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포화 속 흔들리는 ‘파머징 마켓’…제약바이오 업계 긴장
정부 ‘보건의료산업 피해지원센터’ 가동
원가 상승, 기업 수익성 악화로
사태 장기화 우려…“호르무즈 해협 자유 보장 어려워”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의료기기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중동을 핵심 신흥시장으로 삼고 의약품·의료기기 수출 전선을 넓혀온 국내 기업들로서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주목받아 온 중동은 고령화와 의료 인프라 확충, 정부 주도의 보건 투자 확대 등을 바탕으로 ‘파머징 마켓(Pharmerging Market)’으로 부상해 왔다. 파머징 마켓이란 ‘제약(Pharmacy)’과 ‘신흥(Emerging)’을 합친 신조어로, 신흥 의약품 시장을 뜻한다.
국내 헬스케어 기업들에 중동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강점을 보이는 품목은 ‘메디컬 에스테틱’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어스튜트 애널리티카’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미용·성형 시장이 2023년 약 79억달러(한화 약 11조원)에서 2032년 약 188억달러(약 27조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시장에 진출한 국산 메디컬 에스테틱 제품에는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 △휴젤의 보툴리눔 톡신 ‘보툴렉스’ △메디톡스의 히알루론산(HA) 필러 ‘뉴라미스’ 등이 있다.
의약품 시장 전망도 밝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을 비롯한 중동 15개국에 대한 국산 의약품 수출액은 5억6907만달러(약 84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 2018년 이후 5억달러 이상의 수출액을 유지하고 있다.
한미약품과 HK이노엔은 사우디 현지 제약사 ‘타부크’와의 계약을 통해 각각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미국 제품명 롤베돈)와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성분명 테고프라잔)을 중동 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대웅제약 역시 당뇨병 신약 ‘엔블로’(이나보글리플로진)의 사우디 품목허가 절차를 진행하며 중동 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상황이었다.
중동에서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있다. GC녹십자의 계열사인 유전체 분석 및 진단 검사 전문 기업 GC지놈은 2024년 10월 카타르 코리안메디컬센터(KMC)와 협력해 중동 건강검진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 9월에는 다중암 조기검진 서비스 ‘아이캔서치(ai-CANCERCH)’의 중동 시장 확산을 본격화하고 바레인과 사우디 현지 주요 기관들과 협력을 강화했다.
이란 전쟁, 바이오헬스 수출 지형 구조적 변수로
국내 기업들의 중동 시장 확대가 본격화됐지만, 이번 사태로 물류 차질과 현지 의료 수요 위축, 프로젝트 지연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중동 수출 확대 전략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현지 법인을 둔 오스템임플란트는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중동 정세 불안이 지속될 경우 바이오헬스 수출 지형 전반에 구조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글로벌 에너지 동맥’으로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이 마비돼 공급망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사망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차기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상황에서 전쟁은 장기화할 조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이란과의 전쟁이 최소 4~5주, 길어질 경우 그 이상 이어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병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전쟁의 지속 기간과 무관하게 이란 내 강경파의 집권이 유지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의 자유를 보장받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해협의 지리적 특성상 미국이 완벽한 해상 안보를 상시 보장하기엔 현실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며 “결국 항로 정상화는 이란 측의 지정학적 의지에 종속돼 있으며, 전쟁의 종결 방식뿐만 아니라 이란 지도부의 노선 변화가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라고 짚었다.
원료의약품 수급 타격…의약품 부족 심화 우려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원료의약품 수급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업계의 원료 수급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5.6%에 그쳤다. 2024년 자급률은 집계되지 않았으나, 31% 정도로 추정된다. 국산 원료의약품 생산 기반은 미비하다. 2024년 기준 원료의약품 전체 생산액은 4조4000억원으로, 전체 의약품의 13.4%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출용 바이오 품목을 제외하면 실제 비율은 7.8%로 더 떨어진다. 원료의약품이 수급이 어려워지고, 원가가 상승하면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원료의약품 수급 불안정으로 인한 의약품 부족 문제가 심화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의약품 공급 부족 문제가 극심해졌다. 식약처에 따르면 공급이 중단됐거나 부족한 의약품은 2014년 57개에서 2023년 265개로 4.7배 급증했다. 반드시 구비해야 하는 국가필수의약품도 예외는 아니다. 2020년부터 2024년 7월까지 5년간 총 108개의 국가필수의약품 공급이 중단됐다.
국제 유가 급등도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번 사태의 여파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어섰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이는 기업들의 원부자재 수입 비용 상승과 공급 지연으로 이어지며, 항공편 우회 운항까지 겹치면 물류비와 운송 기간도 늘어난다.
업계에선 이번 사태가 물류, 원가, 환율 등 복합적인 비용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은 규제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고, 의료 소비력이 높은 시장이어서 국내 기업들이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해 온 곳”이라며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기업으로선 동남아, 중남미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는 전략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李대통령 ‘검찰개혁 강경론’ 공개 제동…與내부서도 “합리적 접근 원해”
- 범용은 ‘호재’, HBM은 ‘발목’… 美 투트랙 규제에 K-반도체 ‘딜레마’
- 보수 텃밭 TK에 몰린 국민의힘, 수도권·험지 ‘후보난’ 심각
- 중동 전쟁 포화 속 흔들리는 ‘파머징 마켓’…제약바이오 업계 긴장
- 결혼 늘자 혼수 시장 꿈틀…백화점 3사 ‘신혼 고객’ 잡기 위한 경쟁 가속
- 노란봉투법 시행 첫 날…교섭 위한 노사 노력 ‘숙제’
- 가입자 '350만' 몰린 토스 페이스페이...독주 굳히나
- 카타르발 긴급 수송편 인천 도착…국민 322명 무사 귀국
- 불붙은 압구정 재건축 수주전…시공사 경쟁 ‘후끈’
- 무관세 문 열린 수입 멸균우유…국내 유업계 영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