파라시스는 2021년 3월 중국에서 화재 위험으로 대규모 리콜 이력이 있었고, 국내 시장에서는 이 사건 벤츠 전기차에만 탑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CATL은 세계 점유율 1위 업체다. 시장 인지도와 기술력, 소비자 신뢰에서 차이가 컸다.

공정위가 무겁게 들여다 본 부분... 벤츠가 판매망 자체를 소비자 기만의 도구로 활용
 공정위가 공개한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배터리 소비자 기만행위 자료
ⓒ 공정위
벤츠 내부에서도 이런 민감성을 알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났다. 공정위에 따르면 벤츠는 애초 이같은 판매지침을 만드는 목적 중 하나로 "주행거리, 화재 안전성 등 배터리 관련 소비자 불안을 해소하는 점"을 잡고 있었다. 딜러사 설문에서도 응답자 46명 중 15명이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으로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를 꼽았다. 무엇이 소비자 불안을 자극하고 무엇이 구매를 좌우하는지, 회사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벤츠는 파라시스를 지우고 CATL만 강조했다. 공정위가 이를 '위계에 의한 부당한 고객유인'으로 본 이유다.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고객유인은 경쟁사업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는 행위인데, 이번 사건은 허위·은폐된 정보를 딜러망을 통해 퍼뜨려 소비자의 구매 판단을 왜곡했다는 점에서 그 전형으로 판단됐다.

위반 기간은 2023년 6월 8일부터 2024년 8월 12일까지다. 이 기간 동안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은 약 3000대 판매됐고, 판매금액은 약 2810억원에 달했다. 공정위에는 자신이 CATL 배터리가 탑재된 줄 알고 차량을 샀다는 소비자 민원도 90건 넘게 접수됐다.

눈에 띄는 대목은 과징금 수준이다. 현행법상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최대 4%까지 부과할 수 있는데, 공정위는 이번 사건에 4%를 적용했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숨긴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쉽게 말해 "이 정도면 최고 수준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공정위가 독일 본사까지 함께 검찰에 고발한 점도 이례적이다. 벤츠코리아가 판매지침 주요 내용을 본사에 보고했고, 배터리 관련 보완도 요청했으며, 독일 본사는 이를 우수 사례로 다른 나라에 소개·전파하고, 내부 교육 플랫폼 사용도 승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법인만의 일탈이 아니라 본사 차원의 직·간접 가담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번 제재는 의미가 적지 않다. 자동차 제조·판매업자가 전기차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를 감춘 행위를 제재한 첫 사례라는 점도 그렇지만, 더 본질적인 의미는 따로 있다. 소비자와 직접 마주하는 것은 딜러이지만, 그 딜러가 제조사가 설계한 정보 체계 안에서 움직였다면 책임 역시 제조사가 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데 있다.

이 사건은 전기차 시장이 커질수록 소비자가 무엇을 알고 사야 하는지, 기업은 어디까지 정확히 설명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심장이다. 심장의 출처를 감춘 채 "좋은 심장을 썼다"고만 광고한 셈이라면, 그건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소비자의 판단을 빼앗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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