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지났어도 여전한 인기, '파리, 텍사스' 리마스터링
[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광활한 사막을 뚜벅뚜벅 걸으며 화면에 등장한다. 의복에는 먼지가 가득 묻어있고, 눈빛은 공허하다. 그는 가진 물이 다 떨어지자 목이 타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마침내 황량한 외딴 술집을 발견한 남자는 허겁지겁 목을 축인 후 긴장이 풀렸는지 쓰러져 의식을 잃는다. 주인이 급히 시골 병원으로 데려가고, 의사는 소지품에서 가족 연락처를 찾아 상황을 전한다.
급히 달려온 사람은 남자의 동생 '월트'다. 오랫동안 행방이 묘연하던 친형 '트래비스'를 찾은 것. 사정을 들어보니 형제간 소식이 끊긴 지 무려 4년이나 지난 상태다. 형을 찾아낸 동생은 그를 데리고 집으로 향하지만, 트래비스는 말하는 법을 잊은 것처럼 여행 내내 아무 말이 없다. 월트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입을 꾹 닫던 그에게서 흘러나온 단 한 마디,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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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 텍사스> 스틸 |
| ⓒ ㈜에무필름즈 |
그런 영화가 21세기 기술 혁신의 수혜를 듬뿍 받아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고화질 및 음향효과와 함께 돌아왔다. 1980년대엔 국내 문턱을 쉽게 넘기 힘들던 독일 영화지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타이틀에 힘입어 첫 공개 이후 3년 만인 1987년, 한국 개봉을 통해 초창기 유럽 예술영화 상징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됐다. 초창기 영화 애호가의 향수를 자극하고, 명성만 들었던 세대에겐 절호의 기회다.
과연 <파리, 텍사스>는 어떤 함의와 가치를 담았을까? 막상 영화 좀 보시라고 호객을 하려면 설명이 참 애매하다. 군침 당기게 현란한 해설을 늘어놓고 싶은데 머릿속이 캄캄해지는 그런 기분이다.
자괴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런 지점이 <파리, 텍사스> 매력의 근본이니 말이다. 작품을 다 보고 내용을 몇 줄로 요약하라면 정말 별 것 없이 단순한 것 같다. 2시간 반 짧지 않은 분량에 대사도 많지 않고 인물들의 과거나 행위 근거도 친절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우선 이 영화 속 인물들은 거창한 담론이나 정교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필사적인 목표 수행을 위해 머리를 짜내고 치밀한 작전을 수립한다거나, 모두가 척~ 하면 알아먹을 개연성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만의 어떤 숙명 혹은 계시를 받아 묵묵히 수행하듯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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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 텍사스> 스틸 |
| ⓒ ㈜에무필름즈 |
대화를 엿들으면 그 소년, '헌터'의 정체가 곧 드러난다. 월터와 '앤' 부부가 돌봐주지만, 실은 트래비스의 아들이다. 이제 곧 8살 되는 아이와 4년 만의 재회. 아이에게 친부가 낯설고 두려운 건 당연하다. 동생 부부는 이 '탕아'를 정성껏 돌보지만,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앤은 헌터를 친자식처럼 여기며 트래비스가 아들을 되찾으려 하지 않을까 좌불안석이다. 헌터 역시 월터 부부를 부모로 인식하며 훌쩍 사라졌다가 불쑥 돌아온 친아빠가 낯설기만 하다.
동생 역시 헌터를 아들처럼 대하지만, 그래도 형의 자식이란 걸 부정하진 않는다. 트래비스도 동생 부부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며, 민폐가 되지 않으려 이것저것 애쓴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인내를 갖고 헌터가 졸지에 '두 아빠'와 동거하는 충격을 완충하려 한다. 다행히 그들의 바람은 순조롭게 흘러간다. 어색하던 부자 관계도 의외로 원만하게 나아가는 참이다. 그런데 뭔가 거대한 공백이 남아 있다.
친부가 돌아왔다. 그렇다면 친모는? 어른들은 말을 흐린다. 예상대로 사연이 많은 게 분명하다. 조심스럽게 '제인'이란 이름이 떠돌기 시작한다. 친부는 가출해 몇 년간 행방이 묘연했지만, 친모 역시 어느 날 훌쩍 어린 아들을 시동생 부부에게 맡긴 뒤 연락이 끊긴 상태다. 이쯤 되면 대체 그들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진상 규명이 화두다. 영화는 감춰진 진실을 풀고, 제인을 찾기 위한 머나먼 여정으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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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 텍사스> 스틸 |
| ⓒ ㈜에무필름즈 |
부모 세대를 향한 냉소와 미지의 신세계를 향한 동경이 결합한 영화의 풍경은 기묘한 질감과 색채로 구현된다. 한없이 펼쳐진 대지에 계시받듯 떠돌던 트래비스가 등장할 때부터 이야기는 상징적 우화로 발걸음을 딛는다.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해진 신발로 사막을 걷고 또 걷다가 역마살이 든 것처럼, 폭신한 침대와 안락한 집을 버리고 다시 (가장 미국적인) 자동차에 몸을 싣고 한없이 달린다.
평범한 교차로가 인생을 건 선택의 갈림길로 변환된다. 트래비스는 어디로 가는 게 맞을지 한참 망설인다. 그러다 문득 인간의 입을 빌린 계시가 들린다. 결심한 그는 주저 없이 방향을 돌린다.
대관절 제인은 어디 숨어 있단 말인가. 트래비스 부자 못지않게 간절해진 관객 앞에 그녀가 등장할 차례다.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서로의 감정을 알지 못한 채, 혹은 숨긴 채 떠돌던 이들이 재회할 찰나다. 엄숙하고 운명적인 대면의 차례. 이 장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오로지 20세기 대중예술 정점인 영화로만 구현할 수 있는 마술의 시간이라 칭하겠다.
사족: 이제 팔십 넘은 노장은 얼마 전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현대 독일의 원죄로 탄생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관해 '영화와 정치는 무관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바람에 논란 중심에 섰다. '어른의 사정'도 느껴지지만,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2026년의 빔 벤더스가 1984년의 빔 벤더스를 부정하거나 지울 순 없는 노릇. 반가운 재회에 그림자를 드리우긴 하지만, 굳이 <파리, 텍사스>를 폄훼할 필요는 없다.
<작품정보>
Paris, Texas
1984 독일, 프랑스 외 드라마, 로드 무비
2026.03.11. (재)개봉 145분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빔 벤더스
출연 해리 딘 스탠튼, 나스타샤 킨스키, 딘 스톡웰, 오로르 클레망, 헌터 카슨
수입/배급 ㈜에무필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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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 텍사스> 포스터 |
| ⓒ ㈜에무필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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