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되기 전에 교체되는 계약직, 나는 누구인가

부산노동권익센터 2026. 3. 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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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노동권익센터 2025년 제3회 감정·비정규 노동자 수기 공모전 '장려상' 작품

[부산노동권익센터]

" 아… 그렇다면 네가 맡은 사무보조 포지션이 '순환형 계약직' 구조인 거네. 안타깝게도 이런 자리는 보통 회사 차원에서 '2년 되기 전에 교체하는 방식'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을 원천 차단하고 있어.
즉, 일 잘하고 성실하더라도 제도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구조야."

챗지피티도 말했다.

첫 출근날.

"연장되면 최대 1년 더 할 수 있어요. 그 이상은 안 돼요. 면접 때 설명 들었죠?"

계약 만료로 인한 퇴사를 앞두고 인수인계를 해주는 전임자는 차분했다.

"1+1년 계약, 최대 2년 근무 가능, 단순 사무보조에 한정되는 업무 영역"

알고 들어왔다.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한계가 분명했기에 기대하지 않았다. 여긴 나에게도 임시적인 자리일 뿐이고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경력을 쌓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겼다.

'이왕 하는 거, 조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이렇게 바꾸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손에 익으니 개선의 여지들이 눈에 보였다. 매뉴얼을 만들고, 오류를 줄이고, 현장과 사무실 간의 간격을 채웠다. 그렇지만 나의 기여와는 별개로 조직에서 내 위치는 계약 만료 후 갈 사람, 소모품, 사무실 여직원일 뿐이다.

경영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자면, 이것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시스템이다. 회사는 정규직으로 사람을 채용해서 인건비를 감수하는 부담을 질 이유가 없다. 대학 시절 전공 수업에서 배운 '인적 자원 관리' 이론이 떠올랐다. 핵심 업무는 정규직이 담당하고, 단순 반복 업무는 비정규직이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배웠다. 인건비 절감과 고용 유연성 확보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논리였다. 회사는 정규직으로 사람을 채용해서 인건비를 감수할 이유가 없다. 사무보조 업무는 누가 해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2년마다 새로운 사람을 뽑으면 된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너무나 잔인한 시스템.
▲ '유지'라는 단어의 공허함 삭막한 사무실 책상에 앉아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회사의 사업 계획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계획서 위에는 "지원업무 계약직 1명 유지"라는 한 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으며, 마치 기계를 정기점검하고 소모품을 유지보수하듯 자신을 관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의 공허함을 담았습니다.
ⓒ 부산노동권익센터
주변 지인들은 말한다.

"열심히 하면 계속하는 거지~"

선의에서 나온 격려인 걸 알지만 그들은 내 자리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곳은 '열심히 하면 정규직이 되는' 그런 곳이 아니다. 애초에 2년이라는 시한이 정해진 자리,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내도 시스템 자체가 연장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다. "네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 답답하다. 내가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회사가 원하는 것은 사용하고 교체할 '소모품'이라는 것이다. 회사와 조직의 미래 계획에 나라는 사람은 없다.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조직도와 인력 운용계획에는 '사무보조 계약직' 1명만 있을 뿐이다. '계약직 1명'. 마치 사무용 컴퓨터나 복사기처럼 비품 목록에 있는 것 같았다.

인력 운용 및 사업 계획서를 볼 기회가 있었다. 팀 별로 인력 증원 계획, 전문성 강화 방안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나에 대해서는 딱 한 줄이 있었다.

사무지원 업무를 위한 계약직 1명 '유지'

시설이나 장비를 관리하듯 '유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증원', '보강', '전문화'가 아니라 '유지'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었다. 마치 기계를 정기 점검하고 유지 보수하는 것처럼.

'재계약이 되려나? 내가 잘 하면 혹시 더 일 할 수 있을까?'

불안하거나 희망을 품거나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회사는 위법하지 않는다. 다만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사람을 나누고, 차이를 만들고, 거리를 둔다. 근로기준법과 기간제법을 찾아보며 파악했다. 2년 미만 계약, 단순 반복 업무, 정규직과의 업무 구분 - 모든 것이 법적 테두리 안에 있었다. 회사는 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었다. 2년을 넘기면 무기계약직 전환 의무가 생기기에 미리 조치를 취한다. 업무 범위도 애매하게 겹치지 않도록 명확히 구분한다. 나중에 '동일 업무'라고 판정받아 논란이 생길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회사는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것을 얻고 있었다. 저렴한 인건비, 고용 유연성,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조직 메신저 권한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조직 메신저로 업무를 주고받지만, 나는 늘 개인 메신저를 사용한다. '라이센스 구독 비용이 부담되어 계약직에게까지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라이센스 구독비용은 월 2400원. 이 금액이 얼마나 작은지 깨달은 것은 회식 영수증을 정리하면서였다. 한 번 회식할 때 쓰는 돈이 30만 원이 넘었다. 내 메신저 라이센스 2년치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

생각이 많아지고 심란해졌다. A가 계약직은 회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회식 영수증을 주며 A는 상사들과의 식사가 불편하다며, 내가 부럽다고 했지만 나는 A 매니저가 부러웠다.
▲ 메신저 비용 거부와 회식 영수증 한 손에는 비공식 메신저 라이선스 라이센스 비용 거부 통지서가, 다른 한 손에는 큰 금액의 회식 영수증이 들려 있습니다. 회식비 수십만 원은 아깝지 않으면서도 계약직의 메신저 사용료는 아까워하는 회사의 태도를 극적으로 대비했습니다.
ⓒ 부산노동권익센터
회의에 들어가도, 보고서를 제출해도, '○○매니저', '○○선임'이라는 호칭이 오가는데 나는 '○○씨'이다. 나는 매니저가 아니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다. 누구도 나를 차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같은 동료로 대하지 않는다. 그 경계는 말없이 분명하고 또렷하다. 일상의 작은 것들의 차이가 선명하다. 회사와 동료들은 나에게 기대가 없다. 계약직이니까. 그리고 나 역시 서서히 그들의 기대 수준에 맞춰가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고, 시키는 일만 한다. 나는 그저 회의록을 정리하고 자료를 복사하고 계획을 취합한다.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개선의 여지가 보여도 말을 꺼내거나 의견을 내지 않는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업무 매뉴얼을 정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후임자가 와서 인수인계 받을 때 필요할 것 같아서요."

