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쿠르드족, 이란 전쟁에 불쏘시개 돼선 안 돼

2026. 3. 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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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지도가 전쟁 후에도 지금과 같을 것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말할 수 없다. 아닐 거다”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민족 구성이나 중동지역의 복잡한 국가관계 및 지형을 잘 알고 한 말이라면, 이는 단순히 이란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이란을 둘러싼 거대한 지각변동을 뜻한다. 이란의 지도가 지금과 다를 거라는 말에는 수십 년 동안 중동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는 엄청난 변화가 담겨 있다.

「 이란 등 4개국에 4000만 명 거주
쿠르드, 이란 침투 땐 아수라장
트럼프의 활용 번복은 잘한 일

이란은 다민족 국가다. 신생아의 약 60%만 태어날 때부터 이란의 국어인 페르시아어를 쓴다. 나머지 약 40%는 크게 튀르크어인 아제르어, 튀르크멘어, 이란어 계통인 쿠르드어 등 여러 개의 다른 언어가 있다. 이러한 비(非) 페르시아어 사용 소수민족 중 인구 규모가 큰 민족은 아제르족(약 20%)과 쿠르드족(약 15%)이다. 아제르족의 주 거주지는 이란 서북쪽인데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다. 같은 말과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국경의 북쪽에 아제르바이잔이라는 국가를 이룬 반면 남쪽은 이란에 속해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한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도 아제르족 출신이다. 아제르족은 이란이라는 나라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이란인으로 사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란에서 분리 독립해 궁극적으로 북쪽의 아제르바이잔과 한 나라를 이루길 원하는 소수 분리독립 운동가들이 있다.

이란의 쿠르드족 인구는 800만~ 1200만 명으로 추산하는데, 주로 서북쪽에 거주한다. 험한 산악지역으로 이라크·튀르키예와 맞닿은 곳이다. 쿠르드족은 이란뿐 아니라 튀르키예·이라크·시리아 등 모두 4개 나라에서 소수민족으로 산다.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는 튀르키예다. 주로 튀르키예 동부지역에 사는데, 인구가 약 1600만 명을 상회한다. 시리아는 약 200만 명, 유일하게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라크에는 약 500만~800만 명이 산다. 모두 합하면 이들 네 나라의 쿠르드족 인구는 무려 약 4000만 명에 이른다. 나라를 이루지 못한 것은 쿠르드족이 하나로 통합되기에는 지형이 험한 산악지역이라 정치적 공동체를 이루기 쉽지 않았고, 쿠르드가 독립하는 것을 쿠르드족이 사는 네 나라도 모두 반대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나라에서라도 성공하면 불똥이 튈까 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란에서 약 8%를 차지하는 발로치족은 이란·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 맞물리는 지역에 산다. 발로치족 역시 분리 독립해 나라를 세우려 한다. 그래서 이를 막으려 근래 이란과 파키스탄이 발로치 지역을 공격한 적도 있다. 이란 남쪽에는 약 2%의 아랍인이 산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아 이라크에 있는 이란계 쿠르드 반군의 이란 투입 계획을 접은 것은 현명한 일이다. 이란이 주변국의 미군기지를 공격하면서 전쟁 양상이 한층 복잡해졌는데, 미국의 원래 계획대로 쿠르드 반군이 이란에 침투해 정국 혼란을 부추길 경우 이란 정부에 타격을 주는 것을 넘어 중동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튀르키예는 쿠르드의 성공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란에서 쿠르드가 분리 독립할 경우 그 여파는 바로 튀르키예로 넘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유화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쿠르드의 독립은 여전히 언감생심이다. 이라크 쿠르드족은 이란계 쿠르드족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했다. 수십 년간 소외, 배제, 불의와 차별을 겪어온 쿠르드족은 IS 퇴각전과 시리아 내전에서 겪은 배신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미국의 불쏘시개로 이용당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소수민족 문제를 이용해 이란 정권을 공격하려다 여러 소수민족이 봉기하여 주변국으로 문제로 번지면 이란은 제2의 발칸반도가 될 것이다. 지도를 바꾼다는 말에 담긴 뜻이다. 지도를 바꾸는 가능성을 일단 차단한 이라크 쿠르드족은 우리 자이툰 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한국을 좋아하는 쿠르드인들이 열강의 불쏘시개가 아니라 주역으로 당당히 힘을 발휘하길 바란다. 유가가 급등하는 지금, 전쟁이 조속히 끝나는 게 한국 국익에도 이익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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