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과 날렵 사이... 경주에서 마주한 르노코리아 필랑트의 두 얼굴
김종철 2026. 3. 9. 14:57
[오마이뷰] 세단의 안정감과 SUV의 여유 사이, 르노코리아가 시장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다
[김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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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랑트는 또 하나의 SUV가 아니다. 세단과 SUV 사이의 경계를 다시 정의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르노의 의지가 담겨있다. SUV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승차감과 세단의 정숙성과 안정적인 주행 질감을 갖춘 차. 지난 2월까지 사전 계약대수가 7000대를 넘었다. |
| ⓒ 르노코리아 |
경주의 3월 공기는 변덕스러웠다. 흐릿하고 차가운 바람이 일다가도 어느새 햇볕이 드리웠다. 지난 5일 경주 보문단지 주변에 늘어선 차량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르노코리아가 새롭게 선보인 '필랑트(FILANTE)'였다. 보문단지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국도와 산길의 곡선도로를 돌아오는 왕복 3시간. 트랙 위에서 짧게 속도를 올려보는 자리가 아니라, 실제로 소비자가 차를 만나는 길 위에서 '필랑트'를 제대로 확인하고 느끼는 자리였다. 자동차는 결국 숫자보다 길에서 말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날 경주의 길은 이 차의 성격을 꽤 또렷하게 드러냈다.
처음 마주한 필랑트는 요즘 유행하는 크로스오버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어딘가 결이 달랐다. 앞모습은 단정했지만 밋밋하지 않았고, 옆모습은 길게 뻗은 루프라인 덕분에 스포츠다목적자동차(SUV)라기보다 차라리 키를 조금 높인 패스트백 세단에 가까워 보였다. 뒤로 갈수록 매끈하게 빠지는 차체 비례는 "공간만 넓힌 차와는 다르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덩치를 키우는 데 집중한 차가 아니라, 큰 차를 어떻게 덜 둔하게 보이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르노코리아가 내놓은 새로운 '크로스오버'의 문법, 필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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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노코리아 신차 필랑트의 후면부. ‘필랑트’는 별똥별을 의미하는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후면부가 이를 잘 반영한 다자인이라는 것이 르노쪽 설명이다. |
| ⓒ 김종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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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랑트의 실내는 르노 스스로 ‘프리미엄 테크 라운지’라고 부른다. 거실 같은 편안함과 기술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강조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운전석쪽에 세 개의 12.3인치 디스플레이가 하나의 패널처럼 이어져 있다. 이들 디스플레이는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
| ⓒ 김종철 |
실내에 들어서면 인상은 더 분명해진다. 수평으로 길게 펼쳐진 디스플레이와 운전자 중심으로 정리된 각종 구성요소들, 넉넉한 시야와 비교적 절제된 버튼 배치가 눈에 들어 온다. 화려하게 과시하기보다 정돈된 분위기로 승부하려는 쪽이다. 르노코리아가 필랑트를 통해 강조하는 것도 결국 그런 대목일 것이다. 넓은 공간, 장거리 주행의 편안함, 그리고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과 정숙성. 단순히 '큰 차'가 아니라 오래 타도 피곤하지 않은 차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실내 전반에 배어 있다. 실제 3시간여 동안 다양한 도로를 타는 동안, 기자가 느낀 피로감은 생각보다 적었다.
시동을 걸고 도심 구간을 벗어나자 가장 먼저 다가오는 건 매끄러움이다. 출발은 조용하고, 초반 가속은 경쾌하다. 하이브리드 시스템 특유의 전기모터 보조가 저속에서 차를 가볍게 밀어내고, 속도가 붙으면 엔진이 자연스럽게 힘을 보탠다. 억지로 두 동력이 이어 붙는 느낌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역할을 바꾸는 쪽에 가깝다. 속도에 따른 변속 이질감은 적고, 불필요한 울컥임도 크지 않다. 시내에서 잦은 신호와 저속으로 따라갈 때 운전자가 가장 먼저 체감하는 기술은 결국 이런 부드러움이다. 필랑트는 그 기본기를 꽤 성실하게 갖춰 놓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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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일 경주 보문단지 일대에서 르노코리아의 신차 필랑트의 미디어 시승회가 열렸다. |
| ⓒ 르노코리아 |
고속도로에 올라 가속페달에 조금 더 힘을 주자 차의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난다. 덩치가 있는 차들은 속도가 올라갈수록 차체가 공기 위에 살짝 뜨는 듯한 느낌을 주기 마련인데, 필랑트는 오히려 반대였다. 속도가 붙을수록 차가 노면 쪽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또렷했다. 차선을 바꿀 때도 차체의 중심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운전대도 지나치게 가볍지 않다. 그만큼 고속 구간에서 신뢰감을 줬다.
무엇보다 실내 정숙성이 인상적이었다. 노면 소음과 풍절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 귀를 거슬리게 파고드는 종류의 소음은 상당히 잘 눌러놓았다. 장거리 이동에서 중요한 건 순간적인 폭발력보다 이런 안정감과 피로도의 차이인데, 필랑트는 그 점에서 충분한 차별성과 경쟁력을 보여 줬다.
