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엄흥도는 500년 전 기록과 얼마나 닮았을까
글쓴이는 언어학자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조선왕조실록 속 인물 엄흥도가 시대와 매체에 따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고 해석되는지를 언어학과 미디어의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기자말>
[황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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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장면 |
| ⓒ ㈜쇼박스 |
5일 기준 900만 관객을 넘어선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왕조실록>의 엄흥도 관련 기록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그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인물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기에 영화관을 나서기 바쁘게 바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았다.
온라인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은 원본과 더불어 한문으로 된 원문과 국역본을 함께 제공한다. 국역본에서 '엄흥도'는 무려 22회 검색된다. 성을 떼고 '흥도'나 '엄 호장(戶長)'처럼 다르게 불린 경우까지 합치면 더 많이 호명된 것을 알 수 있다.
엄흥도가 실록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단종 사망 후 59년이 지난 중종 11년(1516년)이다. 우승지 신상이 노산군(단종)의 묘를 참배하고 와서 한 보고 속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다.
"... 사람들 말이 「당초 돌아갔을 때 온 고을이 황급하였는데, 고을 아전 엄흥도(嚴興道)란 사람이 찾아가 곡하고 관을 갖추어 장사했다.」 하며, 고을 사람들이 지금도 애상(哀傷)스럽게 여긴다.' 하였다."
그 뒤로 현종실록과 현종개수실록 각 1회, 숙종실록 2회, 영조와 정조 실록에서 각 6회, 고종 5회까지 합쳐서 총 22회 언급된다. 후세로 갈수록 더 자주 언급된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기술되었을지 일일이 읽어 보았다. 읽다 보니 한 인물의 기록과 의미가 매체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흐름이 보였다.
말에서 글로
엄흥도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국가 기록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1516년 중종실록에 등장하는 첫 문장은 "사람들 말이(人言)"라는 전언(傳言) 구조를 취한다. 그는 발화의 주체가 아니라 인용의 대상이었다.
"찾아가 곡하고 장사했다."
엄흥도에 대한 기록은 매우 간결하다. 감정이나 장면은 없고 서술을 위한 동사만 있을 뿐이다. '찾아가다, 곡하다, 장사하다.' 그의 행위에 대한 간결한 기술이긴 하나, 마을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가 문헌으로 편입되는 순간이다. 엎으면 다시 담을 수 없는 말이 글이 되면서 전언은 기록이 된다. 이야기가 일회성 대신 영속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글에서 개념으로
현종실록에서는 '노산군이 해를 입었을 때 아무도 거두어 돌보지 않았었는데'라는 배경과 더불어 "엄흥도가 곧바로 가 곡하고 스스로 관곽을 준비해 염하여 장사를 치렀으니"라는 장면 묘사가 덧붙여진다. 그러면서 "흥도의 절의를 사람들이 지금까지 일컫고 있습니다"라며 그의 행위에 '절의'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숙종과 영조 대에 이르면 엄흥도에 대해 "충절", "특이한 절의", "특이한 충렬", "충성" 같은 표현이 더해진다. 이제 기록은 "무엇을 했는가"보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동사 중심의 기술에서 추상명사의 기술이 더해지면서, 엄흥도의 행위는 보편적 가치로 고정되고, 나아가 '충절'이라는 이름 아래 이상적인 모범이 된다. 단종 복위 이후의 정치적 상황에서 엄흥도는 한 인간을 넘어서 조선이 필요로 한 가치의 표상이 된 것이다. 시대에 따라 동일한 인물, 동일한 사건을 말하는 문법은 달라진다. 행위는 점차 개념으로 압축된다.
기록에서 서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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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종실록의 엄흥도 고종실록의 엄흥도 |
| ⓒ 조선왕조실록 |
서사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2026년, 엄흥도는 스크린 위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는 글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이고, 동네 사람들에게 흰쌀밥 한 끼라도 배불리 먹이고 싶어 하는 동네 이장이다. 처음 그의 행동은 흰쌀밥을 배불리 먹기 위한 소박한 욕심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인정에 의해 움직이며, 서슬퍼런 권력 앞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끝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한다.
영화는 그를 '충절의 상징'이라기보다 망설임 끝에 의리를 지키는 한 보통 인간으로 그린다. 문자 기록이 인물을 개념으로 만들었다면, 영화는 다시 그를 감정과 서사를 가진 입체적 인물로 돌려놓은 것이다.
맺음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이 단초가 되고, 글로 옮겨지면서 기록이 되며, 국가적 기록에서 그 가치는 격상된다. 관리들에 의해 기록된 이야기는 후손들에 의해 구수한 옛말이 되고, 현대의 영화는 배우의 대사, 표정, 화면을 통해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려낸다. 매체가 바뀔 때마다 인물의 중심은 조금씩 이동한다.
'고을 아전 엄흥도'는 '증 공조판서'가 되었고, 다시 오늘의 영화 속에서 감정을 가진 한 보통 사람으로 변주된다. 그리하여 조선왕조실록에 22번 이상 등장하는 엄흥도는 하나의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매체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인물이 된다.
하지만 엄흥도의 변천사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매체의 진화만이 아니다. 매체라는 그릇이 바뀔 때,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시대의 요구'이다. 조선 중기가 '사실'을 필요로 했다면, 숙종·영조대에서는 '이데올로기'를, 고종에 이르러서는 '서사'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영화라는 2차적 구술매체를 통해 '감정'을 가진 엄흥도를 만나는 것은, 이 시대가 영웅이 아닌, 다만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공감할 수 있는 보통의 인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https://sillok.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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