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죄다 농사에 썼는데, 이것 덕분에 1년에 두 번 파마해요"
전국 10개 군 지역이 2월 26일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충북에서는 유일하게 옥천군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월간 옥이네> 104호에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지급되는 1인당 월 15만 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이 '지속가능한 농어촌' 만들기에 기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짚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월간 옥이네]
농어촌 기본소득 이전에 농촌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시도들이 있었다. 농민을 대상으로 한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와 농민수당이 그것.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 땅을 지키는 농민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각각 2012년, 2022년부터 시행됐다. 한 해 18만 원, 60만 원(2026년 기준)씩 지급되는 지원금은 집안일과 농사일로 숨 돌릴 틈 없는 여성 농민에게 잠깐의 휴식으로, 농사에 필요한 자재와 퇴비값으로 사용돼 왔다.
농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탬이 되어준 지원사업이지만 그 속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구멍은 존재한다.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의 경우 제한된 사용처에 따른 소비처 부족 문제가, 농민수당은 해당 연도 하반기에 지급돼 농사가 한창 진행되는 시기에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행을 한 달 앞두고 사용 방법에 대한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시행됐던 지원사업에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와 농민수당 이용자인 이용윤(62)·육정숙(75) 농민에게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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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윤 농민 |
| ⓒ 월간 옥이네 |
품앗이로 서로를 도우며 농촌 공동체를 만들어온 지 10년이 흐르고, 농사의 관심은 들녘을 넘어 한국여성농업인 옥천군연합회, 옥천농협 농가주부모임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땅과 농민의 삶을 살펴온 지 38년. 한 해가 다르게 줄어드는 농민과 그에 반해 상승하는 자재비와 인건비는 '농사 말고 다른 일을 했다면'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농사도 즐겁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해서 농사 관련된 일은 다 쫓아가서 했어요. 힘들어도 힘든 줄도 모르고 했는데... 지난해에 처음으로 농사를 후회했어요. 일은 점점 많아지는데 포도 값은 떨어지지... 젊어서 배운 재봉틀 기술로 도시에 나가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요."
지난해 한 상자에 1만 원 하던 샤인머스캣 가격이 7천 원, 아주 낮게는 5천 원까지 하락하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는 이용윤 농민이다. 한 해 포도 농사에 쓰이는 퇴비와 자재값만 15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가 받는 농민수당 60만 원은 이에 턱 없이 모자란 금액이지만 빚지며 하는 농사에 최소한의 보탬이 돼 준다.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도 마찬가지. 여성농업인에게 지원금은 농사와 집안 일로 평소라면 생각해 보지 못했던 활동을 시도하게 만들어줬다.
"개인 사업을 시작하고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는 3년, 농민수당은 지난해에 못 받았는데 그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받았어요. 농사하랴 집안일하랴 농촌에서 살면 잠잘 시간이 부족해요. 돈이 생겨도 다 농사에 쓰니까 나한테 쓸 일이 없어요. 그런데 바우처는 오로지 저를 위해 쓸 수 있으니 명절 앞두고 파마를 하거나 운동하는 데 보태 썼죠."
청산면 법화리에서 거주하는 육정숙 농민 역시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와 농민수당을 매년 받고 있다. 고향에서 부모님께 농사를 배워 현재 8천 평의 논과 밭에 서 쌀, 고추, 깨, 콩을 농사짓고 있다. 농사 경력만 60여 년이 족히 넘는 그에게도 해가 갈수록 농사는 어렵다. 농사를 '빚'이라고 말할 정도로 지원 없이 농민의 힘으로만 이어가기 힘든 게 농사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와 농민수당은 조금이라도 기댈 수 있는 정책이다.
"고추 소독 한 번에 20만 원씩 들어요. 고추가 병충해에 약하니까 여러 번 소독 하다 보면 100만 원은 금방 쓰죠. 농자재 값도 2천만 원 가까이 들고 씨도 매년 가격이 올라요. 고추는 1200포기 기준 올해 9~10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2만 원가량 올랐어요. 농민수당 60만 원이 충분한 금액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니 없는 것보다 낫죠."
육정숙 농민은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를 일 년에 두 번 머리하는 데 사용한다. 미용실 한 번에 6~7만 원 드는 비용이 부담됐던 터라 바우처 지급 소식이 반가웠다.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농사에 쓰니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없어요. 그런 돈이 생긴다 하더라도 농사에 쓸 생각부터 하게 돼요. 트랙터, 콤바인, 경운기 등 대출받아 농사에 필요한 기계를 사고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비로 100만 원 나가는 건 우습죠. 문화생활은 꿈도 못 꿨는데, 지원금이 나온다 하니 반가울 수밖에요. 일 년에 두 번이지만 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쓴다는 게 좋아요. 안 쓰면 반환되니까 억지로라도 써야 해요. 잠깐 쉴 수 있고 기분 전환도 되고 여러모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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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정숙 농민 |
| ⓒ 월간 옥이네 |
"봄이면 밭갈이부터 퇴비, 씨 뿌리기 등 할 일 이 많아요. 일이 많다는 건 그만큼 돈이 많이 든다는 거고요. 행정상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지만 목적에 맞게 잘 쓰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지급일이 앞당겨지면 좋겠어요." (육정숙 농민)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는 마을 내 소비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불편사항이다. 이용윤 농민이 거주하는 동이면에는 미용실이 없다. 바우처를 사용하기 위해선 옥천읍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이원면, 청산면 같은 경우에는 슈퍼, 미용실이 있어서 다른 마을로 갈 필요가 없어요. 저는 바우처를 미용실과 운동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옥천읍까지 갈 수밖에 없어요. 차로 10분이면 가지만 집 가까이에서,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면 지역에 소비처가 있어도 이용에 어려움은 있다. 육정숙 농민이 거주하는 법화리에서 청산면 소재지까지는 차로 10분, 버스로 30분, 도보로 2시간가량 걸린다. 하루 적게는 1회, 많게는 3회 다니는 버스로는 원하는 시간에 이동이 어렵다.
