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섭의 식판] 불현듯 중국집 찐만두가 먹고 싶어서 영등포로 갔다
[송원섭의 식판]이란 이름으로 우리 주변의 사라지면 안 될 식당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식당의 미덕은 맛있고, 가격이 합리적이고, 친절하고, 깔끔한 곳이어야겠죠.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식당은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지만, 그 드문 유니콘을 찾아 오늘도 도시의 골목을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기록을 남겨 봅니다.
참, ‘식판’이란 말은 학교나 군대, 구내식당의 식판처럼 먹을 것을 쌓아놓는 판이라고 읽어도 좋지만, 굳이 거기에 의미를 추가하자면 식판(食判), 먹을 것(食)을 판단한다(判)는 뜻입니다.
그럼, 두번째 식당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중국집 만두의 실종'이라는 슬픈 현실에서 시작합니다. 정확히 언제쯤일지는 모르겠지만, 만두는 오래전 중국에서 들어온 음식입니다. 특히 서북 지역과 서울에서 겨울철에 많이 먹던 음식이죠. 이미 우리 것이 된 한식 전통 만두도 맛있지만, 아무래도 만두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은 ‘만두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과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일찍부터 밀가루 문화가 발달한 중국에서는 면(麵, 간체자로는 面)이라고 하면 국수와 만두를 모두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중국식 만두는 모양에 따라 크게 나눠 자오쯔(餃子)와 바오쯔(包子)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 바오쯔는 만두피에 속을 넣고 보자기처럼 동그랗게 싸서 끝을 상투 들듯 말아 주는 것을 말하죠.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제갈양이 남만 정벌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두를 발명했다고 되어 있는데, 물론 지어낸 이야기지만 아마도 이 바오쯔가 상투를 튼 머리처럼 생긴데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우리가 자주 먹는 반달 모양의 한국식 만두는 자오쯔와 닮아 있습니다. 한국식 발음으로 ‘교자만두’라고 부르던 것은 바로 이 자오쯔를 가리키는 것이죠. 아무튼 자오쯔든 바오쯔든, 중국의 음식 문화에서 만두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30~40년 전만 해도 만두를 빚어 파는 중국집은 매우 흔했습니다.

하지만 만두를 빚는다는 건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보니 점점 중국집 메뉴에서 만두가 사라지게 되었고, 이제는 많은 사람이, 특히 젊은 분들은 ‘중국집 만두’하면 짜장면 시킬 때 서비스로 가져다주는 형편없는 품질의 군만두를 연상하게 되었습니다. 만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행히도 진짜 중국식 만두, 둥근 찜기에 찐 자오즈 맛을 볼 수 있는 곳이 완전히 다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몇몇 의인들이 그 전통을 잇고 있죠. 그중 한 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특히 오늘 소개할 집은 1968년 개업한 중국집인데 짜장면도, 짬뽕도, 탕수육도 팔지 않습니다. 오직 만두와 오향장육만 파는 집입니다.
그런 집이 있냐구요? 네. 있습니다. 불현듯 중국식 찐만두가 먹고 싶어서, 거기로 향했습니다.

