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뒤 골목에서 "쿵" 천둥 소리 내며 쓰러진 것

이수정 2026. 3. 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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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이 버티다 쓰러진 벚나무... 층층이 붙은 붉은 버섯 보며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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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기자]

"쿠궁 쿵."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이런 것일까. 퇴근 후 느긋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집이 순간 크게 흔들렸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틈도 없었다.

'주차한 차를 누가 들이받았나?'
'외벽 기둥이 무너졌나?'
'대체 뭐지?'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미 밖은 캄캄해졌다. 남편은 이날따라 퇴근이 늦었다. 일단 주차장으로 나가 보았다. 다행히 차는 멀쩡했다. 주변 이웃집들도 조용했다. 혹시 다른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주변을 잠깐 둘러보았지만 특별한 기척은 없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중정 마당과 외벽을 자세히 살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집으로 다시 들어와 집 안을 살폈다. 지하 이상무. 1층 이상무. 2층 이상무. 집 안 어디에도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방금 들은 소리는 너무 컸다. 동네는 여전히 고요했고,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의문과 불안이 가라앉기도 전에 다행히 남편이 퇴근했다. 내가 놀란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자, 남편은 곧장 밖으로 나가 집 주변을 살펴보겠다며 서둘러 나갔다.

쓰러진 벚나무
▲ 뿌리채 뽑혀 쓰러진 골목길 벚나무 골목길에서 봄마다 벚꽃을 피워내던 나무가 하루아침에 쓰러지고 말았다.
ⓒ 이수정
5분쯤 지났을까. 남편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들어왔다.

"나무가 쓰러졌어."
"무슨 나무?"

남편은 내 손을 잡아 주방 창가로 이끌었다. 휴대전화 불빛으로 창밖을 비췄다. 우리 집 뒤편의 골목길. 거기 있던 벚나무 한 그루가 길 위에 쓰러져 있었다. 태풍이 온 것도, 바람이 거셌던 날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풀리면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리고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천만다행이다.'

만약 저렇게 큰 나무가 우리 집이나 앞집으로 쓰러졌다면, 만약 그 순간 골목을 지나가던 사람이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좁은 골목이라 쓰러지는 방향이 조금만 달랐어도 집 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바로 행정복지센터로 연락했다. 구청 녹지관리팀 직원 10여 명이 출동했고, 전기톱 소리가 잠깐 울리더니 쓰러진 나무는 금세 잘려 트럭에 실렸다. 20여 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한 직원들의 손길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 아침, 쓰러진 나무가 치워지기 전 나는 주방 창가로 한 번 더 다가갔다. 밤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아침 햇빛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났다. 뿌리째 뽑힌 벚나무가 길 위에 누워 있었다. 부러진 잔가지들과 길게 뻗은 나무 둥치를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붉은 버섯. 붉은 핏방울 같은 버섯들이 쓰러진 나무 둥치 위에 층층이 붙어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알 것 같았다.

'아, 이 나무는 오래 전부터 아팠던 거구나.'
'오래 전부터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던 거구나.'

나무가 보내온 신호
▲ 붉은 버섯이 피었다. 쓰러진 나무에는 붉은 피 같은 버섯들이 무수히 피어있었다.
ⓒ 이수정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주변의 다른 벚나무들도 살펴보았다. 같은 골목의 다른 나무에는 그런 버섯이 없었다. 아마 저 나무만이 조용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지난 봄이 떠올랐다. 봄이면 그 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그 골목에는 벚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어, 봄이 오면 길 전체가 연분홍빛으로 물들곤 했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흩날리고, 아이들은 그 아래를 뛰어다녔다. 그 나무도 매년 그렇게 꽃을 피웠다.

하지만 속으로는 조금씩 힘이 빠지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만 '쿠궁 쿵' 쓰러지고 말았다. 이십여 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벚나무. 이제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그 나무가 서 있던 작은 네모난 땅 한 칸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비슷하다. 사람도, 나무도, 삶도 말없이 오래 버티다가 어느 날 '쿠궁 쿵' 하고 쓰러질 때가 있다. 삶이 언제나 천만다행으로만 지나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 곁에는 이미 작은 신호들이 조용히 와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쓰러진 벚나무와 붉은 버섯을 떠올리며, 앞으로는 그런 신호들도 조금 더 살펴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삶은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작은 신호들과, 수없이 많은 천만다행 사이를 오가며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 땅의 흔적만 남았다. 순식간에 치워진 나무 자리에는 작은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 이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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