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에 시작해 19년…종로 5평 공방 세공 인생[한우물보고서]

‘Since 2008 주얼리세공사’
강종구(35) 본팩토리 대표의 인스타그램(@bonfactory_official) 프로필에 적힌 소개 글이다. 30대 중반, 아직 젊은 나이지만 강씨는 17살 때 처음 세공 일을 시작한 19년 차 베테랑 세공사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2만명에 육박하는 그는 온라인에서는 이미 ‘일 잘하는 젊은 세공사’로 알려져 있다. 게시물 말미에는 늘 ‘믿을 수 있는 손’이라는 문구를 단다. 세공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조금 늦더라도 정직하게 영업하려는 그의 소신을 담은 문구다. 그래서인지 온라인에서 유명세를 끈 후 그의 앞에는 주로 유품이나 의미 있는 주얼리를 새롭게 재가공해달라는 주문서가 쌓이고 있다. “당신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전달받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만든 본팩토리의 ‘본’은 근본 본(本) 자다. 기본의 기준을 높이겠다는 철학을 담아 지었다. 이름에 ‘공장(factory)’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만, 작업실은 서울 종로구 종로 귀금속 거리 인근 건물 2층 끝에 자리한 5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4일 찾은 본팩토리에서 만난 강씨는 “공장처럼 직관적으로 제품이 만들어지는 곳이라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작업실은 크진 않지만 현미경, 치과용 핸드드릴, 3D 레이저 용접기, 초음파 세척기, 폴리싱 기계 등 주얼리 세공에 필요한 장비는 대부분 갖춰져 있었다. 공간이 많이 필요한 3D프린팅과 주물 공정은 인근 업체에 맡긴다. 관련 인프라가 밀집한 종로 귀금속 거리는 이런 작업 방식에 최적의 환경이다.

세공이 업(業)이 된 지는 이미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겼지만, 시작 계기는 단순했다. 인천이 고향인 그는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한국주얼리고등학교(구 한진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어망을 고치던 할아버지, 박스 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 그리고 옷을 만들던 작은 아버지까지…. 대를 타고 손재주가 내려온 것처럼 강씨의 손기술은 학교에서 두드러졌다. 진득하게 앉아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도, 손길이 지나간 대로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성격에 잘 맞았다.
타고난 손재주에 적성까지 맞으니 학교에선 단숨에 기술대회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0년 4월 인천광역시 기능경기대회 귀금속공예 직종에서 1위를, 같은 해 10월 전국기능경기대회 귀금속공예 직종에서 3위를 차지했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뒤로하고 맞이한 사회는 냉혹했다. 전국대회에서 3위를 한 후 나간 첫 실습지에서는 한 달이 지나도 월급을 받지 못했다. ‘내일 주겠다’는 말만 믿고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금 공장 사장은 ‘그만두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금고를 열어 월급을 줬다.

이후 강씨는 1년간 모교에서 실습보조원으로 일하며 국제기능올림픽을 준비했다. 국가대표 후보로 선발됐지만 평가전에서 탈락했고, 목표를 잃은 그는 도망치듯 입대했다. 전역 후 1년 동안은 인테리어 자재 영업, 휴대전화 판매 등 전혀 다른 일을 전전했다.
세공보다 월급은 많았지만, 가장 잘하던 일을 할 때 느끼던 성취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주얼리 업계로 돌아온 강씨는 2013년부터 10년 동안 무려 10곳의 작업장을 옮겨 다녔다. 주변에서는 “끈기가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철저히 계산된 선택이었다.
수리방에서는 전국 금은방에서 올라오는 온갖 파손 사례를 접했다. 스톤헨지나 제이에스티나 같은 대형 브랜드의 제품 공장에서는 AS 기사로 일하며 대중적인 품질 기준을 익혔다. 지인의 공장에서는 “퇴근 후에는 네 작업을 해도 좋다”는 조건으로 공장장으로 일하며, 오후 6시 이후에는 공장 장비를 빌려 밤늦게까지 연습했다.
“제 목표는 저만의 공방을 차리는 것이었으니 항상 ‘이곳에서 내가 가져갈 것만 챙기자’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혀를 차던 사람들이 지금은 ‘네가 참 영리했다’고 말하더라고요.”

2022년 1월, 종로의 한 제품 공장에서 일하던 강씨는 ‘내 사업을 하려면 결국 주문을 받아야 할 텐데, 영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께 무작정 가서 영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최저임금을 받아도 괜찮으니 시켜만 달라고 했죠.”
사장은 샘플 가방 하나를 들려주며 “금은방 문이라도 열면 반은 성공이다”라고 말했다. 영업 첫날, 종로 귀금속 거리를 찾았다. 오전 10시, 가게 셔터가 올라가는 순간을 맞춰 금은방 사장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는 문 열자마자 같이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래요. 첫날이니 몰랐죠. 기능적인 면에서 다른 제품과 뭐가 다른지 설명하는데, 처음이다 보니 티가 났던 것 같아요. 손도 좀 떨렸고요. 그런데 사장님이 ‘한 커플만 줘봐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영업 첫날, 첫 번째로 들어간 가게에서 반지 두 개를 팔았다. 이다음에 찾은 10곳에서는 연달아 퇴짜를 맞았지만, 첫 성공 경험은 그가 11개월 동안 영업을 버티는 데 큰 힘이 됐다.

