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초격차 [신간]

책은 기술이나 전략보다 ‘시스템’에 주목한다. 전작 ‘초격차: 리더의 질문’이 급변하는 시대에 리더의 자격을 논했다면, 이번 책은 질문의 방향을 틀었다. 왜 잘해오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지 추적한다. 한국 기업을 떠받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모델은 기술을 빠르게 모방해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내놓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의 비메모리 반도체, 플랫폼, 소프트웨어 산업은 설계와 창조가 본질이다. 카피 전략으로는 버틸 수 없는 구조다.
AI 시대, ‘제도·리더’는 이렇게
‘주 52시간 근무제’ 개혁도 주문
저자는 삼성전자 반도체를 세계 1위로 이끈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 그는 33년 삼성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제도와 리더십을 해부한다. 초격차를 만드는 힘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제도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관리와 통제 중심으로 설계된 인사·평가 시스템, 오너 중심 의사결정 구조, 실패를 최소화하는 문화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가로막는다는 진단이다. 저자는 “경영은 최소의 인풋으로 최대의 아웃풋을 내는, 상황에 맞는 최적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크게 제도와 리더 두 축으로 전개된다. 제도 부분에서는 기업 지배구조 개혁, 미래 인재 육성, 공정한 평가 시스템을 다룬다. 왜 한국에는 유니콘과 히든 챔피언이 드문지 묻는다. 조직문화 역시 구호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라고 말한다. 왕을 만드는 구조, 일의 가치를 흐리는 평가 방식이 구성원의 선택을 바꾼다는 것이다. 문화는 정신이 아니라 시스템의 결과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리더십에 대한 통찰도 구체적이다. 관리자는 지시하지만 경영자는 질문한다고 구분한다. 통찰·결단·실행·지속력을 리더의 핵심 역량으로 제시한다. 특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정리하는 능력’을 실행력의 출발점으로 꼽는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조직에서는 결단이 자라지 않는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리더가 3개월 자리를 비워도 조직이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은 후임자 플랜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노동과 규제 문제도 피해가지 않는다. 저자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획일적 적용이 신기술·신사업의 타이밍을 놓치게 한다며 유연한 개혁을 주문한다. AI·반도체·바이오·콘텐츠 산업은 속도가 생명인데, 주 단위 근로 시간을 고정하는 제도는 유연성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책 곳곳에는 미국 기업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엔비디아, 테슬라, 오픈AI 등은 특정 기술 하나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판단과 제도를 통해 기술을 키워낸 구조의 힘으로 성장했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정부는 미래를 위한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기업은 기업가 정신으로 재무장하며, 대학은 유능한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우리는 AI시대에 ‘초격차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0호(2026.03.11~03.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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