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의 재구성] 윤석열 1심 판결문 대해부

박소희 2026. 3. 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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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일.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이 내란이라고 인정받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오마이뉴스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김의담, 유영상)의 내란우두머리 1심 전체를 취재한 기사와 1000여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토대로 내란의 공간을 재구성했다. 두 번 다시 헌법과 민주주의가 유린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기록과 기억은 계속 되어야 한다. <편집자말>

[박소희, 이종호 기자]

1. 공관촌 : 울분

그저 술자리 같았다. 윤석열은 군 장성들을 격려한다는 명분으로 종종 그들을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관저로 불렀다. 관저 지근거리에 있는 국방부 공관에서 만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삼청동 안가를 활용했다. 몇 잔씩 돌아가면, 윤석열은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신원식은 수사기관에서 2024년 봄 삼청동 안가 모임에 관해 "시국에 관해 대통령이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비상한 조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진우는 11월 9일 술에 많이 취한 대통령이 '나는 사람들한테 많이 배신당한다'며 한동훈의 이름을 거론했고, 부정선거 이야기도 있었다고 했다. 여인형의 기억도 비슷했다.

- 이진우 "윤석열, 한동훈 언급하며 '나는 많이 배신당했다' 발언
- 여인형이 감별해준 윤석열의 세 가지 거짓말

피고인 윤석열은 2024. 3. 말경 내지 4. 초경 서울 종로구 삼청동 소재 대통령 안전가옥에서 피고인 김용현(당시 대통령경호처장), 국가정보원장 조태용, 신원식(당시 국방부장관),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과 식사를 하였다. 당시 피고인 윤석열은 '야당 관련 문제', '정치 상황'과 관련해 시국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위 저녁식사에 대해 신원식은 수사기관에서 (중략) 대통령께서 시국에 관한 얘기를 사적인 식사자리에서 말씀하시는 상황이었다. 시국에 관해 대통령이 그때까지 진행된 야당 관련 문제, 정치 상황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중략) 그러던 과정에서 대통령이 '정상적인 정치 상황으로 가기 굉장히 어려워졌다.'고 말하셨다. 그러면서 '비상한 조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비상조치'라는 단어는 기억이 나고, '계엄'이라는 단어는 기억에 없다. 당시 대통령이 '군이 나서야 되지 않느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판결문 313-314쪽)
이진우는 군사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인 윤석열이 '정치인, 방송계, 노동계의 부정적 활동으로 인한 국가 운영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군검사의 질문에) 대통령께서 얘기하는 도중에 한마디씩 '이거 잘못된 거 아니냐?' 이렇게 얘기하는 식은 있어도 쭉 정리해서 문제 있다고 얘기하시지는 않은 것 같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이 법정에서 "'잘못된 거 아니냐?'는 약간, 하여튼 술을 많이 드시면 약간 불평 같은 얘기를 하십니다. 하시긴 하시는데 '이거 잘못된 거 아니냐?'는 어투이죠.", "(한동훈 등 일부 정치인을 호명하면서 '당신 앞에 잡아 오라고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11월로 알고 있습니다. 피고인 윤석열이 2024. 11. 9. 더 술을 많이 드셔서 '나는 사람들한테 많이 배신당한다, 내가 살다보면 나는 꼭 배신당한다.'라고 하며 한동훈의 이름을 호명하였던 기억이 있다."
"식사자리 이후 피고인 김용현과 티타임을 가진 것은 맞고, 다만 당시 '확보한다.' 이런 내용은 기억이 없으며, '반국가세력', '종북세력' 이런 거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셨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판결문 321-322쪽)
피고인 김용현은 2024. 11. 9. 저녁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국방부장관 공관 2층 식당에서 곽종근, 여인형, 이진우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다. (중략) 피고인 윤석열은 이들의 저녁식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합류하여 'APEC에 다녀올 것이다', '여러 가지 큰 국제행사, 또 외국과 수출하는 거 이런 거 하려면 그런 것들이 국가 나라가 안정되고 해야 되는데 자꾸 이렇게 너무 시끄러워서 이런 것들이 잘 진행 안 되는 게 난 참 우려스럽다', '부정선거 이런 문제가 있다', '선거도 이런 것도 믿을 수 없게 국민들이 다 믿지 못하게 제대로 이렇게 투명하게 되지도 않고',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하였다. (판결문 327쪽)
 2024년 11월 9일 저녁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국방부장관 공관 2층 식당에서 김용현은 곽종근, 여인형, 이진우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 그림은 증언을 토대로 AI로 생성한 이미지.
ⓒ 오마이뉴스
김용현은 노상원과 상의하며 계엄의 계획을 구체화했다.
피고인 노상원은 2024. 9.경부터 2024. 12. 3. 비상계엄 선포 당일까지 사이에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공관촌 위병소의 검문을 회피하기 위하여 피고인 김용현의 비서관인 양호열이 운행하는 차량을 이용해 약 20여회에 걸쳐 피고인 김용현의 국방부장관 공관을 방문하였고, 특히 2024. 11. 30.부터 2024. 12. 3.까지 4일간은 매일 피고인 김용현의 공관을 방문하면서, 피고인 김용현과 함께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문상호 등 정보사령부 병력 등을 이용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관여 의혹 등을 수사할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산하 제2수사단을 설치·운용하기로 계획하고, 공식적인 직책은 없으나 배후에서 사실상 제2수사단의 수사단장 역할을 수행하기로 하였다. (판결문 26-27쪽)

