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 선발은 고영표, 류지현 감독의 파격 승부수 "본능에 맡기고 타자와 싸우겠다" [더게이트 WBC]
-고영표, 국제대회 두 차례 부진 딛고 명예회복 기회…"결과보다 상대와 싸우겠다"
-사이드암 역발상 승부수…성공 시 타이완전 투수력 집중 효과까지

[더게이트=도쿄돔]
류지현 감독이 운명의 한일전 선발투수로 예상 밖의 파격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본전 단골 선발인 곽빈도,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도, 현역 빅리거 데인 더닝도 아니다. 잠수함 투수 고영표가 디펜딩 챔피언 일본전 선봉장으로 나선다.

두 번의 국제 무대, 두 번의 뼈아픈 기억
최근 고영표에게 국제대회는 아픈 기억이 더 많았다. 2023 WBC 호주전 선발로 나서 4.1이닝 2실점을 기록했지만 경기는 역전패로 끝났고, 대표팀은 1라운드에서 짐을 쌌다. 2024 프리미어12 대만전에서는 더 아팠다. 2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만루홈런을 포함해 6실점으로 무너졌다. 후속 불펜 투수들이 6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오히려 고영표의 부진이 더 선명하게 부각됐다.
이 때문에 이번 WBC 최종 엔트리 확정 전 야구계에서는 고영표 제외를 점치는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문동주가 어깨 통증으로 낙마하며 엔트리 공백이 생기기 전까지 대표팀 합류 여부는 불투명했다. 그러나 류 감독은 최종 엔트리에 고영표를 포함하며 신뢰를 보냈다. '대체 선수'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면서 고영표의 등을 두드려줬고, 가장 무거운 한일전 선발 임무까지 맡겼다.
사실 고영표의 한일전 선발 통보는 도쿄에 오기 전에 일찌감치 이뤄졌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류 감독의 언급은 일종의 연막 작전이었던 셈. 고영표는 체코전이 열린 5일 취재진과 만나 "(통보를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저번 대회 우승팀이고 라인업을 봐도 꽉 차 있어서 어떻게 승부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고 차분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1번부터 9번까지 다 강타자, 그 생각들을 다 하면 끝이 없다"
이번 대회 일본은 최강의 전력을 자랑한다.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해 스즈키 세이야, 무라카미 무네타카 등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타자들이 타선을 꽉 채우고 있다. 이런 팀을 상대로 힘 대 힘으로 맞불 놓기보다, 고영표의 '부드러움'으로 승부하는 역발상. 데이터를 중시하는 류지현호라면 일본 타자들의 배트 궤적과 특성, 고영표의 상성에서 뭔가를 찾아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고영표 본인은 데이터에만 의존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고영표는 "1번부터 9번까지 한두 명 빼고 전원이 최상위 타자다. 그 생각들을 다 하다 보면 끝이 없다. 오타니고 돔이고 반발력 높은 공인구고, 그걸 다 생각한다 해서 내가 기적적으로 150km를 던질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신 투구 폼과 템포를 가다듬고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던지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고영표는 "경쾌하고 빠른 템포로 가져가면서, 타자가 치는 타이밍에 변화구가 꺾이는 폭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KBO리그에서 낮은 코스 제구력과 '마구' 체인지업, 땅볼 유도 능력으로 이름을 쌓아온 고영표다운 피칭을 하겠다는 각오다.
고영표 카드의 진짜 의미는 7일 하루에만 있지 않다. 고영표가 경기 초반 2~3이닝을 효과적으로 버텨준다면, 류현진·더닝·곽빈 가운데 일본전에 나오지 않은 선발 에이스 자원과 핵심 불펜 카드를 8일 타이완전에 한 명이라도 더 투입할 수 있다. 잘만 되면 일본전과 타이완전, 두 판을 모두 잡는 카드가 된다. 고영표 개인으로도 국제 무대에서 명예를 회복할 기회다. '본능'에 의존할 고영표의 피칭은 어떤 모습일지, 7일 한일전이 기대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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