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 문보경 4타점·이정후의 '더 캐치'...류지현호, '경우의 수' 뚫고 17년 만의 WBC 8강행 [더게이트 WBC]

배지헌 기자 2026. 3. 1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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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호주 7대 2 완파...WBC 17년 만에 8강 진출
-문보경 대회 통산 11타점, 참가국 전체 유일 두 자릿수
-손주영 1이닝 교체 악재 속 노경은·조병현 호투로 2실점 사수
한국야구 대표팀이 도쿄의 기적을 이뤘다(사진=KBO)

[더게이트=도쿄돔]

한국 야구 대표팀이 기적 같은 WBC 8강행을 이뤄냈다. 5점 차 이상 승리에 2실점 이하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을 달성하며 17년 만에 본선 토너먼트 문을 열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C조 최종 4차전에서 호주를 7대 2로 꺾었다. 2승 2패를 기록한 한국은 같은 성적의 타이완(대만), 호주와 동률을 이뤘지만 최소 실점률(0.1228)에서 다른 두 팀(0.1296)을 앞서며 일본(3승)에 이어 조 2위로 8강 문을 통과했다. 한국이 WBC 본선 토너먼트에 이름을 올린 건 2009년 준우승 이후 17년 만이다.
문보경의 홈런 스윙(사진=중계방송 화면)

문보경의 미친 존재감

타선의 불씨를 당긴 건 문보경이었다. 2회초 안현민의 안타로 잡은 무사 1루 상황에서 문보경은 호주 선발이자 LG 트윈스 팀 동료인 라클란 웰스의 2구째 몸쪽 낮은 슬라이더를 걷어올렸다. 비거리 131미터. 공이 우중간 담장을 훌쩍 넘어가며 선취 2점 홈런이 됐다.

문보경의 불방망이는 3회에도 이어졌다. 저마이 존스와 이정후의 연속 2루타로 3대 0, 이어진 1사 후 문보경이 우중간으로 2루타를 날려 이정후를 불러들였다. 4대 0. 5회 2사 2루에서는 좌전 적시타로 5대 0을 만들며 '5점 차' 경우의 수를 충족하는 점수를 직접 만들어냈다.

이날 4타점을 추가한 문보경은 대회 11타점으로 이번 WBC 20개 참가국 전체 선수를 통틀어 유일한 두 자릿수 타점을 올렸다. 문보경은 그간 한국시리즈 같은 큰 무대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여온 타자다. LG가 2023년 통합우승을 차지했을 때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타율 0.471(17타수 8안타), 2025년 재패 때는 0.526(19타수 10안타)을 찍었다. 그리고 이번엔 국제 무대에서도 같은 DNA를 발현했다.

경기가 순탄하게만 흘러간 건 아니었다. 선발 손주영이 1회를 무실점으로 마친 뒤 팔꿈치에 불편함을 호소해 강판됐다. 불펜을 일찍부터 가동해야 하는 상황, '2실점 이하' 경우의 수를 맞춰야 하는 경기에서 불펜 소모가 예정보다 빨라지는 건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 있었다.

류지현 감독은 손주영의 부상을 심판에게 알린 뒤 시간을 버는 쪽을 택했다. KBO 직원의 조언에 따라 먼저 손주영을 마운드에 세운 뒤 '갑작스러운 부상이라 시간이 필요하다'고 구심에게 양해를 구했고, 호주 감독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노경은이 몸을 풀고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40대 노장 노경은은 갑작스러운 등판이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2회와 3회를 실점 없이 틀어막으며 팀의 리드를 지켰다. 류지현 감독은 경기 후 "노경은이 갑자기 올라가서 2이닝을 막아준 건 정말 존경스럽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이후 소형준이 5회말 로비 글렌디닝에게 솔로 홈런을 얻어맞아 5대 1이 됐지만, 6회 박영현이 볼넷 하나만 내주고 틀어막았다. 데인 더닝은 무사 1, 2루 위기에서 글렌디닝을 병살타, 윙그로브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크게 포효했다. 그에 앞서 김도영이 6회초 2사 3루에서 우전 적시타를 터뜨려 6대 1로 점수를 벌려뒀다.
김혜성과 이정후(사진=WBC 공식 SNS)

9회, 이정후의 호수비와 안현민의 희생플라이

위기는 8회에 찾아왔다. 8회초 무사 2루 추가 득점 찬스가 무산되면서 점수 차를 벌리는 데 실패한 뒤, 8회말 수비에서 김택연이 선두타자 볼넷과 트래비스 바자나의 적시타로 1점을 내줬다. 6대 2. 5점 차에서 4점 차가 되면서 9회초에 반드시 1점을 더 뽑지 못하면 이겨도 진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상황이었다.

9회초 김도영이 볼넷으로 출루했다. 이어 이정후의 타구 때 KIA 타이거즈 아시아쿼터 유격수 제러드 데일의 악송구가 나오면서 1사 1·3루 기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안현민이 까다로운 공을 잘 받아쳐 중견수쪽 희생 플라이를 만들었다. 대주자 박해민이 홈을 밟으며 점수는 7대 2로 벌어졌다.

8회 1사에서 등판한 조병현이 9회에도 올라왔다. 1사 1루에서 윙그로브가 잘 맞은 우중간 라인드라이브를 날렸지만, 여기서 이정후가 거짓말같은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냈다. 2사 후 조병현이 로건 웨이드를 1루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경기 종료. 마지막 아웃을 잡은 조병현은 글러브를 집어던진 뒤 선수들과 부둥켜 안고 세리머니를 펼쳤다. 류지현 감독을 비롯해 베테랑 류현진까지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류지현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인생 경기인 것 같다.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본선에서의 계획에 관해선 "오늘 경기가 너무 중요했고, 이겨야 마이애미 진출 가능했다. 모든 인원이 오늘 경기 100% 마음과 힘을 모아서 준비했다"면서 "오늘 저녁까지는 마음 비우고 쉬고 싶다. 내일 아침부터 2라운드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한국은 10일 미국 마이애미로 이동해 한국 시간 14일 오전 7시 30분 D조 1위와 준준결승을 치른다. D조에서는 전통이 야구 강국 도미니카공화국과 베네수엘라가 나란히 2승을 기록 중이다. 17년의 기다림은 끝났다. 이제 마이애미행 비행기를 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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