2. 국회 : 내란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 윤석열은 헌법과 법률을 정면으로 무시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가) 국회 통고 절차의 하자 여부에 대한 판단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헌법 제77조 제4항, 구 계엄법 제4조 제1항). 헌법이 대통령에게 국회 통고 의무를 부여한 취지는 국회가 헌법 제77조 제5항에 따라 부여받은 계엄해제요구권을 적시에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이므로, 대국민담화가 방송을 통하여 생중계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은 국회에 공식적인 통고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야 한다(헌법재판소 2025. 4. 4. 선고 2024헌나8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피고인 윤석열이 대국민담화를 한 것 외에 국회에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공식적으로 통고한 사실은 없고, 대국민담화가 국회에의 통고를 대체한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피고인 윤석열은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시 헌법 제77조 제4항과 구 계엄법 제4조 제1항이 정한 국회 통고 절차를 위반하였다.

나) 문서주의·부서제도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헌법 제82조). 계엄 선포 역시 문서의 형식으로 하여야 하며, 그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가 있어야 한다. 이는 대통령의 권한행사를 명확하게 하고 책임소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헌법상 요구되는 기관내부적 권력통제절차이다. 문서주의 및 부서제도가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의 책임소재를 확실하게 하고 대통령의 권력을 통제하는 절차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 이전에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가 이루어져야 한다(헌법재판소 2025. 4. 4. 선고 2024헌나8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은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이전에 비상계엄 선포문 또는 비상계엄 관련 문서에 부서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획재정부장관 최상목, 외교부장관 조태열, 보건복지부장관 조규홍은 2024. 12. 3. 22:44경 '국무위원들은 서명을 하고 가라.'는 취지의 말을 듣자 이에 대해 항의하며 서명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대접견실을 나갔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오영주와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또한 같은 날 22:48경 서명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힌 뒤 대접견실에서 나간 사실이 인정된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아도 국무위원들이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이후에라도 비상계엄 선포문에 부서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인정될 뿐이다.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된 문서에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윤석열은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를 하였으므로 헌법 제82조를 위반하였다.

다) 국무회의 심의 여부에 관한 판단
헌법과 구 계엄법에 의하면 계엄 선포 및 계엄사령관 임명 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했음에도 피고인 윤석열 및 피고인 김용현이 적법한 소집통지를 거친 국무회의에서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나 계엄사령관 임명에 관하여 실질적인 심의를 하지 않았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라) 비상계엄 선포 시 시행일시, 시행지역 및 계엄사령관의 미공고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할 때 그 이유, 종류, 시행일시, 시행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하여야 한다(구 계엄법 제3조). 이는 국민의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계엄의 구체적인 사항을 국민에게 알리도록 함으로써 계엄 선포권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피고인 윤석열은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 그 시행일시, 시행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하지 아니하였다.

