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테논 신전급" 캐나다 건축가가 극찬한 서울의 건축물
[임영열 기자]
|
|
| ▲ 종묘의 중심 건물 정전. 1985년 국보로 지정됐다 |
| ⓒ 국가유산청 |
정치와 종교가 하나이던 정교일치(政敎一致) 시대. 신전은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종교적 의례를 통해 통치의 정당성과 권위를 높였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이태리 로마의 판테온, 중국 베이징의 태묘(太廟)처럼 세계 모든 민족들은 다양하고 고유한 형태의 신전을 지었다.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신전은 지금까지도 인류문화유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동양의 파르테논 신전 '종묘(宗廟)'
"건축으로 이렇게 고요하면서 경건한 공간을 만든 건 기적에 가깝다.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을 굳이 말하라면 파르테논 신전 정도일까?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자기만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대체 누가 우리나라 어떤 건축물을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하며 이토록 극찬했을까. 캐나다 출신 미국인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 1929~2025)가 한국의 종묘를 방문하고 남긴 소감이다. 프랭크 게리뿐만 아니다. 일본 현대 건축의 거장 시라이 세이이치(白井晟一 1905~1983)도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에는 종묘가 있다"라며 종묘의 가치를 극찬했다.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조선의 종묘. 두 건축물 사이에는 2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강이 흐르고 있다. 또한 석재와 목재라는 재료의 본질적 차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지리적 경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서양 신전의 대표 격인 파르테논 신전에 비견되며 세계적 건축가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명을 주는 종묘는 어떤 곳일까.
1392년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4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면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추진했던 일 중의 하나는 새 종묘와 사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종묘와 사직은 유교국가에서 갖춰야 할 사상이 담긴 핵심 시설이었기 때문이었다.
|
|
| ▲ 땅을 주관한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 1963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
| ⓒ 국가유산청 |
이처럼 종묘와 사직은 국가 최고의 제례공간으로 법궁인 경복궁보다 더 중요한 시설로 여겼다. 역사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소서"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종묘와 사직은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근본을 상징하는 가장 신성한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종묘와 사직은 매우 엄격한 조영(造營) 원리에 따라 조성됐다. 고대 중국의 예법서인 <주례(周禮)>에 나오는 '좌묘우사(左廟右社)' 원칙을 따랐다. 즉 "나라를 세우면 도성의 궁문 밖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는 사직을 세워야 한다"라는 원리다. 임금이 경복궁 근정전에 좌정했을 때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세웠다. 지금 서울 종로구에 있는 종묘와 사직단은 이 원리를 따른 것이다.
|
|
| ▲ 종묘 정전 |
| ⓒ 국가유산청 |
창건 당시의 종묘는 대실 7칸, 좌우 익랑 각 2칸, 공신당 5칸 규모였다. 종묘가 완공되자 태조 이성계는 개경에 있던 4대 조인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의 신주를 정전으로 모셔왔다.
|
|
| ▲ 종묘 정전의 신실 |
| ⓒ 국가유산청 |
|
|
| ▲ 종묘 정전 내부 신단 |
| ⓒ 국가유산청 |
마치 영속되는 조선 왕조처럼 종묘는 계속 증축된다. 1726년(영조 2년)에 15칸으로, 1836년(헌종 2년)에 정전을 19칸, 영녕전을 16칸으로 증축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리 하여 종묘 정전은 길이가 무려 101m가 된다. 단일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 건물로 공간미학의 극대화를 보여준다. 종묘 정전은 1985년 국보로 지정됐다.
그렇다면 종묘의 중심 정전에는 어느 왕들이 모셔져 있을까. 우리가 아는 조선역대 왕들은 27명이다. 그중 광해군과 연산군을 제외하더라도 25명인데 신실은 19칸이다. 현재 정전에는 불천위(不遷位, 4대 봉사가 지난 뒤에도 사당에 영구히 모셔 두고 제사 지내는 신위)로 지정된 태조 이성계 등 15명을 포함하여 총 19명의 왕과 30명의 왕비가 모셔져 있다. 재직 중 비교적 공덕이 큰 왕과 왕비들이다.
|
|
| ▲ 종묘의 별전 영녕전. 1985년 보물로 지정됐다 |
| ⓒ 국가유산청 |
정전에 계속 모실 수 없는 태조의 4대조와 불천위로 정해지지 않은 왕과 사후에 왕으로 추대된 추존왕의 신위를 옮겨 모시기 위해서다. 현재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 선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 비롯한 9명의 추존왕과 7명의 역대 왕을 포함하여 총 16명의 왕과 18명의 왕비가 모셔져 있다. 역대 왕들 중에서 재위 기간이 짧거나 비교적 업적이 많지 않은 왕들이다.
|
|
| ▲ 종묘에는 역대 왕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왔던 공신들의 위패를 배향한 공신당(功臣堂)이 있다 |
| ⓒ 국가유산청 |
또 한 사람, 친일파의 대명사 을사오적 이완용이 일제강점기 때 배향공신이 됐다가 광복 후 퇴출됐다. 이처럼 공신당의 공신들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배향되기도 했고 파향 되기도 했다.
|
|
| ▲ 고려 공민왕 신당.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
| ⓒ 국가유산청 |
|
|
| ▲ 공민왕 신당에 모셔진 공민왕과 그의 아내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 노국대장공주는 공민왕과 결혼한 원나라 공주다. 공주는 원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공민왕이 친원파들을 척결하는 반원(反元) 자주 개혁에 적극 동참했다 |
| ⓒ 국가유산청 |
조선 정신문화의 집합체, 종묘는 1963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고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는 1964년과 1975년 국가무형유산 목록에 올랐다. 1985년에는 정전과 영녕전이 각각 국보와 보물로 지정됐다.
|
|
| ▲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악 |
| ⓒ 국가유산청 |
|
|
| ▲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 |
| ⓒ 국가유산청 |
|
|
| ▲ 종묘를 관리하는 관원들이 업무를 보던 망묘루 |
| ⓒ 국가유산청 |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한 국가의 품격은 역사와 문화유산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500년 조선 역사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는 종묘는 주변 경관과 함께 영구히 보존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이를 온전히 지키는 것이야말로 우리 후손들의 책무이며 '역사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메거진 <대동문화>153호(2026년 3, 4월)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여성과 남성 백만 명이 거리로 나오면서 만들어진 이 날
- 쌀값 '폭등'이 감추고 있는 진실
- 여성 변호사의 성폭행 피해 공개 증언... 여운 남긴 한마디
- "대체 무슨 학교길래 강남 학부모들이 앞다퉈 보내고 싶어 할까"
- 수상하고 유별난 우정, 이것은 사회단체인가 친구모임인가
- 폭력적인 남편과 화내는 딸... 그녀가 내린 뜻밖의 선택
- "양심에 따라 NO" 트럼프 요구 거부한 미국 AI 기업, 그 의미
- 트럼프 "쿠르드족의 개입 원치않아…이미 충분히 복잡"
- 이란, 대통령 사과 몇 시간 만에 또 공격…걸프국 "보복 경고"
- "정권 바뀌었지만, 여성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