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체포된 청년이 이례적으로 석방된 속사정

김상목 2026. 3. 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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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노 어더 랜드>

[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팔레스타인 청년 '함단 발랄'이 서안 지구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영역을 강점한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들에게 납치 감금 및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정착민을 제지하지 않고 함단을 연행해 하루 동안 강제구금했다. 이스라엘 군경을 향한 폭력행위 용의자란 이유였다. 매월 1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이 강제 연행 대상으로 홍역을 치르기에 이는 일상다반사로 여겨질 흔한 사건처럼 보였다.

해당 건은 전 세계 외신을 통해 일파만파 커졌고, 강제구금 중에서는 드물게 단시간에 석방 조치가 이뤄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난의 당사자가 불과 3주 전 열린 87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상 수상작 공동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다큐멘터리 제목은 <노 어더 랜드>다.

현실 기록한 두 친구
 <노 어더 랜드> 스틸
ⓒ 필름다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영토를 구성하는 양대 지역 중 서안지구 남부에 '마샤페르 야타'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스무 개의 오래된 작은 마을이 다닥다닥 붙은 이 동네에 천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대를 이어 살아간다. 하지만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해당 지역을 점령하면서 반세기 넘게 주민들은 강제 이주 위협에 시달리는 중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청년 '바젤 아드라'는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파괴되는 마샤페르 야타 상황을 세상에 알리는 영상 활동가로 하루가 멀다고 들이닥치는 이스라엘군의 만행을 카메라로 기록한다.

고단한 나날이 계속되던 중, 바젤은 이곳 상황을 취재하러 온 이스라엘 기자 '유발 아브라함'과 만난다. 입장을 공유하는 데다 또래이기도 한 둘은 곧 친구가 되고 강제철거에 대항해 활동하며 우정을 쌓는다. 이들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에 걸쳐 기약 없는 싸움을 이어간다. 그러나 이 싸움은 너무나 일방적이다. 바젤과 유발, 마샤페르 야타 주민들은 권투로 치면, 사각의 링 안에서 고립무원 상태인 채로, 그것도 손을 뒤로 결박당한 것처럼 때리면 맞으며 악착같이 버티는 것 외에 아무 대항수단도 없다.

마을 주민들을 보호해 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점령군은 비폭력 시위에도 섬광탄을 터뜨리며 위협한다. 항의하다 목이 졸리고 결박당한 채 체포되는 건 다반사다. 재수가 없으면 총에 맞아 죽거나 불구가 되기 일쑤다. 그 어떤 대책도 보상도 허락되지 않는다. 예고 없이 불쑥 불도저를 비롯한 중장비가 밀고 들어올 때마다 마치 깡패들의 무력시위처럼 한 가족의 보금자리가 폐허로 변한다. 졸지에 집을 잃은 이들은 수천 년 전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동굴에 들어가 혈거 생활을 해야 한다. 재건축 허가는 아무리 기다려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젤과 유발은 숱한 고비를 함께 견디며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지만, 점령군의 횡포와 만행이 나날이 강화되면서 둘의 우정도 위기에 처한다. 모든 걸 포기하고 떠나지 않는 한, 역설적으로 마샤페르 야타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유배된 죄수처럼 살아야 하는 바젤과 유발은 낮에는 함께 항의하며 싸운다. 그러다 밤이 되면 가족이 있는 바깥의 안전한 도시로 귀가한다. 두 청년의 상황을 감독은 팔레스타인 vs. 이스라엘 구도로 환원시킨다.

이스라엘 '정착촌'의 실상
 <노 어더 랜드> 스틸
ⓒ 필름다빈
<노 어더 랜드>는 '현장 다큐멘터리란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기록영화의 '최전선'이라 해도 과도할 게 없을 정도다. 4명의 공동 감독 중 2명은 팔레스타인, 2명은 이스라엘인이다. 이중 바젤과 유발이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영화 내내 등장하며 그들의 동료로 함단이 출연한다. 기록자이자 행위자인 셈이다. 영화 속 배경인 마샤페르 야타 지역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 위상을 갖는다. 이 지역은 어떤 조건에 놓여 있을까?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국 영역은 두 곳, 가자와 서안지구로 나뉜다. 가자는 이집트 국경에 면한 지중해 일대, 서안지구는 과거 중동전쟁에서 요르단으로부터 강점한 지역이다. 2개 국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공존하게 만든다는 원칙이 국제적으로 공인되고 있지만,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자치는 온전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스라엘에 경제적 종속은 물론 군사적으로도 탄압은 계속된다. 한술 더 떠 엄연히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데도 밀고 들어와 '정착촌'이란 명목으로 야금야금 영토를 빼앗는 현실이다.

