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라스 쉬프 “부당한 일에 목소리 내는 것은 양심의 문제”

“내게 예술과 정치, 예술과 사회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부당한 일에 대해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내게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피아니스트들의 교과서’로 불리는 거장 안드라스 쉬프(73)가 3년 만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국민일보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예술가의 양심을 강조했다. 쉬프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하며 미국 공연 보이콧을 선언했었다. 당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관련 발언을 비롯해 캐나다, 그린란드, 가자지구와 관련한 팽창주의적 위협, 독일 극우 정치인 지지 등에 대해 우려를 표했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지난해보다 더 악화되어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법을 위반한 군사 작전을 잇달아 펼치고 있다.
헝가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쉬프는 1979년 서방으로 떠나 1987년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땄다. 하지만 2000년 오스트리아에서 반이민 및 반유대주의를 내건 극우 세력의 부상을 강하게 비판한 뒤 시민권을 포기하고 이듬해 영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는 또한 2011년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정부에 대해 인종차별주의, 반유대주의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때문에 그는 헝가리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손을 자르겠다”는 위협을 받기도 했다.

쉬프는 “내 의견이 현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과 같다. 하지만 많은 물방울이 모이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면서 “(정치사회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국 양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3일 부산콘서트홀과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 여는 그는 이번에도 ‘공연 당일 프로그램 공개’ 원칙을 유지할 예정이다. 바로크부터 고전·낭만 그리고 현대 레퍼토리까지 폭넓게 연주해온 그는 지난 2023년 내한 공연에선 프로그램의 절반을 바흐의 작품으로 구성했었다. 이번에 어떤 작품이 연주될지는 당일 그의 컨디션, 콘서트홀의 음향 그리고 악기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연주자로서 그가 음악을 해석할 때 변하지 않는 것은 ‘악보에 대한 충실함’이다.
쉬프는 당일 프로그램 결정의 이유로 ‘자유와 즉흥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찌감치 공연 레퍼토리를 구성하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보통 1년 전 심지어 그보다 더 일찍 프로그램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당장 내일 무엇을 먹을지도 모르는데, 1년 뒤 공연에서 무엇을 연주할지 정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다”면서 “내 레퍼토리는 매우 방대하다. 그리고 연주를 위해 악보가 가득 담긴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닌다. (연주하는) 곡들은 하나의 ‘작품’이 된다. 각각의 곡들이 역사적 맥락, 성격, 조성 등을 통해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관객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주는 단순한 오락 이상을 제공한다. 바로 배움의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2023년 서울 공연에서 관객에게 직접 해설을 한 뒤 연주를 한 것도 이런 철학과 관련이 있다.

한편 쉬프는 ‘음악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며 콩쿠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쉬프는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4위, 1975년 리즈 콩쿠르 3위 등 성적을 기록했다. 비록 콩쿠르에서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무대와 음반에서 뛰어난 연주를 보여주며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후학 양성에 애정이 깊은 쉬프는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와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한편 정기적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있다. 나아가 2014년부터 젊은 음악가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 ‘빌딩 브리지스’(Building Bridges)’를 직접 진행하고 있다. 빌딩 브리지스는 뛰어난 기량을 가졌지만 국제무대의 문턱에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실질적인 무대 경험과 네트워크를 지원한다.
그는 “콩쿠르는 산업이 되어버렸다. 콩쿠르에서 요구되는 조건은 실제 콘서트 무대에서 요구되는 것과 다르다. 그래서 많은 우승자가 훌륭한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한 채 나이 제한에 도달할 때까지 또 다른 콩쿠르에 계속 출전하다 사라진다”면서 “내가 진행하는 ‘빌딩 브리지스’는 이러한 클래식계 구조에 대해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젊은 연주자들에게 “음악에 대한 사랑과 개성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중요하다”면서 “작곡가의 삶과 함께 그 시대의 문학과 미술, 역사와 철학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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