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오는 거 아냐? 지금 미국은 ‘사모대출’ 때문에 살얼음판

지금 미국 금융시장은 ‘사모대출’(Private Debt) 때문에 살얼음판이다. 사모대출은 은행이 아닌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이 기업에 비공개로 직접 돈을 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수익성 높은 새 투자처를 찾는 금융사와 빠르게 돈을 빌리고 싶은 기업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커졌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직격탄을 맞은 기업에 돈을 빌려줬던 대형 금융사 몇 곳이 고객 자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국제 정세까지 불안정해지면서 금융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주요 증권사의 사모대출 담당 임원을 불러모아 관련 해외 정보와 시장 동향을 철저히 파악하라고 당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사모대출 시장 규모는 2023년 말 기준 2조1000억 달러(약 3076조원)에 이른다. 한국 시장은 크지 않지만 해외 사모대출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펀드가 국내에서 꽤 팔렸다. 사모대출펀드 판매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약 17조원이다. 이 중 4800억원가량이 개인 투자자 몫이다. 국내 기관 투자자의 전체 운용 자산 중 사모대출 관련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안팎으로 추정된다.
국내 금융권의 위험 노출액이 많지 않은데도 금감원이 긴급하게 대응한 것은 현지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사모대출 시장 위기는 지난해 하반기 자동차 부품 제조·유통사인 ‘퍼스트브랜드’(First Brands)와 서브프라임(비우량) 자동차대출 금융사 ‘트라이컬러’(Tricolor)가 파산하면서 본격화했다. 퍼스트브랜드는 116억 달러(약 17조원)에 이르는 빚을 절반으로 줄여 보고했고 트라이컬러는 22억 달러(약 3조원) 규모의 담보 사기를 벌여 실제 기업 가치보다 많은 돈을 끌어다 썼다.
기업에서 시작된 불은 이들에게 직접 돈을 빌려줬거나 파생상품 투자 등으로 엮여 있는 금융권으로 옮겨붙었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PEF 운용사 블루아울캐피털이다. 블루아울은 소프트웨어 기업 여러 곳에 큰돈을 빌려줬는데 최근 AI가 소프트웨어를 대체한다는 공포감이 퍼지며 해당 기업들의 가치가 폭락했다. 이 여파로 블루아울은 운영하던 3개의 펀드 중 하나인 ‘OBDC Ⅱ’의 환매(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는 것)를 일시 중단했다. 곧바로 유동성을 마련하기 위해 펀드 3개에서 총 14억 달러(약 2조원) 규모의 자산을 헐값에 매각했다. 세계 최대 PEF 운용사 블랙스톤이 운영하던 소프트웨어 기업 중심 사모대출 펀드 ‘BCRED’에도 투자자의 환매 요청이 쇄도했다. 블랙스톤은 펀드 자산의 8%가량에 해당하는 38억 달러(약 6조원)를 돌려줘야 할 위기에 놓였다.
미국 사모대출 사태의 원인은 복잡다단하다. 특정 기업 몇 곳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과 제도 자체에 구조적인 결함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AI발 나비 효과다. 사모대출에 열중했던 금융사의 시각이 AI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등이 ‘AI가 소프트웨어 기업의 대출 상환 능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왔지만 블루아울 등은 듣지 않았다. 두 번째는 느슨한 심사 관행이다. 사모 특성상 상장주나 채권과 달리 시장 가격이 없다. 외부 기관의 평가도 받지 않는다. 외부의 안전장치가 없는 대신 돈을 내주는 금융사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구조다. 고금리 후행 충격까지 겹쳤다. 사모대출의 90% 이상은 금리 변동형이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뒤 시장 금리가 상승하면서 돈을 빌려 갔던 기업의 빚 상환 부담이 점증했다. 퍼스트브랜드와 트라이컬러가 파산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모대출을 애용한 기업들의 금고가 바닥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사모대출 사태는 미국 금융시장의 건전화를 불러올 찻잔 속 태풍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위기에 빠진 금융사가 더 등장하거나 이번 사태로 금융권의 사모대출 심사가 과도하게 깐깐해지면 신용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수희 LS증권 연구원은 “영미권 사모대출 시장에서 활동하던 영국계 금융사 MFS도 최근 지급 불능에 빠진 상황”이라면서 “현재 위기가 단기 조정에 그칠 것으로 보이지만 국지적인 자금 경색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 부정선거 토론 전한길에 “국민 일깨운 성공적 토론”
- 두바이 韓 관광객 370명 항공편 못 구해…95명 귀국
- “앞으로 72시간이 전쟁 향방 가른다”… 이란 반격 능력 유지되는지가 관건
- “김정은 하메네이와 다르다”… ‘참수작전’ 한반도선 힘들어
- 李대통령 “100조 금융 안정조치 신속집행…유류값폭등 제재논의”
- 美 “잠수함 어뢰로 이란 전함 격침… 2차대전후 처음”
- ‘AI 아내’ 만나려 숨진 30대…“제미나이가 망상 유발” 구글 피소
- “수천명 쿠르드 반군, 이란 지상 공격” 폭스뉴스
- [단독] 이창용, 고환율에 “우리가 두려워할 건 두려움 그 자체” 인용
- 떨어지는 칼날 잡은 개미들 비명… 확산되는 ‘빚투 청산’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