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앓이'는 영월로, '흥도앓이'는 여기로 가야합니다
[오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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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문경시 산양면 위만 1리, 문경과 예천 경계에 있는 '우마이 마을(옛 이름)'이 그곳이다. 삼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에도 굴하지 않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영월 호장 엄흥도 후손들의 마을로, 466년의 시간을 이어 현재 70여 가구가 사는 곳이다. 엄흥도를 기리는 사당 '충절사'와 향사가 진행되는 '상의재'에 가보기 위해 지난 1일, 우마이 마을로 출발했다.
지금 한국은 '단종앓이' 중이다. <왕과 사는 남자>가 인기를 끌며 덩달아 단종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10년 전 다녀온 청령포는 잘 벼린 칼빛처럼 시렸다. 찬란한 햇빛 아래 거뭇한 줄기를 그어댄 소나무 그림자가 마치 단종의 볼에 흐르는 억울한 눈물 같아 애잔했다. 단종의 복위를 바라며 소나무마저 어소와 한양을 향해 굽어 자랐다는 해설사의 설명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에 비해 우마이 마을은 북적임 없이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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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시 산양면 우마이 마을 '엄흥도테마소공원'에 설치된 시계탑. 단종의 비극과 엄흥도의 의리가 담긴 조형물 |
| ⓒ 오순미 |
정자엔 후손들이 따뜻한 차를 준비해 두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마시며 사육신·생육신의 기록을 훑어보다 시계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단종의 비극과 엄흥도의 충의가 고스란히 담긴 상징물이어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 시계탑은 6각의 기단(승하 시각 6시)과 원형탑 24단(24단은 승하한 날을 뜻함), 벽돌 개수(1457개)로 1457년 10월 24일 유시(오후 5~7시)에 승하한 단종의 최후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시계탑 상부엔 엄흥도가 단종 시신을 수습한 후 장사를 치르기 위해 동을지산(영월엄씨 선산)을 헤맬 때 놀라 달아난 노루를 조각해 놓았다.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할 당시는 언 땅이어서 장사 지내기 어려웠으나 마침 노루가 앉았던 자리는 온기가 돌아 단종의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원형의 하늘을 하단에, 모가 난 땅을 상단에 배치해 천륜을 어긴 세조의 참극을 신랄하게 비꼰다는 점도 시계탑이 가진 의미 중 하나다. 시계의 숫자에도 뚜렷한 의미를 담았다. 단종의 시신을 거둘 때 대다수가 만류했으나, 엄흥도는 '위선피화(僞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 : 의로운 일을 하다 당한 화는 달게 받겠다' 말하며 망설임 없이 단종의 시신을 건졌다고 한다. 그 8자에 충심과 도리를 내세운 '엄충의공'(嚴忠毅公)'까지 더한 12자가 시각을 가리키는 바늘 끝에 숫자를 품은 채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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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시 엄흥도 후손이 사는 '우마이 마을'의 '상의재'. 배움의 공간이자 제향이 진행되는 서원. |
| ⓒ 오순미 |
엄흥도의 순수한 애정이 그나마 단종 최후의 삶에 원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건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평범한 소시민 엄흥도의 솔직한 인간미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비운의 군주와 시대를 간결하면서도 따뜻하게 담아냈다. 군주의 역량을 끌어낸 백성과, 백성의 도리에 마음을 다잡은 군주가 일으킨 시너지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본보기가 될 만한 상징적 요소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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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흥도의 위패를 모신 사당 '충절사'. 문경시 우마이 마을 안쪽에 위치. |
| ⓒ 오순미 |
엄흥도의 굳은 신념이 서린 충절사와 상의재는 우마이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꼿꼿하게 우리를 맞았다. 단종에겐 인간적 도리를, 이웃에겐 촌장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 엄흥도. 그의 유훈을 잇는 마을이 <왕과 사는 남자>를 계기로 세상에 회자되어 충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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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흥도 후손이 이룬 우마이 마을 테마소공원 전경 |
| ⓒ 오순미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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