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은 없고 흉터만 남았다…청년 집어삼키는 3차 노동시장” [쿠키청년기자단]

차서경 2026. 3. 10. 12:5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중소기업 밖 3차 노동시장 출현…청년층 대거 유입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초기 노동 불안정, 10년 뒤 ‘흉터 효과’ 고착”
근로자 넘어 일하는 시민으로… 870만 사각지대 보호 시급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이 청년 노동시장의 삼중 구조와 흉터 효과의 위험성을 역설하고 있다. 김 소장은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일하는 시민’을 보호할 보편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차서경 쿠키청년기자 

한국 청년 노동시장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양분되던 이중 구조를 뚫고, 법적 보호망이 전무한 ‘3차 노동시장’이 거대하게 형성된 것이다. 플랫폼 노동과 특수고용, 프리랜서로 대변되는 사각지대로 청년들이 내몰리고 있다.

지난달 12일 쿠키뉴스와 만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이러한 노동 구조의 균열이 불러올 ‘흉터 효과’를 경고했다. 청년기에 마주한 불안정한 노동 경험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생애 전반에 걸쳐 치유되지 않는 소득과 삶의 격차를 고착한다는 지적이다.

법의 울타리 밖, ‘3차 노동시장’이라는 거대한 사각지대

김 소장은 인터뷰 내내 청년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판도가 바뀌었음을 역설했다. 과거의 갈등 축이 대기업·공공부문(1차)과 중소기업·비정규직(2차) 사이의 이중 구조였다면, 이제는 근로기준법 최소한의 보호막조차 작동하지 않는 3차 노동시장이 그 밑바닥에 새로이 층을 형성했다는 분석이다.

“청년층이 선호하는, 이른바 ‘양질의 일자리’는 고작 15~20%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머지 대다수는 2차 시장, 혹은 그보다 처참한 3차 노동시장으로 떠밀려 가죠. 문제는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국가와 사회가 약속한 최소한의 법적·제도적 안전판이 완전히 증발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김 소장은 기업이 져야 할 경영 리스크를 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기는 플랫폼 산업의 기형적 구조를 질타했다. 퇴직금, 4대 보험, 경력 형성도 불가능한 환경에서 청년들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미래의 안전망을 포기하고 있다.

생애 전반을 잠식하는 ‘흉터’…경력 사다리의 실종

김 소장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3차 노동시장에서의 경험이 축적된 자산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플랫폼 노동과 같은 파편화된 일자리에 장기간 머물수록, 청년들은 직무 역량을 쌓을 기회를 잃고 고립되는 등 심각한 사회적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20세에 플랫폼 노동을 시작한 청년과 노동법의 울타리 안에서 경력을 시작한 청년의 자산은 10년 뒤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 기업은 체계적인 교육과 자기 계발의 기회를 제공하며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여주지만, 플랫폼은 그저 노동력을 소모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생애 초기 단계의 불안정이 10년 후의 삶을 결정짓는 지울 수 없는 흉터가 되는 셈입니다.”

김 소장은 ‘배달 라이더 월 700만원’과 같은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수치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높은 수입이라는 착시 현상 뒤에 가려진 고용 불안정성과 경력 형성의 단절이라는 치명적인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하는 시민’ 위한 보편적 안전망 구축해야

김 소장은 해법으로 ‘근로기준법의 경계 확장’을 제시했다. 연구소 명칭에 ‘노동자’ 대신 ‘일하는 시민’을 새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종속적 고용 관계를 전제로 한 기존의 ‘근로자’ 개념만으로는 870만 명에 달하는 플랫폼 종사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담겼다.

“이제 고용 형태의 유무가 권리의 유무를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플랫폼 노동자도 일터에서의 안전, 괴롭힘 및 성희롱 예방, 사회보험 적용 등 인간다운 노동을 위한 최소한의 보편적 권리를 누려야 합니다.”

현재 국회에는 ‘일하는 사람 권리 보장법’ 등 관련 법안 6건이 계류 중이다. 김 소장은 급변하는 산업 지형에 발맞춰 이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의 책무’라고 역설했다.

“온라인 너머 실체 있는 목소리 내야…연대가 변화의 시작”

인터뷰를 마치며 김 소장은 청년들에게 ‘당사자성’을 회복할 것을 주문했다. 파편화된 개인들의 불만이 온라인 공간을 겉도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체 있는 집단적 의지로 결집할 때 비로소 거대한 구조적 벽을 허물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그는 “청년 100명이 국회 앞에서 일주일만 목소리를 모아도 세상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라며 “각자도생의 굴레를 끊고 노동 조건의 상향 평준화를 위해 직접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십 년간 쌓인 노동시장의 모순을 한술에 배불릴 수는 없겠지만, 1년에 단 한두 가지의 제도라도 함께 바꿔나간다면 우리 사회가 남긴 흉터는 서서히 아물 것”이라며 변화에 대한 희망을 내비쳤다.
차서경 쿠키청년기자 tjrud7975@naver.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