영등포 역 서쪽 맞은편에는 대단히 규모가 큰 먹자골목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유서 깊은 유흥가답게 초행자는 길을 잃을 정도로 복잡한 골목 안이 불야성을 이루죠. 그 복판에 대문점(大文店). 영등포 부근에도 오래 전 화교 집단거주지가 형성돼 있었던 만큼 연식 있는 중국집들이 많죠. 송죽장, 대관원, 동순각 등이 굴지의 노포들입니다. 그런데 대문점은 그들 중에서도 독특하게, ‘만두’와 ‘오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찐만두, 물만두, 군만두, 고기만두, 만두국의 만두류에다 오향장육과 오향족발과 송화단으로 메뉴 끝. 국수도 볶음밥도 팔지 않습니다. 점심때는 오향장육과 꽃빵을 조합한 ‘문정정식’을 팔지만, 저녁 방문이라 이 집의 간판인 오향장육과 찐만두를 우선 주문했습니다. 기본 찬으로 단무지와 양파 외에 녹말이 들어간 계란 미역국과 양배추가 나옵니다. 양배추 샐러드가 아니라 그냥 썬 양배추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오향장육은 간장 양념에 고기를 삶을 때 팔각을 비롯한 다섯 가지 향신료(五香)를 추가해 잡내를 제거한 중국식 장조림을 말합니다. 소고기로도, 돼지고기로도 만드는데, 어쨌든 사태 고기를 사용합니다. 차게 식힌 오향장육을 얇게 썰고, 오이와 짠슬을 곁들여 입에 넣으면, ‘이봐, 고량주는 주문하지 않은거야?’라는 나지막한 소리가 귀를 간지럽게 합니다.
아, 중국집에 익숙지 않은 분들은 짠슬을 모르실 수 있겠군요. 앞서 오향장육의 원료로 사태 고기가 좋다고 했는데, 이유는 사태 부위가 콜라겐과 힘줄을 풍성하게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차게 식혀도 퍽퍽하지 않고 쫄깃한 식감이 그만이죠. 특히 콜라겐은 끓였다 식히는 과정에서 간장과 만나 검은색 젤리 같은 물체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짠슬인데, 한국의 중국집에서는 누구나 짠슬이라 부르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장둥(酱冻), 즉 간장이 언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무튼 젤리의 형상이지만 입에 넣으면 바로 짜고 고소한 액체가 됩니다. 오향장육을 먹을 때에는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죠.

오향장육도 제대로지만 정말로 이 식당을 빛나게 하는 건 찐만두. 전분이 들어간 만두피는 속이 비칠 정도로 얇고 투명합니다. 소가 듬뿍 들어간 평양식 왕만두는 아니고, 흔히 ‘통만두’라 불리던 스타일의 날씬한 만두. 하지만 한번 입에 넣으면 육즙이 주루룩, 젓가락을 멈추기 힘듭니다. 만두만 먹는게 목적이었다면 앉은 자리에서 30개는 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맛입니다.

찐만두 맛을 본 뒤 군만두와 물만두를 주분해 봅니다. 군만두도 대다수 중국집들처럼 공장제 싸구려 만두를 튀긴 것이 아니고, 찐만두로 나오는 자오즈를 튀겨낸 것입니다. 피가 얇고 작은 물만두도 수준급. 냉동실에 오래 묵은 고기를 쓰거나 소를 만든 뒤 얼려 보관하면 만두에서도 군내가 나기 마련인데, 전혀 잡내가 없습니다.
1968년 개업한 대문점은 58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980년대 지금의 경영진이 식당을 인수했지만, 종업원들도 20년 이상 근무한 분들이 많은 노포. 직원들 중 수석격인 ‘실장님’은 새벽 두시에 나와 매일 새로 소를 만들고 만두를 빚은 뒤 늦은 오후에 퇴근합니다. 만두 만드는 일은 혼자 진행하는데, 하루 빚는 양은 찐만두 약 1000개, 물만두 약 2000개. 이쯤 되면 거의 만두 빚는 기계의 속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집의 손님들은 대부분 저녁 시간에 들러 오향장육이나 오향족발에 고량주 한잔을 기울이고 입가심으로 만두류를 주문한다고 합니다(다시 말하지만 다른 메뉴는 없습니다). 만약 이 식당에 가신다면 찐만두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네요. 여기서 찐만두를 먹지 않고 가신 분들은 거의 헛걸음을 하신 거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공장제 만두나, 짜장면 배달통에 성의 없이 들어 있는 당면 투성이 군만두로 만두를 배운 분들, 만두란 그런 음식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아셔야 합니다.
마지막 궁금증. 대체 왜 식당 이름이 대문점일까요. ‘실장님’은 “아무 뜻도 없어요. 아무도 몰라요.”라고 하시는데, 과연 왜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오래된 단골 중에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송원섭 song.weonseo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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