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메이저리거 안 부럽다…WBC 8강행 이끈 '주장' 이정후의 존재감

배영은 2026. 3. 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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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일본 도쿄돔. 한국 야구대표팀의 훈련이 거의 끝나가던 참에 한 외신 기자가 안현민(KT 위즈)에게 짧은 인터뷰를 청했다.

호주전에서 적시타를 치고 비행기 세리머니를 하는 이정후. 뉴스1

싹싹한 안현민이 "오케이"를 외치며 멈춰 선 순간, 이정후(28·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등장했다. 그는 해당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현민을 더그아웃 뒤로 데리고 갔다. 잠시 후 안현민은 영어에 능통한 KBO 직원과 함께 나타났다. 다음날 그 배경을 물으니, 이정후는 "정식으로 통역을 거쳐 답변하라고 권한 것"이라고 했다.

"말이라는 게 토씨 하나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거나 해석될 수 있잖아요. 메이저리그(MLB)에서는 영어를 꽤 잘하는 외국인 선수들도 꼭 통역을 통해 인터뷰하거든요. 혹시라도 현민이가 무심코 던진 영어 한마디가 잘못 전달돼 자칫 야구 외적으로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길까 봐 미리 방지한 거죠." 대표팀 주장 이정후는 이렇게 그라운드 밖에서도 분주했다.

도쿄돔에서 만난 이정후. 배영은 기자

샌프란시스코 주전 외야수 이정후는 현재 한국 야구 최고 스타다. 일본에서도 많은 팬을 몰고 다닌다. 그가 첫 경기부터 착용한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는 WBC 1라운드 내내 화제가 됐다. 네잎 클로버 모양 펜던트 여러 개가 목을 감싸는 제품인데, 이정후뿐 아니라 많은 빅리거가 애용한다. 이정후는 "(멋이 아니라) 네잎 클로버의 행운이 한국 대표팀에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경기 때만 착용한 거다. 이렇게 주목받을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이정후는 한국이 일본전 선발 기쿠치 유세이(LA 에인절스)를 공략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그는 "나와 저마이 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MLB에서 기쿠치를 상대한 경험이 있다. 어떤 건지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선수들에게 그 비법을 공유했다"고 귀띔했다. 한국은 기쿠치를 상대로 1회부터 3점을 뽑아 '디펜딩 챔피언' 일본과 마지막까지 대등한 승부를 했다.

8강행을 확정한 뒤 함께 기념촬영하며 기뻐하는 김혜성(왼쪽)과 이정후. 연합뉴스

이정후가 몰고 온 행운의 여신은 실제로 한국 야구팀에 믿기 어려운 기적을 선사했다. 한국은 지난 9일 호주와의 1라운드 최종전을 앞두고 반드시 '5점 차 이상 2실점 이하'로 이겨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그런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7-2라는 스코어로 승리해 2009년 이후 17년 만에 WBC 8강에 올랐다. 선수들은 경기 후 한목소리로 "5점 앞선 경기에서 마지막까지 이렇게 마음을 졸인 건 처음"이라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한국의 운명이 걸린 호주전에서도 이정후의 존재감은 공수에서 빛났다. 그는 특히 9회 말 1사 1루에서 우중간을 가를 뻔했던 릭슨 윈그로브의 2루타성 타구를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내 실점을 막았다. 그때 이정후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온 건 야구공이 아니라 미국으로 향하는 전세기 티켓이었다. 이정후는 "우리 선수들이 전세기를 타고 MLB의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게 돼 정말 좋다. 앞으로의 야구 인생에 큰 동기 부여가 될 거고, 그걸 계기로 더 많은 메이저리거가 탄생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8강행을 확정한 뒤 후배들과 함께 환호하는 이정후. 연합뉴스

C조 2위 한국은 14일(한국시간)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D조 1위와 WBC 8강전을 치른다. 12일 열리는 도미니카공화국과 베네수엘라의 맞대결 승자가 한국의 상대다. 두 팀 다 내로라하는 메이저리거들이 포진한 야구 강국이다.

1라운드에서 맹활약한 대표팀 중심 타자 문보경(LG 트윈스)은 "미국에서 많은 빅리거를 만나겠지만, 그 누구보다 정후 형과 함께 뛰는 게 더 의미 있다"고 했다. "형이 한국에 있을 때는 다른 팀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한 팀에 같이 있잖아요. 저에게는 그게 더 행복입니다."

도쿄=배영은 기자

도쿄=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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