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에 갈 곳 있어 행복,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

유창재 2026. 3. 1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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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노인일자리② ] 아이들과 함께하는 박서영씨 인생 2막... 대덕구시니어클럽 유아돌봄특화형 사업

[유창재 기자]

 대덕구시니어클럽에서 수행하는 아이돌봄특화형(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자인 박서영(66세) 어르신이 지난 5일 대전 대덕구에 있는 메이킨더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동화 구연을 하고 있다.
ⓒ 유창재
3월 전국 유치원들이 문을 열었다. 엄마아빠와 떨어져 사회로 첫 발을 내디딘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노인일자리 사업이 진행된다고 하기에 그곳을 찾았다. 이날은 마침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었다.

지난 5일, 기자가 찾은 곳은 대전 대덕구에 있는 꽤 규모가 큰 유치원이다. 점심을 먹고 난 아이들이 봄 햇살에 더욱 초록빛이 선명한 잔디마당과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교실에서 재잘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싱그럽게 들렸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닥에 편히 앉거나 작은 의자에 몸을 기댄 아이들의 시선이 쏠린다. 낯선 이의 등장에 웅성웅성. 담임선생님이 기자를 간단히 소개했고, 이내 아이들의 작은 소란은 잦아들었다.

잠시 후 이날의 특별(?)한 선생님이 등장했다. 활짝 웃으며 아이들에게 첫 인사를 건네고 중앙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았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춘 후 손에 든 동화책을 한 자 한 자 읽어간다. 10분가량의 동화 구연에 아이들은 귀를 쫑끗 하고 듣는다.

정년 이후 다시 시작한 인생 2막... "아이들 돌보는 건 내가 잘하는 일"
 대덕구시니어클럽에서 수행하는 아이돌봄특화형(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자인 박서영(66세) 어르신이 지난 5일 대전 대덕구에 있는 메이킨더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동화 구연을 하고 있다.
ⓒ 유창재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아이들 돌보는 게 내가 잘하는 일이에요."

이날 아이들 앞에 선 올해 66세 박서영 어르신의 말이다. 올 한 해 이곳 유치원에서 유치원 선생님을 도와 아이들과 책을 읽고, 장난감 정리도 도와준다. 저녁 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식사를 돕는다. 조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돌봄 도우미 역할도 한다. 하루 근무 시간은 약 3시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에게 이 일은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다. 정년 이후 다시 시작한 인생 2막이다.

노인일자리 지원기관인 대전 대덕구시니어클럽이 이런 내용으로 진행하는 유아돌봄특화형(사회서비스형) 사업은 은퇴한 교사 또는 아이돌봄 관련 경력이 있는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일자리다. 양육 공백을 해소하고 노인의 경륜을 활용한 양질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함을 목적으로 한다.

올해로 노인일자리 사업 3년 차인 박 어르신에게 아이돌봄은 낯선 일이 아니다. 대전의 한 어린이집에서 17년 동안 근무했고, 어린이집 원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그 전에는 세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돌본 전업주부였다. 은퇴 후 1년간 쉬었고, 첫 노인일자리로 아동복지센터에서 일했다. 다음해 시범사업으로 진행된 아이돌봄 사업에 참여하면서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됐다.

"동생이 '집에만 있지 말고 이런 일자리 한번 해보라'라고 권했어요. 교육을 받으러 다니면서 '아, 내가 잘하는 게 아이들 돌보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정년 퇴임 당시 느꼈던 허전함도 컸다. 그는 "새 원장님에게 (어린이집을) 인계하면서 많이 슬펐다"라며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정년까지 하니까 더 그렇더라고요"라고 회상했다.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다시 유치원에 나오면서 마음이 달라졌다고 했다.

"(오후에 유치원) 출근할 때 아파트에서 이웃들이 '이쁜이 어디 가?' 그래요. 그러면 '저 유치원 가요'라고 말할 때 기분이 참 좋아요. 이제 1순위가 유치원이에요. 내 일은 내일로 미뤄도 되지만, 유치원 일은 미루면 안 되거든요."

그에게 유치원은 이제 하루의 중심이 됐다. 아이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오전에는 운동과 독서로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 전에는 집안일을 모두 마친다. 가족들의 저녁 식사를 준비해 둔다.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면서 더 부지런해졌다. 유치원 가기 전에 집안일을 다 해놓고 나오기 때문이란다.

그는 노인일자리 사업이 삶에 활력을 준다고 말한다.

"나이 먹으면 갈 데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갈 곳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집에 가서 '외국에 살러 갈 필요 없다.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다'라고 이야기했어요."

유아돌봄특화형 사업은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당시 여성가족부가 함께 추진한 유아돌봄 시범사업에서 시작됐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복지부와 교육부 사업으로 확대됐다. 현재 11명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지난 2월 한 달 동안 30시간의 유아돌봄 교육을 받았다. 보육교사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 문제를 해소하고, 아이들의 안전한 생활을 돕는 역할이다. 대덕구 내 8곳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1~2명이 인력 지원되는 형태다.

근무시간은 장소마다 다른데, 월 60시간(1일 3시간, 주 15시간 이내)이다. 임금은 월 최대 90만 원(시급 12,500원, 주휴수당 포함)을 받는다. 연차수당은 별도 지급된다. 공통된 업무는 아침· 돌봄, 학습놀이·식사·등하원·안전지도, 동화 구연 등 보육교사 보조역할이다. 단순 청소나 조리 중심 업무는 하지 않는다.

월 90만 원 임금... "노인일자리는 돈보다 더 큰 의미"
 대덕구시니어클럽에서 수행하는 아이돌봄특화형(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자인 박서영(66세) 어르신은 대덕구에 있는 메이킨더유치원에 출근해 아이돌봄 도우미로 역할하고 있다.
ⓒ 유창재
박 어르신에게 급여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3시간 일하는 것에 비하면 적당하다"라고 했다. 이어 "물론 더 많으면 좋겠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사업이잖아요"라며 "(노인일자리는) 돈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받은 돈을 어디에 쓸까. 그는 대부분 저축한다고 했다. 조만간 손녀가 태어나면 선물을 사줄 계획이다. 이어 중요한 것은 월급이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라고 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하고 월급 들어오면 기분이 좋죠"라며 활짝 웃는다.

함께 일하는 보육교사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그는 최근 (메이킨더유치원) 원장의 호출을 받았는데, 혹시 '일을 그만두라'는 말이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원장)선생님이 절대 빠지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을 너무 잘 돌봐줘서 다른 선생님들이 칭찬했다고요"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일할 수 있는 감사함과 행복함이 넘쳤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작은 불편함도 있다. "눈이 침침해서 아이들 책 읽어줄 때 글씨가 잘 안 보일 때가 있다"라면서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라는 그는 노인일자리 사업이 더 확대되기를 기대했다.

"이런 일자리가 없으면 어르신들이 갈 곳이 없어요. 갈 곳이 있으면 (하루를) 준비하게 되고, 또 더 건강해지거든요."

매일 오후가 되면, 박 어르신은 아이들이 기다리는 유치원으로 향할 것이다. 그에게 이곳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정년 이후에도 사회와 이어지는 삶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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