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러 인천에서 여의도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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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기자]
차미경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경. KBS의 한 장애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인 차 작가로부터 방송 출연 요청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내가 방송 주제의 배경이 되는 기사나 글을 전하면 차 작가님이 깔끔한 스크립트로 다듬어 줬다. 내가 이끄는 무의가 하는 일이 이동 장애뿐 아니라 다양한 장애와 다양성으로 확대하게 된 데엔 차 작가와의 방송이 큰 영향을 끼쳤다. 차 작가는 라디오 작가를 그만둔 이후에도 페이스북에 특유의 정곡을 찌르면서도 따뜻한 글을 써 왔다. 그가 쓴 다양한 글, 특히 영화나 드라마 등 대중문화 비평을 모아 책 <기울어진 스크린>이 나왔다. 책 소개를 보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알 수 있다.
"장애인은 뭐 맨날 희망을 노래하고 꿈을 그리고 써야 하나? "아, 저들은 저렇게 사는데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이런 값싼 자기 위안과 가짜 희망을 주자고 우리와 그들로 구분 지으며 장애인을 대상화 해 얻는 감동 추구는 이제 그만하자. 대중문화가 장애를 보여 주는 방식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마침 여의도에 영화를 보러 나온 차 작가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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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미경 작가 휠체어석이 영화관 맨 앞이 아닌 뒷편에 있는 곳을 찾아 서울 여의도까지 온 차미경 작가 |
| ⓒ 차미경 |
"<휴민트>를 봤다. 여의도 CGV 중 휠체어석이 맨 뒤에 있는 상영관이 있어 이곳을 자주 찾는다. 영화관 휠체어석은 거의 다 맨 앞에 있어서 보기가 불편하다. 휠체어석이 뒤에 있는 곳이 몇 개 되지 않는다. 신촌 아트레온도 뒤에 휠체어석이 있지만 거기는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이동을 또 해야 하니까. 용산 CGV도 뒷좌석에 휠체어석이 있는 곳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없어졌다."
-그러고 보니 안 지 오래되었는데도 작가님이 어떻게 휠체어를 타게 됐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소아마비로 여러 번의 수술을 했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장애 접근성에 대한 개념도 시설도 없던 때라 어떻게든 걸어야 한다며 다리가 휘면 수술을 하고 목발 짚고 다녔다. 아버지가 공무원 하기를 원하셔서 사회복지연수를 받고 사회복지 자격증을 따서 공무원 시험을 봤다. 면접관이 노골적으로 장애를 이유로 떨어뜨렸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다른 곳에 면접을 보러 가도 위아래로 훑어보곤 떨어뜨렸다. 아버지의 꿈을 이룰 수가 없더라.
그러다가 광주 장애인 시설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케어하는 일이었다. 혼자 내려가겠다고 하니 엄마는 반대하셨는데 아버지는 찬성하셨다. 1년 동안 편의시설 하나 없는 곳에서 3, 4층을 목발로 오르내리며 일하다 보니 몸이 축났다. 갑자기 몸이 안 움직이더라. 류마티스였다. '장애인 아닌 환자가 됐다.' 의사가 걷지 말라고 조언하더라. 맞는 약을 찾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몸이 가장 아팠던 스물 아홉살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35세경부터는 휠체어로 정착하게 됐다."
-방송작가는 어떻게 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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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미경 작가가 KBS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던 시절 차미경 작가가 KBS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던 시절 출연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 ⓒ 차미경 |
"방송을 오래 하다 보니 모든 콘텐츠를 '장애 필터'로 보게 되더라. 책은 에이블뉴스 더인디고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았다. 방송도 하고 장애인식교육도 나가다 보니 방송에서 틀린 이야기 하면 어떻게 하지? 하며 자기 검열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심지어 장애 당사자가 쓴, 추천도서라는 책들조차도 장애 편견이 담긴 경우가 많더라. 늦깎이로 대구대학교에서 장애학을 공부하던 당시 들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논문 심사를 받기 위해 조한진 교수에게 '장애 당사자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논문을 쓰겠다'고 했더니 조 교수님이 바로 피드백을 주시더라. "장애 당사자의 말이 다 맞습니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당사자가 쓴 글이라도 비장애중심주의적일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검열하며 쓴 칼럼들을 모았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 미디어나 대중문화에서의 장애 묘사가 더 나아진 건 아닌가?
"그런가? 글쎄...당장 며칠 전에도 패럴림픽 중계 방송을 보며 실망했다. 우선 사정은 모르겠지만 올림픽 독점 중계권을 따온 JTBC가 패럴림픽은 중계 안 한다는 데에 실망했다. 패럴림픽은 KBS에서 방송한다고 하여 한국 패럴림픽 선수를 소개하는 방송을 봤는데 주로 연예인으로 구성된 패널들이 선수들을 보며 "감동적이다" "대단하다", "존경스럽다"는 말만 반복하더라. 지나치게 영웅 서사를 끌어내려는 억지가 보였다. 일종의 '영감 포르노'(장애인의 행동을 지나치게 감동적이고 비장애인에게 영감을 주는 것으로 소개하는 경향)다."
