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초읽기 '왕과 사는 남자', 미국 작은 상영관에서도 느껴진다
[황진영 기자]
일주일 예정이었던 미국 개봉 일정이 올해 첫 해외 출장과 겹친다는 걸 알았을 때, 너무 실망스러웠다. 왜 하필 지금이냐며 투덜거렸다.
2월 28일, 출장을 마치고 토요일 저녁 비행기로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우버를 탄 순간은 3월 1일 일요일 새벽. 개인 폰의 비행 모드를 해제하고 오랜만에 소셜미디어 스레드에 접속했다.
<왕과 사는 남자>를 근처 극장에서 일요일에 관람했다는 지역 스레더의 포스트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우버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연장 상영이다. 놓칠 뻔했던 기회가 찾아왔다. 피곤함쯤은 하루 더 미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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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과 사는 남자> 미국 상영관의 모습 <왕과 사는 남자> 미국 동부, 버지니아 페어팩스 상영관의 모습 |
| ⓒ 황진영 |
프롤로그와 영화 줄거리, 감독과 주연 배우의 인터뷰를 통해 재미와 감동, 그리고 역사적 결말까지 이미 풍분히 '스포' 당한 이야기임에도 감동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감독이 준비한 유머 코드에 웃다가, 단종의 눈빛에 빠져들다가, 여러 번 지적되었던 호랑이 CG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괜찮은데 뭐"라며 감독과 제작진을 편드는 마음이 솟아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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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과 사는 남자> 미국 상영관 <왕과 사는 남자> 미국 상영관 |
| ⓒ 황진영 |
<서울의 봄> 개봉 당시에도 한국 개봉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미국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당시 한국 역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던 '미국 초딩' 아들이 영화를 같이 보고 오던 길에 다시 한 번 물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근데 저 대통령은 어떻게 됐어? Mr. Lee는?"
역사적 사실을 짧게 설명해 주자 의아한 눈빛으로 내게 되물었던 아들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엄마, 착한 사람이 왜 힘들어? 나는 왜 착하게 살아야 해?"
그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그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뻔한 말을 주억거렸을 뿐이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그다지 의미 없는 대답이었고 대화는 거기서 멈췄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마지막에는 정사와 야사를 오가는 역사 기록이 자막으로 표시된다. 노산군이 2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단종으로 복위되었다는 사실, 단종의 시신을 거둔 보수주인 엄흥도(영화의 영어 제목 King's Walden이 떠올리게 하는 인물)가 숨어 살다가 후에 공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서울의 봄>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들의 얼굴과 실제 사진이 묘하게 엇갈리던 순간과 비슷한 감정이 남는다.
역사는 때로 너무 늦게 바로잡힌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침묵 속에 묻히거나 이름조차 남지 못한 채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그 순간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선택을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당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보여도.
아들이 물었던 질문이 문득 다시 떠오른다.
"엄마, 착한 사람이 왜 힘들어? 나는 왜 착하게 살아야 해?"
그때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역사가 남기는 이런 이야기들이 그 질문에 대한 가장 긴 대답인지도 모르겠다.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것은 '죽은 자가 산 자를 보살피는 장면'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잊고 있었던 '선택'의 중요성을 영화를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된다.
https://www.regmovies.com/movies/the-kings-warden-korean-ho000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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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과사는 남자> 미국 영화관 상영정보 <왕과사는 남자> 미국 영화관 상영정보 영화관 Regal Cinema 스크린샷 |
| ⓒ Regal Cinema |
한국에서는 1000만 고지가 눈앞이라는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미국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 극장에서도 <왕과 사는 남자>를 상영하고 있다고 한다. 해외 관람객 수까지 합친다면 이미 천만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 더 연장된 <왕과 사는 남자> 미국 상영. 다가오는 주말에는 꼭 아들과 함께 극장에서 한 번 더 관람해 보려 한다. 아들은 학교에서 세 학기째 한국어를 세계언어 선택 과목으로 배우고 있다. 단종의 이야기는 아직 잘 모르지만, 지금 한국어 수업에서는 <홍길동전>을 각색해 새로운 극본을 만드는 과제를 하고 있다. 양반과 노비의 차이,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홍길동이라는 인물에 대해 배우고 있는 아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질문을 할까.
3년 전 <서울의 봄>을 보고 극장을 나서며 던졌던 그 질문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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