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역사 밖, 우리가 몰랐던 '아즈텍' 이야기

이완우 2026. 3. 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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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

[이완우 기자]

역사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 일컬어지듯, 정복자의 시선으로 덧칠한 패자의 모습은 편견의 굴레에 갇히곤 한다. 한번 왜곡된 인식은 오래도록 진실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곤 한다.

카밀라 타운센드(Camilla Townsend)의 <아즈텍(Fifth Sun : A New History of the Aztecs)>은 아즈텍 문명을 피의 제국으로만 이해해 온 기존 인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카밀라 타운센드의 저서 번역본인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2025년 9월 출간)를 읽었다.
 책표지
ⓒ 현대지성
이 책은 신화를 해설하는 책이라기보다 아즈텍 역사를 원주민 기록으로 재구성한 역사서에 가깝다. 이 책은 아즈텍인들이 직접 남긴 연대기를 바탕으로, 그들의 기원부터 테노치티틀란의 번영, 정복의 비극, 그리고 정복 이후 후손들의 끈질긴 생존기까지를 연대기적으로 촘촘하게 재구성했다.

이 책의 저자(카밀라 타운센드)는 스페인 측 기록 대신 원주민의 언어인 '나와틀어'를 익히고, 아즈텍의 문헌을 발굴하였다. 저자는 아즈텍인들을 잔혹한 광신도가 아닌 고도의 철학과 정교한 외교를 구사한 지적 주체인 보통 사람들로 되살려냈다. 이는 박제된 패배의 역사를 역동적인 생존과 저항의 서사로 전환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아즈텍을 잔혹한 광신도가 아닌 고도의 정치 체제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지적 주체로 묘사했다. 인신공양 또한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아즈텍 제국 질서의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코르테스를 신으로 착각했다는 신화 역시 정복자의 허구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즈텍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음을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가뭄과 기근이 닥쳐 힘든 상황에서 그들은 간절하게 신에게 기도하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눈꺼풀이 붓고, 입이 말라 입술이 얇아지며,
목구멍의 색이 바랬습니다.
아이들에게서 전혀 활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뒤뚱거리고 기고, 요람에 누운 아이들까지
모두 고뇌와 고통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찌 인간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십니까?

그들은 성실하게 살아가며 때때로 신에게 기도하며 성찰 하였다.
혹여 우리가 오만하고 건방지고 무례해지거나,
땅과 재산을 욕심내고 독식하거나,
사악하고 무분별하고 어리석어진다면
신께서는 진정 눈물 흘리고 슬퍼하는 이들,
동정을 받을 만한 이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시옵소서.

아즈텍 신화 읽기의 관문, 나와틀어

카밀라 타운센드가 복원한 아즈텍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인 나와틀어(Nahuatl)에 내재된 독특한 인식 체계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나와틀어는 사물을 고립된 명사로 박제하지 않고, 서로 다른 실체가 만나 형성하는 '관계'와 '사건'을 통해 세계를 정의한다.

이러한 사유의 바탕에는 주어와 목적어가 동사 안에 녹아들어 하나의 사건으로 결합되는 나와틀어 특유의 문장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나와틀어에서는 '나는 사과를 먹는다'를 "Nicuā in xocotl"처럼 표현하는데, 여기서 'ni-'는 '나'를 뜻하는 주어 접두사로 이미 동사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문장의 중심은 '먹다(cuā)'라는 사건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주어와 목적어 모두가 동사에 결합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언어 형식은 아즈텍 사회가 존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는 '생성'의 과정으로 인식하게 한다고 한다.

나와틀어의 특징은 문장 구조 뿐 아니라 어휘를 만드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이 언어에서는 하나의 개념을 단순한 명사로 고정하기보다, 서로 다른 요소가 만나 이루는 관계나 결합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도시를 뜻하는 말은 문자 그대로 '물(atl)과 산(tepetl)이 만난 곳'이라는 뜻의 결합어로 표현되는데, 이는 사람들이 물과 산이라는 자연 환경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도시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또 권력이나 통치를 상징하는 표현 역시 '상자(petlacalli)와 바구니(chiquihuitl)'처럼 공동체의 재물과 곡식을 담는 물건의 결합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권력이 단순한 지배가 아니라 공동체의 자원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이처럼 나와틀어의 조어법은 사물을 고립된 개체로 규정하기보다 여러 요소가 맺는 관계와 기능을 통해 의미를 드러내는 특징을 지니며, 세계를 서로 연결된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 했던 아즈텍인의 사고방식을 엿보게 한다.

아즈텍의 이러한 언어 인식과 세계관의 이해는 서구 정복자들이 덧씌운 잔혹한 이분법적 프레임을 깨뜨리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결국 이 책은 승자의 언어로 기록된 박제된 과거를 넘어, 상대를 제거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동사로 인식했던 아즈텍인의 인식 체계를 오늘날의 갈등 사회에 다시 불러올 가치가 있다. 사물보다 관계와 동사를 중시하는 나와틀어 특유의 사유 방식을 통해, 아즈텍 문명이 지녔던 역동적인 관계의 철학과 회복력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구성이자 특징이다.

카밀라 타운센드가 그려낸 아즈텍인의 내면을 관통하는 핵심 열쇠는 '테오틀(Teotl)'이다. 이를 서구 사회에서는 고정된 '신'의 개념으로 이해해 온 경우가 많았다. 테오틀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근원적 에너지이자 운동 그 자체라고 한다. 이 책은 상대를 제거할 장애물로 규정하는 현대의 이분법적 폭력 앞에, 갈등조차 우주적 균형을 위한 관계 맺기로 보았던 아즈텍의 지혜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승리의 명사에 매몰되지 않고 공존의 동사를 지향하는 아즈텍인들의 사유는, 혐오와 배제가 일상이 된 오늘날 갈등과 분열이 심화된 세계 속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가치가 말살이 아닌 역동적 연결에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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