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절대 못 쓰는 글'로 책 내는 사람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송경동 2026. 3. 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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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길동무 르포문학교실을 시작합니다

[송경동 기자]

어줍잖게 시인이지만, 르포기록문학 관련 일을 많이 했다.

첫 르포 관련 작업은 구로공단(현 가산디지털산업단지)에서 <구로노동자문학회> 활동을 할 때였다. 평범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누구나 글을 쓰고 읽으며 자신의 삶을 가꾸고 반추할 수 있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 아니겠냐는 꿈을 가지고 생활문학운동을 할 때였다.

1997년이었다.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과정에 생겨났던 나우정밀노동조합이 부도낸 회사를 따라 해산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안타까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1년여 동안 공동작업을 통해 나우정밀노동조합사 <영원히 꺼지지 않는 투쟁의 불꽃으로>를 엮어냈다. 이 글을 쓰며 검색을 해보니 2017년에 나우정밀노동조합 30주년 기념 영상이 올라와 있다. 회사와 노동조합은 사라졌지만 이렇게 서로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 앞에서 잠시 울컥한다. 30년 전이니 그때 우리 모두 이제 막 20대를 지나가던 청년들이었다.

1998년 그해엔 더불어 '일하는 사람들의 샘터지'를 표방하며 <격월간 진보생활문예지 삶이보이는창>을 창간하기도 했다. 1990년 초반 현실사회주의권들이 무너지며 덩달아 한국사회의 진보운동들 역시 흔들렸다. 한 시절 반짝였던 노동자·민중들의 문학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질문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었다. 교조적이고 전형적이며 전위적인 문학은 한풀 꺾였지만 전망이 사라져도 힘써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자리는 변함이 없었다. 그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서 다시 평범한 사람들의 말을 모아 가보자는 마음이었다. 고인이 된 조세희 선생님은 그런 우리의 소박한 작업을 늘 응원해 주셨다.

"한국은 아직도 끔찍한 '배반의 시기'를 지나는 중이나 그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이 밤에도 구로동 어느 건물에서 「삶이 보이는 창」 50호를 만들고 있을 젊은 친구들에게 축하와 격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맙다는 인사의 말을 함께 보낸다."
- 소설가 조세희, '삶이 보이는 창 50호 발간을 축하하며'에서

'르포'를 되살리다

5년여를 지속해서 어느 정도 잡지 운동이 자리가 잡힌 후 2003년엔 <여성노동자글쓰기교실>과 <르포문학교실>을 열었다. 시인이 왜 대중적인 시창작교실이나 소설창작교실은 열지 않고 딴짓을 하냐고 했지만 난 위의 두 교실이 시대적으로 의미가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당시 '르포'라는 말은 한국사회나 언론, 문단에서도 전혀 쓰지 않아 폐어가 된 상태였다.

1980년 전후 잠깐 수기나 르포문학이 반짝였지만 이내 사라진 후 자취가 없었다. 조세희 선생님 씀처럼 "한국은 여전히 끔찍한 '배반의 시기'를 지나는 중"인데 앞선 시기 치열했던 문학은 후일담 언저리로 후퇴해 간 형국이었다. 그렇게 문학이 바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어떤 진면목들을 알려 나가기 위해 장르의 성격상 생생한 현재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르포기록문학'을 부활시켜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짧은 생각이었다.

20여 년 가까이 사문화되어 있던 르포를 가르칠 수 있는 강사를 찾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꼭 르포가 아니더라도 유의미한 사회적 기록작업을 해왔던 이들을 찾아 강의를 부탁했다. 앉아서 공부만 하는 교실이 아닌 실천적인 교실로 기획했다. 르포교실 1기생들은 강좌에 이어 곧바로 '르포작업반'으로 전환해서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생계를 위협당하는 청계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도시빈민 르포집 <마지막 공간>을 공동 집필했고, 2기생들은 당시 첨예해지고 있던 비정규직노동자 문제를 다룬 <부서진 미래>를 공동작업해 냈다.