마) 소결
피고인 윤석열은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당시 실질적인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지 않았고,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비상계엄 선포문에 부서하지 않았음에도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으며, 그 시행일시, 시행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하지 않았고,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이 사건 비상계엄은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판결문 741-743쪽)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당시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아니었고, 병력 동원이 필요하지도 않았으므로, 이 사건 비상계엄은 실체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⑴ 피고인 윤석열의 임기가 개시된 후부터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전까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은 행정안전부장관 1인, 검사 12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3인 및 그 직무대행 1인, 감사원장 1인에 대하여 재발의를 포함하여 합계 22건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였다. 그 중 5건은 본회의에서 가결되어 탄핵소추가 이루어졌으나, 그 중 3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이미 기각결정을 선고한 상태였다.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당시에는 검사 1인 및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절차만이 진행 중이었는데, 검사 1인 및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권한행사가 정지된 상황과 여러 건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상황을 두고 국가의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심판청구를 각하하거나 기각할 수 있으므로,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이 평상시의 헌법질서에 따른 권력행사방법으로 대처할 수 없는 국가비상사태를 발생시킨다고 볼 수도 없다.

⑵ 법률안은 국회에서의 심의·의결, 대통령의 법률안 공포 등의 절차를 거쳐 법률로서 확정되어야 그 효력이 발생되는 것이다(헌법 제53조).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의 공포를 15일 동안 보류할 수 있고,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그 기간 내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대통령의 재의 요구가 있을 때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여야 그 법률안을 법률로 확정시킬 수 있다(헌법 제53조 제1항 내지 제4항).

피고인 윤석열과 피고인 김용현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들을 일방적으로 가결시켜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인 윤석열은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회에서 가결된 법률안들에 대하여 재의를 요구하거나 그 공포를 보류함으로써 그 효력이 발생되는 것을 막고 있었으므로, 위 법률안들에 대한 국회의 의결로 평상시의 헌법질서에 따른 권력행사방법으로 대처할 수 없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

⑶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2025년도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었을 뿐, 이에 관하여 본회의 의결이 이루어진 상태도 아니었다. 국회의 예산안 심의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감액 의결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중대한 위기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평상시의 헌법질서에 따른 권력행사방법으로 대처할 수 없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였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

⑷ 피고인 윤석열과 피고인 김용현은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하여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하였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히 어떠한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는 없고, 그러한 의혹이 있다면 조사나 수사, 재판을 통해 해결할 일이지 이를 계엄을 선포하고 병력을 동원하여 해결할 것은 아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부 범죄에 관하여 군사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것일 뿐 형사재판 절차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므로,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비상계엄 선포를 합리적인 수단으로 보기도 어렵다. 또한 2020년 실시한 제21대 국회의원선거와 관련된 부정선거 의혹은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0수30 판결과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0수5028 판결 등을 통해 이미 그 의혹이 대부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⑸ 비상계엄은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선포할 수 있다(헌법 제77조 제1항). 따라서 병력의 동원이 위기상황을 수습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거나 경력만으로 위기상황이 수습될 수 있는 경우에는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없다. 피고인 윤석열과 피고인 김용현이 주장하는 국회의 권한행사로 인한 국익 저해 및 국정 마비 상태는 정치적·제도적 수단을 통하여 해결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상황에서 병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⑹ 비상계엄 선포의 목적은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계엄법 제2조 제2항). 즉, 비상계엄은 중대한 위기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였을 때, 위기상황에서 비롯된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위기상황으로 인하여 훼손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선포될 수 있다. 피고인 윤석열과 피고인 김용현은 이 사건 비상계엄이 야당의 전횡과 국정 위기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호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포된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만으로도 피고인 윤석열과 피고인 김용현이 이 사건 비상계엄을 중대한 위기상황에서 비롯된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위기상황으로 인하여 훼손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판결문 746-749쪽)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자, 국회의원, 보좌진과 직원, 시민들은 계엄군을 저지하고 계엄령을 해제하기 위해 국회로 모였다. 위 그림은 증언을 토대로 AI로 생성한 이미지.
ⓒ 오마이뉴스
계엄 선포 후 윤석열은 국가정보원 1차장 홍장원, 경찰청장 조지호, 계엄사령관 박안수, 그리고 여인형, 이진우, 곽종근 순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주요인사 체포, 국회 봉쇄, 선관위 점거 및 서버 점검을 지시했다. 하지만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을 준비하고,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맞서자 윤석열은 곽종근과 이진우를 찾았다.