필랑트 특유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절정... 튼튼한 기본기에 정숙성, 안정감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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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노코리아가 새롭게 선보인 크로스오버 필랑트. |
| ⓒ 김종철 |
하지만 이 차의 진짜 실력은 국도와 와인딩에서 드러났다. 경주 외곽의 굽잇길로 접어들자 누구나 한 번쯤 품게 되는 질문이 생긴다. "이 정도 체급의 차가 코너에서 얼마나 버틸까." 생김새만 보면 우아하고 안락한 쪽에 가까워 보이지만, 첫 번째 굽이를 돌아 나가는 순간 그 선입견은 조금씩 옅어진다. 운전대를 꺾었을 때 앞머리가 생각보다 빠르게 방향을 바꾸고, 코너 중반에서도 차체가 한 박자 늦게 무너지지 않는다. 과장된 스포츠 성능을 내세우는 차는 아니지만, 적어도 운전자의 입력을 무디게 흘려보내는 차는 아니다.
연속되는 굽이에서는 하체 세팅의 성격이 더 분명해졌다. 단단함만 앞세워 불편을 감수하게 하는 세팅이 아니라, 충격은 두텁게 걸러내면서도 차체의 상하 움직임은 과장하지 않는 방식이다. 노면이 거칠어진 구간에서도 차가 필요 이상으로 튀지 않았고, 굽은 길을 연속해서 돌아나갈 때도 자세가 쉽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쉽게 말해 '편한 차'인데, 그렇다고 심심한 차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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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노코리아의 신차 필랑트. 기존 SUV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그래서 르노는 이 차를 ‘크로스오버’라고 한다. 단순히 SUV에 쿠페 스타일을 더한 것이 아니라 세단과 SUV의 특성을 동시에 담은 새로운 접근이라는 것이다. |
| ⓒ 김종철 |
이 차에 담으려 한 성격이 바로 여기에 있는 듯했다. 고속도로에서는 묵직하게 거리를 삼키고, 국도에서는 승차감을 놓치지 않으며, 곡선 구간에서는 운전자에게 적당한 자신감을 주는 차. 르노코리아 기술개발 총괄을 담당한 관계자는 "안락함과 운전 재미 사이에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절충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필랑트가 자동차 시장에 던지는 질문
여기에 각종 주행 보조 장비가 더해지면 장거리 이동수단으로서의 장점은 한층 선명해진다. 차간거리 유지와 차선 유지 같은 기능은 이제 많은 차에 들어가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자연스럽고 과하지 않게 개입하느냐다. 필랑트는 운전자를 몰아내기보다 보조하는 쪽에 가깝다. 장시간 운전에서 오는 긴장을 조금 덜어주되, 차를 다루는 감각까지 빼앗아가지는 않는다. 기술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배경으로 물러나 있을 때, 운전자는 오히려 차의 완성도를 더 크게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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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일 경주 보문단지 일대에서 르노코리아의 신차 필랑트의 미디어 시승회가 열렸다. 사진은 니콜라 파리 르노코리아 대표가 인사말을 하는 모습. |
| ⓒ 르노코리아 |
돌아오는 길, 다시 고속도로 위에 차를 올리자 필랑트의 성격은 한 문장으로 정리됐다. 직선에선 묵직했고, 굽이에선 날렵했다. 세단처럼 매끈하게 달리고 싶지만 SUV의 공간과 시야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효율과 정숙성을 챙기면서도 운전의 감각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차는 꽤 설득력 있는 답안처럼 보였다. 요즘 많은 자동차가 '경계를 허문다'는 말을 하지만, 정작 길 위에서 그런 말을 납득시키는 차는 많지 않다. 경주의 길 위에서 만난 필랑트는 적어도 그 문장을 공허한 광고 문구로 남겨두지는 않았다.
시승을 마치고 차에서 내렸을 때 남는 인상은 단순했다. 이 차는 보여주기 위해 만든 차라기보다, 오래 달려보라고 만든 차에 가까웠다. 화려한 한 방보다 꾸준히 쌓이는 신뢰, 과시보다 완성도, 그리고 덩치에 비해 의외로 세련된 움직임. 르노코리아가 필랑트에 담아낸 것은 결국 그런 성격이었다.
경주 길 위에서 만난 필랑트는 조용히, 그러나 꽤 분명하게 말했다. 큰 차라고 해서 반드시 둔할 필요는 없다고. 그리고 편한 차라고 해서 재미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는 것. 지난 2월까지 사전 계약대수가 7000대에 이른다. 소비자들의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다. 이제 거리 위에 나설 '필랑트'의 본 모습을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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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일 경주 보문단지 일대에서 르노코리아의 신차 필랑트의 미디어 시승회가 열렸다. |
| ⓒ 르노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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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일 경주 보문단지 일대에서 르노코리아의 신차 필랑트의 미디어 시승회가 열렸다. 사진은 르노코리아 필랑트 개발 연구진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모습. |
| ⓒ 르노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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