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연쇄살인마란 걸 알았을 때... 이 드라마의 딜레마
[김성호 평론가]
중국 춘추전국 시대 초나라 섭현의 관리(섭공)였던 심제량은 공자와 나눈 몇 토막 대화를 통하여 후세에 제 이름을 새겼다. 개중 특별히 많이 인용되는 건 다음의 이야기다.
하루는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을의 올곧은 자는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이를 증언했답니다." 이에 공자가 답하기를 "우리 고을의 올곧음은 그와는 달라요. 아버지는 아들을 숨기고 아들은 또 아버지를 숨겨주죠." 죄를 지은 아버지를 숨기는 아들, 또 아들을 감추는 아버지가 올곧음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이 유학, 나아가 동양이 기리는 최고의 성인인 공자의 답인가. 혼란을 느낄 이가 없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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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덱스터 스틸컷 |
| ⓒ 쇼타임 |
이는 <맹자> '진심장구 상'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맹자는 순 임금과 죄를 지은 그 아버지에 빗댄 가상의 사례로부터 사회의 정의와 가족 간의 도가 충돌할 때 우선돼야 할 가치를 말한다. 유학적 세계관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순 임금조차도 대죄를 저지른 아버지가 처벌을 받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리라는 것. 공자에 이어 맹자 또한 죄를 지은 아버지를 구하는 것이 올곧음이라 답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후세에 꾸준히 회자되는 건 공적 정의와 사적 도리가 충돌할 때 무엇을 지지해야 하느냐는 물음이 여전히 유효한 때문이겠다.
미국 쇼타임 명작 드라마 <덱스터>, 그중에서도 시즌7은 공적 가치와 사적 도리가 충돌하는 상황의 딜레마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 시리즈에 대한 평에서 소개했듯, 작품은 연쇄살인마 덱스터 모건이 경찰의 추적과 흉악범죄자들의 위협을 이겨내며 살인행각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연쇄살인마라는 설정부터가 낯선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살인마 편에 서서 그를 응원하게 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범죄물과 분명한 차별점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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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덱스터 스틸컷 |
| ⓒ 쇼타임 |
문제는 이로부터 사이코패스적 특성을 더는 유지하기 버거워졌다는 점에 있다. 감정을 느끼고 타인과 교감하는 덱스터가 어찌하여 제 타깃에겐 여전히 냉혹한 살인마일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드라마가 균형점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생겨났던 것.
시즌7은 마침내 문제를 터뜨리는 주요한 시즌이 된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이어진다. 하나는 마이애미 경찰청 형사를 살해한 우크라이나 범죄조직 일원을 살해한 덱스터가 도리어 그 조직의 주요 인사인 아이작 시르코(레이 스티븐슨 분)에게 추적을 당한다는 것. 필요하면 가차없이 사람을 죽이는 아이작의 추적이 시시각각 덱스터를 향해 오는 가운데, 덱스터가 제 앞에 놓인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가는 과정이 긴장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아이작이 간만에 등장한 인상적 악당이란 점에서 함량미달의 악역 탓에 긴장까지 무너졌던 지난 시즌의 과오를 완전히 씻어낸다.
다른 한 줄기는 덱스터의 마음을 뒤흔드는 한나 맥케이(이본 스트라호브스키 분)의 존재다. 왕년에 유명했던 연쇄살인마의 애인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그녀는 평범한 삶을 갈구함에도 좀처럼 그와 같은 일상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유명한 연쇄살인마의 여자친구란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하나 있다. 바로 주인공 덱스터다. 과거 살해당한 희생자의 시신을 찾는 작업 가운데 그녀에게서 석연찮은 구석을 발견한 덱스터는 그녀가 실제로는 연쇄살인에 가담한 동조자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경찰과 별도의 추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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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덱스터 스틸컷 |
| ⓒ 쇼타임 |
그러나 무엇보다 시즌7을 충격 가운데 몰아넣는 건, 비단 이 시즌만이 아닌 전체 시리즈의 변곡점이라 할 만한 이야기겠다. 다름 아닌 덱스터의 동생 데브라가 덱스터의 진면목을 알고 고통 받으며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이르는 대목이다. 시작은 덱스터에게 의심을 느낀 라구에타 경감이 비공식적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것부터다. 덱스터가 어쩌면 과거 마이애미를 충격에 빠뜨린 '항만 도살자'일 수 있다는 의심은 수사가 전개되며 점차 굳어져 간다.
시즌6의 마지막에서 덱스터의 살인 장면을 목격했던 데브라는 심적 고통 속에 덱스터의 검거만큼은 막으려 하지만 그 작업이 쉽지가 않다. 그리고 마침내 라구에타와 덱스터 사이에 끼고 마는 것이다. 마이애미 경찰청 최연소 경위 승진자인 경찰 데브라가 제 오빠를 돕느냐 사건을 감추느냐 사이에서 고통 받는 모습은 지난 일곱 시즌 동안 그녀를 지켜봐온 시청자들에게도 상당한 딜레마적 고통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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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덱스터 포스터 |
| ⓒ 쇼타임 |
그리고 또 한 가지, 위와 같은 유학의 사례를 언급하면서도 좀처럼 돌아보지 않는 이야기 또한 언급해 마땅하다. 맹자는 분명 순 임금의 아버지가 살인을 하였다면 순 임금이 그를 업고 도망칠 것이라 말하였다. 사례자가 순 임금이란 사실은 유학을 공부하는 이라면 누구나 그와 같이 행동할 것이란 말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은 이로부터 아버지와 자식 간의 도리가 세상 어떤 정의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읽는다. 그러나 어디 그뿐일까.
순 임금은 임금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손에 쥔 이조차 제 아버지가 받아 마땅한 벌을 부당하게 피하도록 한다면 그 왕좌를 내려놓아야 한다. 왕이 제 가족을 챙기느라 세상의 정의를 해한다면 더는 왕일 수 없다. 그것이 맹자가 순 임금이 아버지를 업고 바닷가 마을로 가 숨어 지낼 것이라 이야기한 이유다. 권력은 물론, 세상을 떳떳하게 거닐 자유까지 잃은 채 아버지를 구하는 것, 그것이 순 임금이, 또 마땅히 배운 자들이 해야 할 선택이라고 맹자는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데브라의 선택과 고통이 그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덱스터> 시즌7은 사적복수를 넘어 사적도리와 공적정의의 충돌이라는 딜레마적 난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와 마주한다. 이로부터 용두사미 되기 십상인 시즌제 드라마 사이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명작으로 남았다. 훌륭한 선택이 마땅한 보답을 받은 결과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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