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눈물이 자랑스럽다" 한국 끝까지 괴롭힌 호주야구가 WBC에 남긴 드라마 [더게이트 WBC]
-일본 흔들고 타이완 압도...역대 최강 전력 과시
-전체 1순위 바자나의 눈물...LA 올림픽 기약

[더게이트=도쿄돔]
도쿄돔 스코어보드 너머로 마이애미의 네온사인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9일 한국전만 잡아내면, 아니 지더라도 4점 차 이내만 유지하면 전세기 탑승은 호주의 몫이었다. 전날 디펜딩 챔피언 일본을 7회까지 1대 0으로 틀어막았던 기세라면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야구의 신은 잔인했다. 9회 재리드 데일의 손끝을 떠난 공이 허공을 가르는 악송구가 되고, 안현민의 뜬공이 도쿄돔 외야로 향하면서 스코어는 2대 7로 벌어졌고, 호주의 꿈도 사라졌다. 9회말 1사 1루, 릭슨 윙그로브의 잘 맞은 타구가 이정후의 호수비에 잡힌 순간 사실상 거기서 경기는 끝났다.

최강 일본을 괴롭힌 다크호스
호주는 이번 대회 C조의 완벽한 다크호스였다. 시작부터 강렬했다. 지난 5일 타이완전에서 선발 알렉스 웰스가 10삼진으로 타이완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전체 1순위' 트래비스 바자나(클리블랜드 가디언스)의 7회 솔로포가 쐐기를 박은 3대 0승리는 파란의 예고편이었다.
압권은 일본전이었다. 오타니 쇼헤이와 스즈키 세이야 등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즐비한 일본 타선을 상대로 7회까지 실점 없이 버텼다. 생소한 이름의 투수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세계 최강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다. 7회 요시다에게 역전 2점 홈런을 맞고 4대 1로 뒤집혔지만, 9회 알렉스 홀과 릭슨 윙그로브의 백투백 홈런으로 4대 3까지 따라붙었다. 마지막 타자가 3루 땅볼로 물러나며 끝났지만, 일본 열도를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한 저력이었다.

MLB 전체 1순위가 흘린 눈물
이번 대회 호주 야구는 새로운 슈퍼스타의 탄생도 예고했다. 바로 트래비스 바자나다. 2024년 MLB 드래프트에서 호주 출신 최초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그는 계약금만 895만 달러(약 130억원)를 받은 초특급 유망주다. 바자나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상대 벤치는 일본전 오타니를 상대할 때와 비슷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한국전에서도 바자나는 8회 추격의 적시타를 뽑아내며 끝까지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바자나는 한동안 벤치를 떠나지 못했다. 동료들이 짐을 챙겨 라커룸으로 향하는 동안, 혼자 웅크린 채 도쿄돔의 잔디를 바라봤다. 닐슨 감독은 "바자나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뛴 선수"라며 "지금 라커룸에서 울고 있지만, 나는 그 눈물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나날이 발전했고, 이 대회를 통해 가장 성장한 선수 중 하나"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마이애미 대신 LA를 조준하다
이제 호주 야구는 더는 '이변의 주인공'이라는 수식어에 머물지 않는다. 2023년 사상 첫 8강에서 보여준 실력이 우연이 아님을 이번 대회에서 다시 각인시켰다. 도쿄돔에서 만난 한 야구 관계자는 "호주 대표팀 야구를 보면 정말 까다로운 팀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투수들 구속이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저마다 하나씩 특징이 있어서 처음 상대하는 타자들 입장에선 정말 곤혹스럽다. 타자들도 높은 공이나 실투를 던지면 언제든 담장을 넘기는 파워가 있다"고 평했다.
일본을 7회까지 막아낸 투수진의 짜임새, 도쿄돔을 무대로 4경기 내내 펼친 완성도 높은 경기력은 호주가 이제 국제무대의 상수로 자리 잡았음을 증명했다.
이제 호주의 시선은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으로 향한다. 닐슨 감독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는 베테랑들도 있지만, 코치진과 함께 철저히 리뷰해 약점을 보강하겠다"고 강조했다. 세대교체와 전력 강화, 두 과제를 함께 풀어 LA에서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마이애미행 기회는 결국 아쉽게 사라졌다. 하지만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도쿄돔을 누빈 호주 선수들의 투지와 야구에 대한 애정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호주 대륙 곳곳에 씨앗처럼 퍼져날 것이다. 호주 야구는 이제 막 한 장을 넘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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