마샤페르 야타 지역은 서안지구 갈등의 핵심인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이 최대규모로 이뤄지는 동네다. 이스라엘군은 이 일대의 20개 마을에 훈련장 등 군사지역으로 강제 규정해 주민들을 내쫓고 정착촌을 설치하고 있다.

영화는 마샤페르 야타에서 나고 자란 팔레스타인 청년 바젤, 동년배인 이스라엘 진보언론 기자 유대인 야발, 현지 동료 활동가들이 수행한 2019년부터 2023년 10월, 즉 가자 전쟁 개전 직후까지 이 지역에서 일어난 야만적 강제퇴거의 현장 기록이다. 휴대전화 카메라나 가정용 캠코더로 거의 모든 촬영을 했다.

180도 뒤집힌 구도
 <노 어더 랜드> 스틸
ⓒ 필름다빈
<노 어더 랜드>는 기록과 고발의 영화다. 무엇보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가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바젤과 야발은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야만적 폭력에 맞선다. 하지만 돌멩이조차 들 수 없다. 무력 차이가 너무 압도적인 탓이다. 물론 다윗은 그들이고 골리앗은 이스라엘군과 정착촌 주민이다. 늘 당하기만 하는 탓에 무력감에 시달리고, 공격에 노출된다. 신상 털기 협박도 노골화한다.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소송을 걸어도 재판은 기약이 없다. 판결이 미뤄진 사이에 강제철거는 계속된다.

은폐된 현실을 알리려는 풀뿌리 언론인은 표적이 된다. 야발은 팔레스타인 편을 든다며 군대와 정착민들에게 비국민 취급을 겪는다. 바젤은 언제든 무단연행 공포에 노출된다. 경고로 아버지나 형이 부당하게 체포당해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런 시련에도 주민들에게는 이 땅을 지키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란 없다. 관객은 그들의 절박한 사연에 서서히 빨려 들기 시작한다.

마샤페르 야타의 참상은 한국이 이스라엘 점령 정책에 방관을 넘어 협력한다는 생생한 증거이기도 하다. 정착촌 건설 명목으로 극우주의자들이 이스라엘 정권의 첨병 노릇을 하며 땅을 빼앗는 과정에서 집과 우물, 학교를 부수는 도구로 활용되는 중장비는 가격 저렴하고 성능 좋기로 유명한 한국산 불도저다. <노 어더 랜드>에서도 몇 장면에 선명하게 한국 기업 로고가 확인된다. (한국 평화활동가들이 현지에서 기록한 <언허드: 마샤페르 야타를 지켜라> (2023, 40분, 연출 권순목)에 좀 더 구체적 실상이 드러난다.)

영화는 가자 전쟁 발발 직후에 멈춘다. 한국 관객이 만나는 시점과 2년 넘게 시차가 발생한 셈이다. 물론 상황은 더 나빠졌다. 가자는 폐허로 변한 상태이고, 이란 침략에 관심이 집중된 틈에 휴전을 무시하고 다시 이스라엘의 봉쇄가 자행되는 중이다. 마샤페르 야타는 물론, 서안지구에 대한 정착촌 건설은 가속화된다. 중동 전역이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패악질에 신음한다. 그들의 원한이 어디로 향할까?

<노 어더 랜드>를 목격하는 건 고통스러운 체험이다. 그러나 영화와 극장을 현실도피 단꿈 도구로 여기지 않고, 세계의 단면과 만나는 통로로 여기는 관객이라면, 우리가 처한 세계의 어두운 면과 지구촌 동포의 비운을 간접 체험할 절호의 기회다. 그만큼 압도적 감흥을 제공하며 우리를 세계시민으로 소환하는 '영화적 체험'이 될 테다.

<작품정보>

노 어더 랜드
No Other land
2024 팔레스타인 다큐멘터리
2026.03.04. 개봉 92분 15세 관람가
감독 바젤 아드라, 함단 발랄, 유발 아브라함, 레이첼 쇼르
수입/배급 필름다빈
 <노 어더 랜드> 포스터
ⓒ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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