이날 작업대 위에 놓인 반지는 지난달 영국에서 날아온 주문이었다. 응급실에서 잘려나간 솔리테어 스타일 화이트골드 반지를 헤일로 디자인의 플래티넘 반지로 바꾸는 ‘리세팅’ 작업이다. 반지 가운데 천연 다이아몬드를 두고, 그 주변을 작은 랩 다이아몬드들이 둘러싸 메인 스톤이 더 커 보이도록 했다. “다이아몬드가 좀 더 커 보였으면 좋겠다”는 고객의 말에 강씨가 추천한 디자인이다.
세공사들의 작업대에는 업계 용어로 ‘태장대’라 불리는 나무 조각이 있다. 태장대는 세공사의 작업 습관에 맞춰 조금씩 닳아가며 각자의 형태를 만든다. 그렇게 닳아 군데군데 각이 생기는 태장대는 작업하는 제품의 안정적인 지지대가 돼준다. 강씨 역시 오랜 시간 손에 익은 자신의 태장대에 반지를 걸고 작업을 시작했다.

직경 6.5㎜의 천연 다이아몬드를 집게로 집는 강씨 손길이 능숙했다. “처음엔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거의 지지를 하거든요. 이 두 손가락 힘이 세지 않으면 줄질 한 번을 해도 다 튕겨 나가요.” 오랜 세공으로 단단히 단련된 강씨의 손은 특히 엄지 밑 근육인 엄지두덩근이 유난히 발달해 있었다.


펜치로 천천히 프롱(보석을 잡아 고정하는 금속 발)을 구부리며 다이아몬드를 고정한 강씨는 반지가 걸린 태장대를 두리기 시작했다. 프롱이 다이아몬드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다이아몬드는 반지 안에서 미세하게 돌아간다.
“너무 욕심을 부려도 스톤이 깨져요. 다이아몬드는 결정 구조라서 특정 방향으로 힘이 가해지면 벽개(劈開) 되거든요. 더 단단하게 밀착시키려다 깨지는 건데, 사실 많이 깨 먹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강씨의 작업실에는 유리창에 부착하는 흡착식 거치대, 원하는 각도로 고정할 수 있는 다관절 거치대 등 다양한 스마트폰 거치대가 있었다.
스톤의 고정을 확인하고, 줄질을 하는 과정, 주물 과정에서 생긴 미세한 구멍을 용접으로 메우는 장면, 폴리싱으로 반짝임을 완성하는 과정까지…그는 작업 중간중간 스마트폰으로 3~5초 분량의 짧은 영상을 찍었다.
2022년 11월 영업직을 그만둔 뒤 이듬해 9월 ‘본팩토리’를 차렸지만, 처음에는 주문 한 건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파워블로거로 활동했던 아내의 도움을 받아 ‘내가 주얼리 창업을 결심한 이유’라는 제목의 1분짜리 영상을 제작해 올렸다.

그 한 편의 영상이 알고리즘을 탔다. 영상 조회 수가 400만회를 넘기며 문의가 폭주했다. 작업 속도를 맞추기 위해 결국 예약제를 도입했다. 현재는 문의가 들어오면 아내가 내용을 정리해 강씨에게 전달하고, 작업 중간중간 이를 확인해 견적을 보내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영상을 보고 찾아오는 고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곳이라면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님이 남긴 유품이나 오래돼 닳았지만, 의미 있는 주얼리를 새롭게 리세팅해달라는 의뢰가 많다. 최근에는 세상을 떠난 친오빠가 마지막으로 남긴 진주로 목걸이를 만들어달라는 중년 여성의 주문을 받았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종로까지 찾아왔다는 그는 “이곳이라면 정직하게 해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이아몬드 리세팅 작업을 마친 강씨는 데스크톱 컴퓨터 앞에 앉아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켰다. 앞선 작업 과정에서 찍어 둔 영상을 짧은 숏폼 영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영상 제작 과정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도움도 받는다. 영상에 들어갈 내용의 초안을 작성한 뒤 챗GPT와 제미나이에 피드백을 구한다.
“누가 좋다고 떠들어봐야 직접 느껴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새로운 게 나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꼭 한 번 체험해보려고 합니다.”

영상 편집을 마친 그의 일과는 다시 작업대로 이어진다. 주물 공장에서 갓 가져온 제품들을 미세 저울에 올려 소수점 단위까지 중량을 체크하고, 리세팅 의뢰가 들어온 반지는 시금석을 이용해 금 함량을 확인한다.
강씨는 함께 일하는 이들이 기술을 배워 언젠가 창업하더라도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럴 시간에 회사 일에 집중하라”는 말이 상식처럼 통하는 업계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다. 함께 일하는 김진우(43) 부장은 “처음엔 빈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며 “개인 작업을 하면 오히려 ‘무엇을 만들었는지 보자’며 피드백을 건넨다”고 말했다.
“저랑 같이 일했던 사람이 나가서 창업해 잘 되면 ‘우리랑 함께했던 크루원이에요’라고 자랑할 수 있잖아요. 서로 잘 되면 좋지 않을까요?”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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