내가 만든 시스템을 문서화해서 후임자에게 넘겨주라는 것이었다. 그 작업을 하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만들어 온 모든 것들, 해온 것들을 한 권의 매뉴얼로 정리하는 것. 내가 이 조직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 문서화하는 것. 내가 일하면서 터득한 모든 노하우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복사기에 종이가 특히 자주 걸리는 곳과 해결 방법"까지 세세하게 적었다.

문서를 읽어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매뉴얼만 있으면 정말로 누구든지 내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해온 일이 50페이지 분량의 문서로 요약되었다. 내가 이 조직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 근무 인원 취합하기, 서류 정리하기, 자재 구매, 방문자 안내하기 등등. 정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따져 보니 특별한 창의성이나 전문 지식이 필요한 일은 없었다. 정해진 절차를 숙지하고 성실하게 따라 하면 되는 일들이었다.

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한 지식이 필요한 일도 없었다. 전공이 도움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중학교 방과 후 시간에 배운 엑셀 지식 정도만 활용한 것 같다. 심지어 내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졌던 '업무 개선' 부분도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단순한 효율화 작업이었다. 복잡한 분석이나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을 관찰하고 불편한 점을 찾아 조금씩 개선하는 정도였다. 매뉴얼에 적힌 내용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정말 누구든지 이 매뉴얼만 보면 첫 주부터 바로 나를 대체해서 일할 수 있겠구나. '

문득 나는 조직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궁금해졌다. 시스템을 만든 사람? 아니다. 시스템은 이미 있었고, 나는 그것을 일부 개선했을 뿐이다. 업무를 처리한 사람? 맞다. 하지만 그 업무는 매뉴얼에 따라 누구든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조직에 기여한 사람? 어느 정도는 맞다. 하지만 그 기여도가 그닥 유의미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의 성과들을 다시 생각해 보니, 사실은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개선이었다. 회사 전체의 매출이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없었다고 해서 회사가 크게 어려워졌을 것도 아니었다.

나는 조직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기능"한 존재였던 것 같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고장나지 않고 안정적으로 기능을 수행해냈다.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내가 이 시스템을 이해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회사라는 조직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분노나 슬픔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 들었다. 심지어 회사를 이해하게 되었다. 논리와 현실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이런 이해와 수용이 과연 건전한 것일까? 개인의 존엄성, 고용 안정성, 성장 가능성 같은 가치들이 효율성과 수익성이라는 논리 앞에서 너무 쉽게 간과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한 인간으로서 이 조직에 애정을 갖고,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동료들과 관계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회사에게 나는 그냥 하나의 '기능'이었다.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품이었다. 내가 느꼈던 소속감, 성취감, 보람 같은 것들은 회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감정들이 생기지 않도록 계약 기간을 제한하고, 업무 범위를 한정하고, 기회를 차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이러한 시스템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것은, 결국 이런 비인간적 논리를 충실하게 내재화 했다는 뜻이 아닐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시스템에 분노하며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를 준비할 것인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현실은 받아들이되, 이런 경험이 헛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고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어야 한다.
▲ '유지'의 시간을 넘어선 '존재'의 기록 2년이라는 '유지'의 시간을 갈무리하며, 자신을 교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취급한 시스템에 대항해 남기는 가장 인간적인 흔적을 상징합니다. 복사기 수리부터 전화 응대 노하우까지 50페이지에 걸친 이 매뉴얼은, 후임자에게 자신의 색깔을 잃지 말라는 위로를 건네며 고요하게 저항하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 부산노동권익센터
계약직 경험을 통해 나는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는 '기능'이었지만, 그것이 내 존재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었지만, 기능 그 자체는 아니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 고민들, 성장의 경험들은 회사의 관심사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분명히 의미 있는 것들이다.

내가 겪은 경험을 단순히 '개인적 성장'으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경험을 사회적 의미로 확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침묵의 공모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조용히 떠났다. 이력서 한 줄에 "○○회사 사무보조 "라고 적고, 면접에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넘어갔을 것이다. 이런 침묵이 시스템을 유지 시킨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당사자조차 자신의 경험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말할 것이다.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것이 어떤 경험이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 의미로 확장한다는 것은, 내가 겪은 일을 나만의 것으로 끝내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속한 사회를 더 건강하고 좋은 곳으로 개선할 수 있다.

나의 업무 경험은 매뉴얼로써 50페이지 문서로 요약되었지만, 그 경험에서 나온 사회적 기여는 그 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50페이지의 문서를 보면서 깨달았다. 사람이 부품으로서만 기능하는 이 악순환을 멈춰야 한다.

나는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대체 가능한 소모품이 아니다.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더 이상 시스템에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사람이다.

메뉴얼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적었다:

"후임자에게: 이 문서는 업무 수행을 위한 가이드일 뿐입니다. 회사는 우리를 교체 가능한 부품들 중 하나라고 여기지만 그 관점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그보다 훨씬 소중하고 고유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색깔과 리듬을 스스로 존중하고 아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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