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300명의 '목요일'을 지키는 그녀

최미향 2026. 3. 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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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밥 짓고, 집 치우고, 부모 돌보는 30년 봉사자 최미희씨

[최미향 기자]

 30년 가까이 지역 봉사를 이어온 최미희 씨
ⓒ 최미향
"봉사가 없으면 낙이 없을 것 같아요. 진짜요."

지난 5일 오후, 식당 일을 앞두고 잠시 시간을 낸 최미희(65)씨는 '봉사'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담담해졌다가 이내 웃었다. 그녀는 20년을 훌쩍 넘겨, 넉넉잡아 30년 가까이 봉사 현장을 지켜왔다. 그 공로로 지난해 말 행정안전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밥차, 연탄, 장판도배, 네일아트, 주거환경 정비, 각종 지역 단체 활동 등 무려 10가지가 넘는 봉사 목록은 한 번에 다 세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누군가는 봉사를 특별한 결심이라고 말하지만, 그녀에게 봉사는 어느 순간부터 삶의 일부가 됐다.

"나도 모르게 하다 보니 봉사였어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쌓인 거죠."

그의 말이 유독 길어진 건,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향하는 '밥차' 때문이었다. 독거노인들에게 한 끼를 대접하는 밥차 봉사는 그녀에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 그리고 "산소 같은 존재"였다.
 최미희 씨가 지역 봉사자들과 함께 김장 봉사활동에 참여해 양념을 넣고 있다.
ⓒ 최미희
"잘 살든 못살든, 혼자 계신 분들을 위한 한 끼"

최씨가 밥차 봉사를 시작한 것은 2016년 무렵이다. 자원봉사센터에서 밥차를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다.

"서산시자원봉사센터에서 하는 밥차가 뭐냐 하면요. 기초수급자냐 아니냐 그런 기준이 아니라 혼자 외롭게 계시는 분들을 위해 목요일마다 한 끼를 드리는 거예요."

먹는 문제 앞에서 사람은 가장 솔직해진다. 그래서 밥차의 하루는 늘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장소도 없었어요. 컨테이너 같은 데서 비 맞고 바람 맞으면서 시작했죠. 천막 치고 긴 테이블 펴놓고요."

조리, 배식, 잔반 처리, 설거지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밥 한 끼'가 만들어지는 전부다. 그녀는 특히 위생을 강조했다.

"가정집에서 밥 먹는 거랑 비교하면 안 돼요. 소독도 하고, 행주로 닦고, 다시 정리하고... 다 끝나야 돌아와요."

그녀에게 밥차는 단순한 음식 나눔이 아니라 존중을 담은 식사 그 자체였다.
 최미희(뒷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씨가 봉사자들과 함께 독거노인을 위한 ‘따뜻한 밥차’ 봉사활동에 참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최미희
"싸가려는 어르신들… 못 드리는 게 가장 속상해요"

밥차에는 원칙이 있다. 음식을 싸서 가져가게 하지 않는 것이다. 혹시라도 상하거나 배탈이 나면 봉사가 오히려 피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원칙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도 있다.

"어르신들이 드시다가 남은 걸 싸가려고 하세요. 그런데 규정상 싸드릴 수는 없거든요. 그럴 때가 제일 속상해요."

그래도 예외는 있다. 혼자 생활이 어려워 식사를 챙기기 힘든 어르신들에게는 조리실에서 따로 포장해 전달한다.

그녀는 봉사의 본질을 이렇게 말했다.

"봉사는 누가 더 많이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함께 하느냐'라고 생각해요."

여름에는 식중독 우려로, 겨울에는 난방 문제로 밥차는 잠시 쉰다. 그녀는 "체육관 같은 공간에서 따뜻하게 드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했지만 현실의 벽을 잘 알고 있었다.
 30년 가까이 지역 봉사를 이어온 공로로 행정안전부 장관표창을 받은 최미희 씨(오른쪽)가 이완섭 서산시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최미희
예천주공에서 석림공원으로… "입소문이 나더라고요"

밥차는 한동안 서산 예천주공에서 운영됐다. 이후 지금은 석림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로 옮기고 나니까 넓고, 또 중간 지점이라 동문동도 가깝고 예천동도 가깝고요. 그러다 보니까 인원이 확 늘었어요."

처음에는 200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300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찾아온다.

"어르신들이 '목요일 언제 오냐'고 물어보세요. 그러면 저희는, 며칠만 기다리면 목요일이라고 말해드리죠.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분들이거든요."