소위 말하는 등단도 하지 않은 이들인데, 검증도 안 된 이들인데 책을 내줄 수 있냐는 반대도 있었지만 고집스레 밀어부쳤다. 다행히 두 권 모두가 화제의 책이 되면서 르포기록문학의 부활이 이루어졌다. 관련 작업의 사회적 유의미성을 본 <한겨레21>이 르포문학상을 제정하고, 마산창원, 인천, 구로 지역 문학인들이 '르포문학교실'을 연달아 열면서 르포기록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참여가 넓혀져 갔다.

이후 르포문학교실에 함께 하거나, 그 사회적 역할에 주목했던 이들은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투쟁을 기록한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작업과 용산철거민참사 당시 서울 경인지역 철거민들의 삶과 투쟁을 기록한 <여기 사람이 있다>, 그리고 세월호참사 기록집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희망버스 당시 펴낸 <깔깔깔 희망버스> ,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을 다룬 <섬과 섬을 잇다1·2> 등의 발간에 함께 참여하며 소중한 사회적 역할을 해주었다.
 <말해요 찬드라> 겉표지
ⓒ 삶이보이는창
<삶이보이는창>에 연재되었던 이란주 씨의 이주노동자인권르포집 <말해요 찬드라>는 한국 르포기록문학의 한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했다. 당시 함께 개설한 여성노동자글쓰기교실 수강생들 역시 지금까지 후속모임을 지속하며 <기록되지 않은 노동 : 숨겨진 여성의 일 이야기> 등을 펴냈다. 그렇게 르포기록문학의 새로운 시작을 여는데 작은 일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책임은 다하지 못했다. 그 소중한 기록작업에 앞서 주었던 여러 르포기록문학가들의 노고에 참 감사한다.

길동무 르포문학교실이 열어갈 또 다른 세계

그리곤 다시 한참 세월이 흘러 2023년. 청년시절 박정희 독재정권의 공안조작사건 피해자였던김판수 선생님과 문학운동의 큰 어른이신 염무웅 선생님의 여러 배려와 제안으로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일을 시작하면서 시와 소설창작교실과 함께 '길동무 르포문학교실'을 다시 열게 되었다.

여전히 더 많은 르포기록문학가들의 역할이 소중한 시대인데 동력이 조금은 소진된 상태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직접 쓰지는 못하지만 그런 르포기록문학가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며 소중한 역할들을 해주는 과정에 허드렛일이라도 거들며 힘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길동무 문학학교 르포교실 졸업생들의 작품활동
ⓒ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문학학교
그렇게 다시 '길동무 르포문학교실'로 모인 이들과 함께 코로나 시기 2중, 3중으로 배제된 자들의 르포기록집인 <숨을 참다>와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르포집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를 펴냈다. 현재는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과 '전국생태환경운동 실태조사' 등의 사업을 통해 한국사회 환경생태운동의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세상과함께'와 공동기획단을 꾸려 <오마이뉴스>에 3년여째 전국환경생태운동 현장르포 연재 운동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지난 2년에 걸쳐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었던 총 49회의 전국환경생태르포는 올해 상반기 중 오마이북을 통해 발간 예정이기도 하다. 올해는 총 30회 연재를 준비 중이다.

어쩌면 도래한 AI(인공지능) 시대에 한층 더 중요한 장르가 될 문학이다. 지금 여기-오늘의 말을 AI가 창작하거나 추론해 낼 수 있을까? 오늘 그곳에 있는 누가 어떻게 말하고 증언했다는 것을, 그 순간 그의 눈시울에 얼마만큼의 설움과 아픔이 서렸다는 것을, 지금 그곳에서 어떤 일이 구체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AI가 창작해 줄 수 있을까. 오늘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났다고 거짓말할 수 있을까. 추론하거나 창작하여 글을 작성하는 순간 100% 허위나 위증이거나 가짜뉴스가 되고 마는 르포기록문학의 지금-여기를 AI가 침범할 수 있을까.

그런 존엄한 인간의 삶과 문학을 지키고 꿈꾸는 '길동무 르포문학교실'에서 또 다른 세계를 열어 갈 당신을 만나고 싶다.
 5기 길동무 문학학교 모집 웹자보
ⓒ 길동무
【2026년 길동무 르포문학교실 신청하기】 https://forms.gle/kjFBRRghjXYUvJfm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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