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준 기자의 교회 아재] 빛은 소리치지 않는다

손동준 2026. 3. 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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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지나며
나노바나나


지난달 28일 서울역 광장을 지나는데 아이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보수 기독교 단체의 집회가 또 열리고 있었다. 현수막에는 대통령을 향한 거친 표현이 적혀 있었고 마이크에서는 욕설과 저주에 가까운 말들이 쏟아졌다.

나는 놀랍지 않았다. 오래 봐온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의 시선은 달랐다. “아빠, 저 사람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욕을 하면서 무슨 하나님을 찾아.” 정치도 아니고 시끄럽다는 푸념도 아니었다. 나는 9살 초등학생의 신앙을 과소평가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단순한 질문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마침 교회력은 사순절을 지나고 있다. 부활절 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사순절의 핵심은 자기 비움과 절제다. 십자가로 향하던 예수를 기억하고 닮아가는 시간이다. 사순절에도 여전히 멈추지 못하는 우리를 보며 문득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아이 눈에 비친 아빠의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했을까.

최근 부산의 한 대형교회 목회자가 부교역자에게 퍼부은 욕설 녹취가 공개됐다. 파장은 컸다. 그는 교단 부총회장과 교회 담임목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목사도 사람이라며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사람이니 화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이성이 흐릿해지는 순간 터져 나오는 말은 뜻밖의 말이 아니라 마음속에 오래 쌓인 말, 익숙하게 닦여온 길을 따라 흘러나온 말일 수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놀라거나 당황할 때 “아이고 주님”이라고 말씀하곤 했다. 감탄사이면서 동시에 도움을 구하는 신호 같은 말이었다.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다. 입은 내면의 번역기다. 마음에 무엇을 채워왔는지가 결국 말로 드러난다.

나 역시 운전하다가 가끔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놀라곤 한다. 뒷좌석에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누군가를 향해 저주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나도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하기엔 ‘내로남불’이 지나치다. 이래서 사순절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우리 생각과 행동, 말의 정원에 자란 잡초를 돌아보는 시간 말이다. 금식보다 먼저 절제할 것은 어쩌면 우리의 혀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어떤 언어를 쌓아가고 있는가. 최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실시한 한국교회 신뢰도 조사에서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에 그쳤다. 국민의 75.4%는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목회자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21.1%였고 교인에 대한 신뢰도는 더 낮았다.

대중이 교회의 이념적 성향을 인지하는 주요 경로도 눈길을 끈다. ‘집회와 시위’를 통해 판단한다는 응답이 47.6%, ‘언론 보도’를 통해 판단한다는 응답이 40.5%였다. 특히 일부 목회자들의 과격한 광장 정치 참여가 한국교회를 극단적 정치 세력으로 인식하게 만든 계기로 지목됐다. 교회를 극단적이라고 평가한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12·3 비상계엄 옹호’(64.5%)를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이주노동자 등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타성’(58.0%), ‘민주적 절차보다 권위주의 옹호’(43.7%)를 들었다.

숫자는 감정이 없다. 그러나 이 숫자들은 우리가 세상과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광장에서 목소리를 높일수록 역설적으로 세상과의 거리는 그만큼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 수치는 한국 교회가 사순절에 마주해야 할 가장 뼈아픈 참회록일지도 모른다.

예수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다. 소금은 조용히 녹아들어 썩는 것을 막고 맛을 살린다. 소금이 소리를 지를 필요는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말은 세상에 맛을 더하기보다 자극을 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사순절을 맞은 포항 교계가 최근 길거리 쓰레기를 주우며 걷거나 달리는 플로깅을 했다는 소식을 기사로 썼다. 거창한 구호도 시끄러운 마이크도 없었다. 다만 거리를 걸으며 쓰레기를 주웠다. 그 조용한 행위가 어떤 집회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빛은 소리치지 않는다. 그저 비출 뿐이다.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다. 신앙이 삶으로 나타나야 말도 힘을 얻는다.

위기의 순간 내 입에서 먼저 나오는 이름은 누구인가. 분노인가 조롱인가 아니면 예수인가. 하나님은 우리 입을 기뻐하실까.

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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