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죽음'이 만든 걸작,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이유
[김동근 기자]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일은 축복 같은 일이다. 부모는 그 작은 생명이 처음 숨을 쉬던 순간부터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그 축복 같은 시간을 지켜내기 위해 부모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돈을 벌어야 하고, 집안일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 집이라는 공간을 안전하게 지켜내야 한다. 그렇게 부모의 걱정과 사랑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자라난다.
하지만 세상에는 부모가 아무리 애써도 막을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 불가항력적인 사건으로 아이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 상실감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뛰어놀던 공간들, 처음 세상에 태어났던 순간,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 다투던 기억들까지 모두 부모의 마음 속에 남는다. 특히 아이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지 못한 부모라면 그 상처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 <햄넷>은 바로 그런 부모의 상실감과, 그 상실을 견디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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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햄넷> 장면 |
| ⓒ 유니버설 픽쳐스 |
가끔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는 아이들과 누구보다 다정하게 시간을 보낸다. 아내와의 관계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윌리엄은 가족을 도시로 데려와 함께 살고 싶어 했지만,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가족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게 가족간의 심리적 거리를 멀어지게 했을 수는 있다. 특히 아녜스는 남편을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끝내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지 않았을까.
그런 거리감이 조금씩 커지던 순간, 아들 헴넷(자코비 주크)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윌리엄은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지 못했다. 아이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상실감은 한동안 그의 삶의 의지를 무너뜨리지만, 동시에 살아야 할 이유를 남긴다. 그렇게 그는 결국 비극 햄릿을 쓰게 된다. 그 작품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잃어버린 아들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이자 상실감이 만들어낸 거대한 에너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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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햄넷> 장면 |
| ⓒ 유니버설 픽쳐스 |
하지만 윌리엄이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녜스의 마음에는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오랜 기간 동안 남편을 이해하려 했던 마음 밑에 서서히 섭섭함이 쌓여갔다. 그리고 헴넷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비극이 찾아왔고, 그 모습을 뒤로하고 윌리엄이 다시 도시로 돌아가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감정은 분노로 바뀐다. 아녜스는 남편이 너무 쉽게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마치 남편은 그 깊은 절망을 같이 공유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녀의 분노는 차가움으로 변한다. 그 차가운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그녀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다. 아녜스는 도시로 가서 윌리엄이 살던 공간을 보게 되고, 이후 윌리엄이 쓴 연극 햄릿을 보게 된다. 그동안 남편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녀였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남편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깨닫게 된다. 연극 속에서 다시 살아난 헴넷의 마지막 순간을 보며 아녜스는 비로소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떠나가는 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된다.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 역시, 아녜스가 가진 깊은 통찰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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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햄넷> 장면 |
| ⓒ 유니버설 픽쳐스 |
하지만 그 위로의 대상은 결국 헴넷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헴넷은 마지막 순간 쌍둥이 동생 대신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말한 아이였다. 어린 나이에 삶을 마감한 그 아이의 이야기를 주욱 따라왔던 영화 관객들은 그 마지막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흔들린다. 아픈 마음을 느꼈던 관객들은 결국 연극 햄릿을 보던 모든 관객과 함께 헴넷의 마지막 순간에 위로를 받는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위로의 장면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한 아이를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미는 장면은 슬픔이 단지 개인의 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슬픔을 예술로 바꾸는 방식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서 보여준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감정을 아주 섬세하게 담아낸다. 상실과 슬픔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화면은 아름답고 차분하다. 오히려 그 조용한 연출이 감정을 더 강하게 흔들어 놓는다. 그가 담은 자연의 이미지, 한 집안의 이미지 그리고 연극무대의 이미지는 너무나 아름답고 잘 짜여져 있어 영화의 슬픔과 위로 같은 감정을 무척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이 영화의 큰 힘이다. 윌리엄 역을 맡은 폴 메스칼은 절제된 감정 속에서 상실을 표현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아녜스를 연기한 제시 버클리의 연기다. 그녀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위로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현하며 영화 전체의 중심을 잡는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녀의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연기였다.
또한 영화의 음악과 영상 역시 매우 뛰어나다. 자연과 사람의 감정을 연결하는 장면들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흘러간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아주 보편적인 가족의 이야기다. 동시에 자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서로 다른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여성이 슬픔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삶을 지켜내는 강인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극장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 그 감정의 여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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