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하지 맙시다, 이기는 것만 생각합시다" 3년전 오타니 말처럼...고영표와 류지현호도 할 수 있다 [더게이트 WBC]

배지헌 기자 2026. 3. 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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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전 2회 만루홈런 포함 5타점, WBC 한 이닝 최다 기록 작성
-각종 국제대회마다 한국야구를 막아섰던 오타니
-7일 한일전, 고영표가 오타니를 막아야 한다
시부야 크로싱에 붙은 WBC 홍보물(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더게이트=도쿄돔]

도쿄에 도착한 야구팬은 이 도시가 거대한 '오타니 월드'임을 곧 알게 된다. 편의점 입구에는 오타니가 주먹밥을 들고 서 있고, 자판기 옆면에서는 녹차를 손에 든 오타니가 눈을 맞춘다. WBC가 열리는 도쿄돔 외벽에도 오타니, 도쿄돔 복도에도 오타니, 도쿄돔 앞 대형 전광판에서도 오타니의 광고가 루프로 돌아간다. 시부야 크로싱에는 이번 WBC 참가국 선수들의 대형 홍보물이 내걸렸는데—그 메인 주연 역시 오타니였다. 미국 스포츠 매체 ESPN에 따르면 "택시 뒷좌석 TV에서도 오타니 광고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오타니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혹 야구선수 한 명에게 너무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게 아닌지 의아할지 모르나, 오타니 쇼헤이의 플레이를 한 번이라도 목격한 사람이라면 생각이 달라진다. 오타니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볼 때마다 새로움을 선사하는 존재다. 한계처럼 보이는 천장이 있으면 그 천장을 부수고 더 높은 천장에 도전한다. 주변의 공기를 바꾸고, 현실을 새로 창조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경기전 프리배팅에 나선 오타니(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돈 받고 쳐라! 입장료 내고 싶은 15분의 프리배팅

6일(한국시간)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 타이완(대만)의 2026 WBC 첫 경기에서도, 오타니는 역시 오타니였다. 원래 선수들의 경기 전 타격 훈련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으레 배경으로 흘러가는 단조로운 루틴의 하나다. 오타니는 원래 이 훈련을 하지 않고 건너뛰는 스타일이다. 투타 겸업의 체력 안배를 위해 마운드에 써야 할 에너지를 아끼는 차원이다. 그러다 보니 오타니의 프리배팅은 그 자체가 희귀한 이벤트다.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는 그 쇼타임이 이날 도쿄돔에서 펼쳐졌다.

이번 WBC에서 오타니는 투수로 등판하지 않는다. 타격에만 전념한다. 마운드에 쏟던 에너지까지 배트로 쏟아부을 각오로, 경기전 프리배팅에도 참여했다. 경기 시작 90분 전부터 관중석을 지키던 팬들에게는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오타니가 배트를 들고 그라운드에 나타나자 빼곡히 들어찬 도쿄돔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잠시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온 그는 무라카미 무네타카와 짝을 이뤄 배팅 케이지 앞에 섰다. 러닝타임은 15분. 오타니가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타구는 높이 떠올라 우측 담장 너머 관중석 상단에 꽂혔다. 그때마다 도쿄돔 전체가 거대한 함성으로 가득찼다. 몇몇 일본 매체는 아나운서를 동원해 이 연습 장면을 생중계했다. 연습이 끝났을 때는 기립 박수가 터졌다. 왠지 주머니에서 입장료를 꺼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15분이었다.

경기에서도 오타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회 첫 타석, 초구를 받아쳐 188km/h짜리 총알 타구로 2루타를 뽑아냈다. 그리고 2회 1사 만루에선 낮은 커브에 몸의 중심이 무너진 상태에서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만루홈런을 때려냈다. 왼손을 놓고 오른손만으로 배트를 돌렸는데 타구 속도 165km/h에 비거리 112m가 나왔다. 같은 이닝 두 번째 타석에서는 우전 적시타를 추가했다. 2회에만 5타점. WBC 단일 이닝 개인 최다 타점 기록이었다. 일본은 그 이닝에서만 10점을 올렸고, 7회 콜드게임으로 대만을 13대 0으로 꺾었다.

이바타 히로카즈 감독은 경기 후 "오타니가 첫 타석부터 초구를 적극적으로 공략해 2루타를 치면서 팀에 기세를 불어넣어 줬다"며 "스윙 한 번으로 최고의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오타니에게 만루홈런을 맞은 타이완의 쩡 하오쥐 감독은 "오타니가 세계적인 강타자라는 건 누구나 안다. 매우 위험하고 경기 상황을 단번에 바꿀 수 있는 선수다. 오늘 우리 투수들이 그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한 점을 높게 평가한다"고 달관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7일 오전 요미우리 신문 1면을 장식한 오타니의 활약(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류지현호 한국야구 대표팀, 풀파워 오타니를 상대해야 한다

타자에만 올인하는 풀파워 오타니를 바로 오늘, 한국 야구 대표팀이 상대해야 한다. 오타니와 한국의 인연은 생각보다 길다. 2012년 9월, 고교 2학년이던 오타니는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에 일본 대표로 출전해 한국전 선발로 등판했다. 7이닝 2실점 12탈삼진, 최고 구속 시속 155km. 호투했지만, 결과는 패전투수였다. 

그로부터 3년 뒤 2015 프리미어12에서 오타니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두 차례 한국전 선발로 나와 개막전 6이닝 10탈삼진, 준결승 7이닝 11탈삼진. 합계 13이닝 1피안타 21탈삼진 무실점이었다. 박병호는 "살면서 처음 경험한 위력적인 공이었다"고 했고, 김현수는 "그냥 못 친다. 지구 최강의 투수"라고 했다. 준결승에서는 오타니가 내려간 뒤 9회 불펜이 무너지며 일본이 역전패를 당했는데, 오타니는 경기 후 "내가 끝까지 던졌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2023 WBC 한국전에서는 타자로만 나서 4타수 2안타 2볼넷 2타점을 기록했다. 곽빈을 상대로 우측 라인 선상 2루타를 뽑아냈다. 투수로 나오면 한국 타선을 완전히 틀어막았고, 타자로 나와도 꾸준히 생산했던 오타니가 이번에는 타자로 나온다. 그것도 마운드에 쏟던 에너지까지 배트에 집중하는, 그라운드에서 프리 배팅까지 소화하는, 지금껏 한국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오타니로. 6일 경기를 지켜본 일본전 선발 고영표와 대표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듯하다.

여기서 2023 WBC 결승전을 앞두고 오타니가 남긴 명언을 떠올려본다. "동경하지 맙시다. 동경해버리면 넘어설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만은 동경하는 마음을 버리고 이기는 것만 생각합시다." 일본은 그날 미국을 꺾고 우승했다. 지금 한국 대표팀에 필요한 정신이기도 하다. 2012년 서울 목동구장에서 처음 한국을 만났던 소년은 이제 도쿄돔에서 세계 최고의 타자로 기다리고 있다. 경외감과 공포심은 이날 하루 관중석의 몫으로 남겨두자. 동경하지 않아야, 이기는 것만 생각해야 넘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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