장애인 영웅서사 좀 그만
-방송작가를 하셨으니 그런 의도가 더 잘 보이셨겠다.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유퀴즈>에 출연한 걸 봤는데 비슷한 서사라도 억지 감동을 끌어내려 하기보다 담담하고, 때로는 재치와 유쾌함으로 풀더라. 유독 장애인의 서사는 왜 개인의 투지와 극복 서사에만 집중하는지 모르겠다. 지체장애 선수가 훈련장에 경사로가 없어서 계단을 기어 올라가서 훈련에 임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에 감동할 게 아니라, 왜 계단을 경사로로 바꾸지 않는지, 왜 훈련 인프라가 이토록 열악한지를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기어가는 걸 감동으로 치환하면 기어가지 않거나 기어갈 수 없는 장애인은 게으른 것인가.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시스템의 부재를 개인의 극복으로 덮어버리는 서사에 지치곤 한다.
최근 드라마 중 <프로보노> 3, 4회를 보며 특별히 더 문제의식을 느꼈다. 지체장애 학생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데, 특수학교로 가고 싶어도 지역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고 있어서 못 간다는 설정이다. 결국 문제 해결 방식이 재벌의 도움을 받아서 특수학교를 짓고 거기 전학간다는 결론이었다. 일단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지체장애학생 중 상당수는 실제로 일반학교에 다니는 데다가 모든 장애학생들이 기본적으론 일반학교에서 함께 통합교육받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특수학교를 해결책으로 묘사하고, 특수학교 건립을 자선에 의존하는 걸 비판 없이 그린 게 영 마뜩치 않았다.
소위 장애인식개선드라마라고 하는 드라마들도 보면 여전히 장애 관련해서 바뀐 법적 현실이나 권리 현실을 제대로 묘사하는 대신 시혜적으로 그린 경우가 많다. 안타깝기도 하고, 수십년 동안 장애인식개선을 한다고 하는데 아무 소용이 없던 게 아닌가 하는 허무함마저 든다.
어떤 비장애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장애인화장실, 엘리베이터, 다 있잖아. 지하철로 외출 가능하잖아. 뭐가 걱정이야." 하지만 형편없던 과거의 현실과 지금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아직 시각, 청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권은 갈 길이 멀다. 예를 들어 수어로 소통하는 농인들의 미디어 접근성은 어떤가. TV방송에 수어통역이 등장하긴 하지만 선거토론 방송에서 한 사람이 여러 후보자의 수어통역을 다 하는 걸 보면서, "저걸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보접근성을 이야기하고 있자니... 최근에 <눈에 선하게>라는 책을 읽으며 화면해설에 관심이 높아졌다. 영화나 드라마 장면을 묘사하는 게 화면해설인데, 이 분들은 단어 하나를 고르더라도 매우 고심을 하더라. 장애 시청자들을 겨냥한 화면해설도 단순히 정보 접근 수준이 아니라 다양한 표현을 쓰려는 노력까지 같이 할 수 있겠구나, 해외에서는 화면해설을 어떻게 하는지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장애인이 등장하는 작품 중에서 추천작이 있다면.
"장애를 극적 도구로 사용하는 대신 장애를 일상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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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우리 둘 사이에 포스터 2025년작 <우리 둘 사이에>. 장애여성의 임신 출산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 성지혜 감독의 독립영화. 2024년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시네마 섹션 초청작이자, 동년 제24회 가치봄영화제 초청작이다. |
| ⓒ (주)인디스토리 |
요즘 주변에 많이 추천해 주고 있는 중국 영화 <작고 작은 나>도 있다. 뇌병변을 가진 주인공이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의 꿈을 지지하는 할머니와의 관계가 따뜻하게 그려진다. 주인공이 버스에서 차별 받는 현실에 맞서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나서기도 한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비장애인으로 아이돌 스타인데 뇌병변을 가진 인물을 놀랍게 묘사해 낸다."
- 앞으로의 계획은?
"출판사와 다음 책을 준비 중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친구 넷이 하는 여행도 계속하려고 한다. 휠체어를 타고 길을 나서면 변수가 너무 많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뜻밖의 기쁨, '세렌디피티'가 있다.
휠체어 이용자 넷이 다니기가 녹록지 않다. 제주도에는 휠체어 4대가 들어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없어졌다. 통도사 같은 곳에 가려면 울산과 양산 장애인콜택시를 다 등록해야 한다. 지자체마다 장애인 콜택시 이용 등록 방식이 다르고, 어떤 경우는 2년마다 별별 증명서를 다 내야 한다. 울산 장콜에서 요구하는 '장애등급결정문' 서류를 떼러 갔더니 공무원이 '단지 택시를 타는 것뿐인데 그런 걸 요구하냐'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더라. 지역 버스정류장은 저상버스의 발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인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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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미경 작가의 <기울어진 스크린> 책과 쉬운도서 차미경 작가의 장애 렌즈로 본 대중문화 비평 에세이집인 <기울어진 스크린> 책은 발달장애인들이 읽기 쉬운 쉬운도서로도 나왔다. |
| ⓒ 차미경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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