"저는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남편이 데려다주니까 큰 불편은 없어요. 하지만 마을에 혼자 사는 주민이 많아요. 바우처를 받아도 편하게 이용할 수 없으니 다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저도 남편이 운전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면 쓰기 어려웠을 거예요."
두 농민이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에 대한 불편한 점으로 입 모아 말한 것이 있다.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는 여성 농민의 문화·복지 향상에 목적을 둔 정책으로 병원 사용이 제한돼 있다. 근골격계 질환, 농약중독 등의 검진을 지원하는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이 있지만 일주일에 두 번 꾸준히 병원을 찾는 이들은 병원까지 소비처를 늘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협심증과 무릎 연골 손상으로 병원에 다녀요.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해요. 슈퍼, 미용실보다 더 자주 이용하는 곳이 병원이에요. 나이 들면서 아픈 곳이 많아지니까 병원비 걱정이 커요. 바우처로 병원까지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용윤 농민)
2023년 농림축산식품부 여성농업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농업인 연령 분포는 40대 이하 6.3%, 50대 14.8%, 60대 40.9%, 70대 이상 38%로 나타났다. 70대 이상이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농업인의 고령화는 면 지역에서 더 쉽게 볼 수 있다. 생계를 위해, 일손 부족으로 80대에도 농사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지난해 전남도와 제주도에서는 여성농어업인 행복바우처 지급 대상을 75세에서 80세로 확대했다. 육정숙 농민은 "마을에 80대 이상의 여성 농민이 많다. 바우처 대상자 연령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법화리는 마을이 3반까지 나뉘어져 있어요. 1반만 해도 20가구가 넘어요. 대부분 70~80대예요. 우리 마을에는 90세 넘은 어르신도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지어요. 자녀들이 이제 그만하라고 하지만 농촌에서 살려면 규모는 줄여도 농사는 멈출 수 없어요. 바우처는 75세까지 받을 수 있는데 주변을 보면 그 나이 넘어서까지도 농사짓는 이가 많아요. 이런 현실이 정책에 반영되길 바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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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정숙 농민의 밭. 지난해 들깨 타작한 흔적이 남아있다. |
| ⓒ 월간 옥이네 |
현재 법화리 에는 일주일에 두 번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실은 이동트럭이 방문한다. 40여 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이동트럭은 물건을 사기 위해 마을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주민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해 줬다. 하지만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없어 앞으로 농어촌 기본소득을 사용하려면 소비처를 찾아 나서야 한다.
"차가 없는 법화리 주민들은 면 소재지보다 이동트럭을 이용해요. 이동트럭은 제가 40대 때부터 오기 시작했어요. 다른 지역에서 여러 대가 왔었는데 지금은 대전에서만 화·금요일에 와요. 필요한 물건을 전화로 주문하면 가지고 오니 집 가까이에서 편리하게 물건을 살 수 있어요. 하지 만 주로 현금을 쓰고 대전에서 오다 보니 지역 화폐 사용이 안 돼요. 지역화폐로 나오는 농어촌 기본소득은 이동트럭에서 사용할 수 없으니까 걱정이 많아요. 옆 마을 청성면은 가게가 없어서 청산이나 보은, 영동으로 가요."
10개의 지자체에서만 진행되는 농어촌 기본소득을 바라보는 시각도 걱정이다. 농민수당과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를 이용하면서 농민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농어촌 기본소득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을지 조심스럽다.
"돈도 잘 벌면서 지원금까지 받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농사할 땅도 있고 수확량도 많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하지만 포도 한 송이를 내기까지 과정을 알면 그렇게 말 못 할 거예요. 농사를 크게 지을수록 농자재, 농기계, 인건비 등 돈이 많이 들어요. 부족하면 대출 받아야 하고... 그렇게 1년 동안 죽어라 농사했는 데 가격 안 나오면 허탈하죠. 농촌에서 농민으로 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지원금이 나오는 이유를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이용윤 농민)
농어촌 기본소득을 어떻게 쓰고 싶냐는 질문에 두 농민은 주저 없이 농사와 집안에 필요한 데 쓰고 싶다고 답했다. 15만 원 속 자신을 위한 소비 계획은 없지만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두 농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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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윤 농민의 포도밭 |
| ⓒ 월간 옥이네 |
글·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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