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어르신 5만원…다문화 청소년 대학 보낸 1600만원의 기적[아살세]

김수연 2026. 3. 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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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어려운 이웃들까지 십시일반
등록금 1600만원 손길 이어져 다문화 청소년 8명 대학 진학
온누리교회 하랑센터 “교회가 이주민 돌봄 공동체 역할”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한 노인이 최근 다문화가정청소년센터 하랑센터에 전달한 5만원. 오른쪽은 지난달 하랑센터 졸업생들과 박승호 목사가 전북 전주시 전주서문교회 종탑 아래에서 졸업여행 중 기념촬영을 한 모습. 하랑센터 제공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던 한 노인이 최근 다문화 청소년들을 돕는 하랑센터를 찾았다.

평소에도 아이들 간식이라며 초코파이나 요구르트를 검은 봉지에 담아 걸어두곤 하던 노인의 손에는 작은 흰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봉투 안에는 만원짜리 다섯 장, 5만원이 들어 있었다. 한달 동안 폐지를 주워 모은 돈이었다. 노인은 봉투를 내밀며 짧게 말했다.

“아이들 학비에 보태주세요.”

이 작은 나눔은 교회와 이웃들의 손길과 더해져 결국 다문화 청소년 8명을 대학으로 보내는 밑거름이 됐다.

최근 경기도 포천시 하랑센터에서 졸업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센터 교사들이 축복기도를 해주고 있는 모습. 하랑센터 제공

서울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 사회선교부가 운영하는 경기도 포천 다문화가정청소년센터 하랑센터(센터장 박승호 목사)는 올해 센터 소속 졸업생 8명이 모두 대학에 입학했다고 8일 밝혔다.

올해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중앙대, 서울시립대, 경동대 등 다양한 전공 분야로 진학했다. 하랑센터는 2024년 2명을 시작으로 지난해 5명에 이어 올해까지 꾸준히 졸업생 전원을 대학에 입학시켰다. 학업과 진로 준비, 등록금 마련까지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교회와 후원자들의 지속적인 지원이 이어지며 가능했던 일이다.

대학 진학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등록금이었다. 하랑센터 청소년 가운데는 불법체류자 자녀나 난민 신청자 가정 자녀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거나 미등록 이주민 가정 자녀인 경우 국가장학금 등 공적 지원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도 포천시 하랑센터에서 교사가 졸업생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는 모습. 하랑센터 제공

센터는 지난해 12월부터 학생들이 국가장학금 대상이 되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며 준비에 나섰다. 일부 학생은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서류 문제 등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예도 있었다. 이에 센터는 교회와 후원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등록 마감일까지 필요한 금액 약 1600만원이 모두 채워졌다.

후원에는 폐지를 줍는 노인을 비롯해 주변 이웃과 여러 교회의 손길이 이어졌다. 규모가 큰 교회가 아닌 작은 교회들이 아이들의 사연을 듣고 마음을 모았다. 재작년 논산 지역 아웃리치로 인연을 맺은 한 시골 교회에서도 “우리도 선교에 동참하겠다”며 후원금을 보냈다. 또 박승호 목사가 센터에 오기 전 사역했던 인도 선교지의 한인 사역자 20여명도 100달러씩 선교비를 보내 힘을 보탰다.

박 목사는 “누군가에게는 커피 몇잔 값일 수 있지만,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에게는 한달 동안 골목을 돌며 리어카를 끌어모은 땀의 값이었다”며 “그 작은 봉투 안에는 아이들의 미래를 응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형편이 어려워 기도만 해주신 분들도 많았고, 아이들 합격 소식에 저보다 더 기뻐해 주신 분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오른쪽은 지난달 하랑센터 졸업생들과 박승호 목사가 전북 전주시 전주서문교회에서 졸업여행 중 기념촬영을 한 모습. 하랑센터 제공

현재 하랑센터에는 11개국 출신 청소년 약 80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이 가정처럼 쉬고 잠을 자며 학교생활과 관계, 진로와 신앙을 상담받는 사실상 ‘그룹홈’ 역할을 하고 있다. 2024년에는 이랜드와 진로체험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기업 관계자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멘토링 강사로 참여하도록 했다. 또 관심 분야에 따라 위탁학교나 직업교육 과정에 참여하도록 돕고 필요한 경우 후원금을 통해 학원 등록도 지원했다.

센터에는 박 목사 부부가 상주하고 있으며 자비량으로 섬기는 청년 간사 두명도 함께 사역하고 있다. 그중 장수혁(31) 간사는 낮에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저녁에는 센터 아이들을 위한 차량 운행과 찬양 인도, 음악 교육 등을 맡고 있다. 장 간사는 2023년 센터 캠프에서 드럼 봉사자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센터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선생님이라는 직함보다는 오빠나 형, 삼촌 같은 사람으로 아이들 곁에 있고 싶다”며 “아이들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존재라는 믿음이 있기에 어떤 대가가 없어도 기쁨으로 섬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매년 대학 진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는 장학금 수여식을 진행하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시작된 졸업여행 전통에 따라 지난달 12일부터 2박 3일간 졸업생들과 전주를 찾아 전주서문교회와 예수병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대학 등록을 마친 뒤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직접 작성했다(사진).

“장학금을 마련해주신 분들을 직접 알지는 못하지만 기억해주시고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감동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경제적 도움을 넘어 ‘응원받고 있다’는 마음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하랑센터 학생 김○주)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이어진 나눔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손길로 저희를 세심하게 돌보고 계심을 느끼게 됐습니다. 이 귀한 나눔을 마음에 새기고 언젠가는 저 역시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을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하랑센터 학생 유○영)

박 목사는 “많은 아이가 처음에는 대학이라는 꿈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다”며 “센터에서 돌봄을 받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비전을 갖게 됐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찾아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 배경 가정 자녀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전문적으로 돌보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공동체는 결국 교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문화 사역을 단순한 긍휼 사역이 아니라 선교 사역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한국교회가 이주민 사역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하랑센터가 하나의 모델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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