곽종근은 12월 4일 0시 31분 윤석열로부터 '아직 의결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한다. 그는 법정에서 "'의결 정족수'를 말할 때, 바로 그 순간 제가 TV를 봤다. 분명히 TV보다가 '의결 정족수가 채워지겠구나' 그 인상이 머리에 박혔다"고 했다. 이 지시는 1공수여단장 이상현의 '대통령님께서 도끼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한다', 707특임단장 김현태의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는데'라는 말을 들었다는 증언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 끝나지 않은 '인원-요원' 집착... "말장난"이라는 곽종근
- "대통령님이라는 단어에..." 윤석열이 눈을 떴다
- 김현태 대령의 변명 "저는 평범한 군인, 억울하다"

피고인 윤석열은 2024. 12. 4. 00:31:04경 자신의 비화폰으로 곽종근에게 전화하여 '아직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는 취지로 지시하였다. 곽종근은 00:32~00:36경 피고인 김용현과 통화하였는데, 당시 피고인 김용현은 곽종근에게 '국회의사당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 밖으로 이탈시켜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곽종근은 00:34경 이상현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의결을 준비하고 있으니 문을 부수고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취지로 지시하였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김현태를 포함한 19명의 병력이 00:32경 국회의사당 233호 유리창을 깨서 국회의사당 본관 2층으로 진입하였는데, 제1공수특전여단장 이상현은 00:39경 작전참모 안효영의 휴대전화를 통해 (국회 경내에 진입해 국회의사당 본관 쪽으로 이동 중인) 1대대장 김형기에게 '의사당 본관으로 가서 지금 애들이 문 걸어 잠그고', '의결하려고 하고, 있대', '문짝 부숴서라도 다 끄집어내', '문짝 부숴서 끄집어내'라고 지시하였다. (판결문 573-574쪽)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뒤, 2시간 여만에 계엄군은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진입했다. 위 그림은 증언을 토대로 AI로 생성한 이미지.
ⓒ 오마이뉴스
이진우는 같은 날 0시 32분과 0시 34분, 0시 35분 연달아 통화했다. 이 직후 수방사 1경비단장 조성현은 이진우로부터 '국회 본청 안으로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조성현은 통화 후 다시 이진우에게 연락해서 '이건 우리가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우리 능력으로도 제한되니 특전사령관과 소통하시라'고 건의했다. 그는 법정에 나와 "군인에게 명령은 되게 중요하다"면서도 "그러나 조건이 있다. 반드시 명령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국가를 방위하는 육군의 사명에 귀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우는 당시 윤석열로부터 '네 명이서 한 명씩 들쳐 업고 나와라',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는 말과 '총'이란 단어를 들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윤석열이 지시한 대상이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인식했고, 다른 사항들도 수방사가 국가중요시설 방호라는 본연의 임무에 맞게 국회를 지키기 위한 맥락에서 나온 대화로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동의하지 않았다.

