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美 러브콜 보낸 이유"…자원 전쟁 속 '게임 체인저'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정진주 2026. 3.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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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울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현장 방문
불순물에서 인듐·안티모니 추출하는 통합 제련 기술 경쟁력
미국 전략광물 공급망 구축 위해 고려아연에 협력 요청
온산 모델 기반 10조 '크루서블' 미국 제련소 추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전 세계가 핵심 광물을 둘러싼 '자원 전쟁'에 들어섰다. 중국이 희토류와 전략 광물 수출 통제를 강화하자 미국 정부와 방산 기업들의 시선은 한국 울산의 한 제련소로 향했다. 지난 5일에 찾은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는 단순한 금속 제 공장이 아니었다. 불순물 속에서 99.999% 순도를 끌어내는 기술로 인듐과 안티모니 같은 전략 광물을 생산하는 곳. 미국이 10조원 규모 전략 광물 제련소 건설을 추진하며 파트너로 고려아연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이 공장에 있었다.

온산제련소는 울산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비철금속 제련소다. 총 부지 면적은 약 43만평으로 아연, 연, 동 등 10여 종의 비철금속을 연간 100만t 이상 생산한다. 단지 내부에는 아연·연 제련 공장을 비롯해 동 생산 공장, LNG 복합화력발전소, 원료 저장시설, 물류단지, 배터리용 동박 공장 등 총 7개 생산·지원 시설이 집적돼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이날 가장 먼저 인듐 공장에 들어서자 이미 진공 포장을 마친 은빛 금속 덩어리들이 정갈하게 쌓여 있었다. 고려아연은 전 세계 제련소 중 인듐 생산량이 가장 많으며, 2024년 기준 연간 92t을 생산해 세계 수요의 약 11%를 책임지고 있다.

잉곳은 개당 무게가 5kg에 달하며 현재 가격은 하나에 약 500만원 수준이다. 불과 한 분기 전만 해도 t당 6억원 수준이던 인듐 가격은 중국의 수출 통제와 전략광물 공급망 경쟁이 겹치면서 최근 10억~11억원까지 급등했다.

한때 디스플레이 산업 소재로 주로 인식되던 인듐이 반도체와 태양광, 첨단 전자소재로 활용되면서 각국이 확보 경쟁에 나선 결과다. 불순물 속에 미량으로 섞여 있는 금속이 글로벌 공급망 경쟁의 핵심 자산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러한 가치는 고려아연의 독보적인 회수 기술에서 나온다. 전종빈 고려아연 전자소재팀 책임은 "인듐을 만드는 기술 자체는 보편적일 수 있지만, 전용 원료가 없더라도 아연·연 정광이나 태양광 폐기물 등 어떤 원료에서든 인듐을 뽑아내는 것이 우리의 진짜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버려지는 부산물조차 자원으로 바꾸는 통합 공정 시스템이 자원 무기화 시대에 강력한 무기가 된 셈이다.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귀금속 금과 은. ⓒ고려아연

김승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장도 이러한 경쟁력의 기반을 '통합'에서 찾았다. 김 소장은 "전 세계에서 아연, 연, 동 공장이 한곳에 모여 불순물을 서로 주고받으며 제어하는 제련소는 우리가 유일하다"며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든 불순물 제거 기술을 20년 전부터 확보해 독보적인 영업이익률을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말 이 같은 통합 공정을 기반으로 한 '아연·연·동 통합공정을 활용한 희소금속 농축·회수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달라는 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여기서 고려아연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지표가 바로 최고 수준의 순도인 '파이브나인'(5N)이다. 파이브나인이란 순도 99.999%를 의미한다. 이러한 고순도 제품 생산이 가능한 이유는 고려아연만이 보유한 독보적인 불순물 제어 시스템 덕분이다.

대표적인 기술이 아연 제련 과정에서 철(Fe)을 제거하는 '헤마타이트 공법'이다. 이 공법은 유가금속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금속 회수율을 극대화하는 기술로, 고려아연만이 유일하게 상용화한 기술이다. 최근 국가핵심기술로 편입된 이 기술로 고려아연은 전 세계 아연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고려아연이 생산한 전략광물 안티모니가 온산제련소에 적재된 모습.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온산의 '연금술' 태평양 건넌다…미 안보 허브가 될 10조원 '크루서블'

고려아연은 이제 온산의 성공 방정식을 미국 테네시주로 옮겨 심는다. 총 투자금 약 10조원 규모의 '크루서블(Crucible)' 프로젝트다. 2026년 부지 조성을 시작해 2029년부터 단계적 가동에 들어갈 이 제련소는 연간 약 110만t의 원료를 처리해 온산의 절반 수준인 54만t 규모의 최종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곳에서는 아연·연·동 등 기초 금속뿐 아니라 금·은 같은 귀금속과 안티모니,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갈륨, 게르마늄 등 핵심 전략 광물이 함께 생산될 예정이다.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고순도 황산 생산도 포함된다. 온산제련소의 통합 제련 기술을 그대로 확장한 북미 전략광물 공급 거점인 셈이다.

총 투자금 약 10조원 규모의 이 사업은 미국 국방부와 상무부가 직접 투자자로 참여할 만큼 전략적 가치가 크다. 중국의 전략 광물 수출 통제에 맞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을 원하는 미국의 강력한 러브콜이 반영된 결과다.

김승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장이 지난 5일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려아연

주목할 점은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해외 생산기지 건설이 아니라 온산제련소 자체의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구조라는 점이다. 고려아연은 1990년대 후반 호주 썬메탈제련소(SMC) 건설 이후 오히려 온산의 기술 축적과 경쟁력이 향상됐던 성공 경험을 재현할 방침이다.

특히 미국은 환경과 안전, 품질 규제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곳이다. 이를 준수하기 위해 개발된 첨단 공정 기술과 운영 시스템은 역으로 온산제련소에 이식되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선순환'의 핵심이 된다.

인력 운용에서도 시너지가 발생한다. 미국 제련소 건설과 운영을 위해 온산의 숙련된 전문가들을 투입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이를 대체할 신규 인력을 대거 채용한다. 온산 현장에 핵심 광물 신규 설비가 계속 확충됨에 따라 추가 인력 확보도 병행된다.

김 소장은 "미국 제련소는 온산의 모든 집약된 기술을 기반으로 하되 인공지능(AI)과 자동화를 적용한 차세대 스마트 제련소가 될 것"이라며 "미국에서 개발된 기술과 운영 노하우는 다시 온산으로 돌아와 제련소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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