밥차는 어느새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라 사람을 기다리는 약속의 장소가 되어 있었다.
 새마을부녀회장으로 활동하던 최미희 씨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수석동 무연고 묘지를 정비하며 갈퀴로 풀을 모아 치우고 있다.
ⓒ 최미희
밥차 봉사 이전, 그녀가 오래 했던 봉사 중 하나가 주거환경 정비였다.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찾아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그때 만났던 집들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 번은 어르신이 홀로 사는 집이었어요.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역한 기운이 확 올라왔어요. 세상에 냉장고 안에 소변통이 그대로 들어 있더라고요. 오래 방치된 탓에 악취가 심했습니다."

집 안은 먼지와 쓰레기가 쌓여 있었고 생활 환경은 거의 방치된 상태였다. 그녀는 마스크를 쓰고 그 냉장고를 정리하고 집 안을 치웠다.

또 다른 집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을 마주했다.

"김치 같은 음식 주변에 구더기가 우글우글 했어요. 냄새도 심하고…. 마스크를 써도 울렁거릴 정도였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덧붙였다.

"그때는 토해가면서도 치웠어요."

청소를 마치고 돌아와도 냄새가 몸에 배어 3~4일은 계속 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지금 같으면 못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그런 집들을 많이 치웠어요."

그녀가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이분들이 하루라도 깨끗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 생각 하나였어요."

또 그녀는 자원봉사센터의 역할도 강조했다. 도움이 필요한 현장은 봉사자들이 혼자서 찾아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을 발굴하고 봉사자들을 연결하는 센터 실무자들의 역할이 크다고 했다.

"센터 선생님들이 앉아서 일만 하는 줄 아는데, 사실은 현장도 같이 뛰어요."

봉사는 때로는 박수받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만드는 조용한 노동일지도 모른다.
 최미희 씨(왼쪽 첫번째)가 어르신들을 위한 네일아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최미희
"우리 부모님이 94세, 89세예요" 봉사와 봉양 사이

최씨의 하루는 봉사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그녀는 3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꽃가게를 했지만 코로나 이후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지금의 식당을 시작했다.

그녀의 삶에서 또 하나 중요한 일은 부모님 봉양이다.

"엄마가 89세고, 아버지가 94세예요."

아버지는 밀차(휠체어)를 타고 밥 먹을 때만 겨우 움직일 정도로 기력이 약해졌다. 어머니 역시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형제들이 멀리 살아 매일 돌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녀는 동생과 번갈아 부모님을 챙긴다.

"매일은 못 가지만 2~3일에 한 번은 꼭 가요. 밥 챙겨 드리고, 이것저것 살펴보고요."

결국 그녀의 하루는 봉사와 생계, 그리고 돌봄 사이를 오간다. 새벽에 봉사가 있으면 다녀오고, 오전에 집안일과 일들을 챙기고, 오후에는 장을 보고 가게를 연다. 그 사이에 부모님을 보러 가는 날도 있다.

누군가를 돕는 일과 누군가를 모시는 일이, 그녀의 삶에선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봉사는 공기 같은 존재"

인터뷰 도중에도 그녀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봉사가 없으면 낙이 없을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하다 보니 봉사였어요."
"나가면 즐겁고 보람되고, 내가 여기서 활력소를 얻는구나 싶어요."

봉사는 이제 공기 같은 존재가 된 거 아니냐고 묻자, 최씨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봉사는 특별한 날의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숨 쉬듯 이어지는 일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바람을 덧붙였다. 말끝에 웃음이 섞였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복권이라도 당첨되면요, 여건만 허락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봉사만 따라다니면서 하고 싶어요. 진짜로."

누군가에게 봉사는 특별한 일이지만, 그녀에게 봉사는 숨 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다.
 연탄 봉사활동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최미희 씨. 그녀는 밥차 봉사와 주거환경 정비 등 30년 가까이 지역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 문수협
"봉사는 같이 가보는 것부터 시작해요"

인터뷰 말미, '봉사를 하고 싶은데 망설이는 사람'에게 해줄 말이 있느냐고 묻자 최 는 거창한 조언 대신 방법을 말했다.

"주위에 봉사하는 분들한테 물어보면 돼요. '나도 해보고 싶다' 하면 같이 한 번 가보자고 데리고 갈 거예요."

거창한 결심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현장에 한 번 가보는 것.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봉사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다 어색해요. 그런데 한 번 가보면 또 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봉사가 생활이 되더라고요."

목요일 밥차는 그렇게 돌아간다. 누군가의 한 끼가 되고, 누군가의 안부가 되고, 또 누군가의 기다림이 된다. 그리고 그 밥 한 그릇에는, 가랑비에 옷 젖듯 쌓여온 한 사람의 30년 봉사가 담겨 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요, 그래도 봉사가 있어서 제 삶이 더 따뜻해진 것 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목요일을 기다린다. 누군가의 한 끼를 위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투데이와 충남도청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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