- 흔들리지 않는 조성현 대령 "감히 3성 장군에게 내가 왜 그랬겠나"
- 철벽에서 줄타기로... 그래도 이진우는 부하는 못 밟았다

이진우는 여의도진지로 이동하고 있던 2024. 12. 4. 00:32, 00:34, 00:36경 세 차례에 걸쳐 피고인 윤석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피고인 윤석열은 이진우에게 '아직도 못 들어갔어?'라고 물었고 이에 이진우가 '국회의사당 본관 앞까지는 병력이 갔는데 그 앞에서 더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라는 취지로 보고하자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서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 '야, 4명이 1명씩 데리고 나올 수 있지 않냐'라고 지시하였다. 위 지시를 받은 이진우는 00:37경 육군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장 이상현에게 전화하였고, 00:42경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 조성현에게 '야, 안에 지금 들어갔다, 인원들 끌어내라', '국회의사당 본관 내부로 진입하여 국회의원들을 외부로 끌어내라'라고 지시하였다.

(중략)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로부터 위와 같은 지시('국회의사당 본관 내부로 진입하여 국회의원들을 외부로 끌어내라')를 받은 조성현은 2024. 12. 4. 00:43경 이진우에게 전화하여 '이 역할에 대해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고 단독으로도 제한되고, 그래서 육군특수전사령관관님과 소통을 한 번 하시라'는 취지로 건의하였는데, 이에 이진우는 '특전사령관이 통화가 안 된다, 알겠다.'라고 말하였다. 이후 이진우는 00:54경 육군특수전사령관 곽종근과 통화하였는데, 당시 곽종근으로부터 '육군특수전사령부 요원들이 국회의사당 본관으로 진입하였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 00:56경 다시 조성현에게 전화하여 '이미 특전사 요원들이 들어갔기 때문에 특전사가 그 의원들을 끌고 나오면 밖에서 (길을 터주는 것을) 지원하라'고 지시하였고, 위 지시를 들은 조성현은 35특임대대 3지역대장 김의규(김의규 등 35특임대대 선발대 14명은 00:24경 담을 넘어 국회 경내로 진입한 상황이었다)에게 전화하여 '이따가 국회의원들하고 특전사가 출입문으로 나오니, 그 인원들이 안전하게 나갈 수 있게 민간인들 사이에서 통로를 만드는 것을 지원해 주라'고 지시하였다. (판결문 604-606쪽)

조지호는 계엄 선포 전 삼청동 안가에서 김봉식과 함께 윤석열, 김용현을 만났다. 그는 실제로 계엄이 선포될리 없다고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 후, 조지호는 오후 10시 48분부터 국회 출입을 전면 차단시켰다가 국회 관계자 항의 등에 오후 11시 7분부터 신분이 확인된 이들만 일시적으로 출입을 허용했다. 그러자 11시 15분, 윤석열이 조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11시 20분, 11시 28분, 11시 30분, 11시 34분에도 이어졌고 국회 출입은 다시 전면 차단됐다. 조지호는 통화 내용을 일일이 구분할 수는 없지만 "처음에는 국회 통제와 관련해서 제가 법적인 근거가 없어서 좀 곤란하다고 말씀드렸고, 후반 통화는 월담하는 의원들 불법이니까 체포하라는 말씀이었다"고 했다. 주요 인사의 위치 추적을 요청하는 여인형의 전화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 윤석열 면전서 '체포 지시' 또 증언한 조지호 "책임 피할 생각 없어"

피고인 윤석열은 2024. 12. 3. 23:15경부터 2024. 12. 4. 00:48경까지 피고인 조지호에게 6회 전화하여 '국회를 통제하라', '월담하는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라'는 취지로 지시하였다. 피고인 윤석열이 피고인 조지호의 국회 전면 차단 지시와 전혀 무관하다면, 위와 같이 6차례나 전화통화를 걸어 반복적으로 국회를 통제하라거나, 월담하는 국회의원을 체포하라고 지시할 이유도 없다.

피고인 조지호는 이 법정에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증인으로 출석하여 '위와 같이 피고인 윤석열의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비록 피고인 조지호는 구체적으로 어떤 통화에서 어떤 지시를 하였는지는 특정하지 못하였으나, 그 진술의 핵심적인 부분은 두 기일에 걸쳐 이루어진 반복된 증인신문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것으로 보이고, 위와 같은 진술이 피고인 조지호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도 없는데 위증죄로 처벌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허위로 진술을 할 이유가 없으므로 그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 (판결문 761쪽)

한편 여인형은 방첩사를 두 갈래로 움직였다. 하나는 주요 인사 체포, 하나는 선관위 확보였다. 여인형은 조지호와 홍장원에게 체포를 위한 위치 추적 협조를 요청했고, 수사단에는 체포대상 명단을 불러줬다. 윤석열은 재판 과정에서 아무리 계엄이 선포됐어도 체포 시도와 위치 추적 모두 불법인데, 법률가인 자신이 지시했겠느냐고 주장했지만 홍장원은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건 아니죠"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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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형은 22:44경 국방부 조사본부장 박헌수에게 전화하여 '계엄이 선포되었으니 수사관 100명을 방첩사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고 박헌수로부터 '확인해 볼게'라는 답변을 들었다. 여인형은 22:46경 국가정보원 1차장 홍장원과 통화하였는데, 당시 홍장원이 '어떻게 된 거냐, 비상계엄'이라고 묻자 '저희들도 모릅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겁니다.'라는 취지로 답변하였다. 여인형은 22:45~50경 방첩사령부 지하 2층에 위치한 위기관리센터 내부 회의실에 들어갔다.

이즈음 여인형은 경찰청장 피고인 조지호에게 전화해 '안보수사요원(또는 수사요원) 100명을 지원해 달라', '선거관리위원회 3곳에 우리가 들어갈 예정이다', '이재명 등 10여 명을 체포할 것인데 경찰에서 위치를 확인해 달라'며 체포 지원을 요청하였다.(판결문 479쪽)
⑸ 여인형은 1처장 정성우에게 '전산팀을 꾸려라, 정보보호부대 포렌식센터(센터장 송제영), 과학수사센터를 포함해서 전산팀을 꾸려라. 868경호경비부대는 네(1처장 정성우)가 통제해서 데리고 나가라'고 말하며 '선관위 4곳(과천, 관악, 여론조사심의위원회, 수원 선거연수원)에 가서 전산실 출입을 통제하고 서버를 확보해라. 그리고 있으면 민간 수사기관(경찰)에 넘겨주되, 상황이 변해서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카피해라. 서버 카피가 안 되면 떼어 와라', '경찰이 거기 주변을 통제할 거야', '현재 상황은 대통령님과 장관님 지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하며 선관위 4곳의 서버실 확보 및 서버 복사 등의 임무를 지시하였다.

⑹ 여인형은 방첩수사단장 김대우에게 '내가 조사본부 수사관 100명, 경찰수사관 100명을 요청했으니 빨리 합동수사단을 구성해라'고 말한 후 '장관님으로부터 명단이 왔다, 명단을 받아 적어라'고 하면서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해주, 조국, 양경수, 양정철, 이학영, 김민석, 김민웅, 김명수, 김어준, 박찬대, 정청래'의 이름을 호명하였고, 이후 '이 인원들을 어디가 좋을까, 수방사 B1벙커가 좋겠다. 일단 그쪽으로 잡아서 이송시켜라. 이송시키는 임무다.'라고 지시하였는데, 당시 김대우가 '이 14명에 대한 혐의가 뭐냐'고 묻자 여인형은 '혐의는 나도 모른다.'고 말하였다. 여인형은 또 군사기밀수사실장 노영훈에게 '지금 수방사 B1벙커로 가서 한 50명 정도 구금이 가능한 시설이 있는지 확인해라'고 지시하였다. (판결문 480-481쪽)

정작 '체포조'들은 상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최우선 체포 대상'인 이재명, 한동훈, 우원식 체포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끌다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후 부대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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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회로 출동한 방첩사령부 방첩수사단 소속 수사관 49명 중 1명인 소령 신동걸은 2024. 12. 4. 01:04경 국회 인근에 도착하였는데, 방첩수사단 출동조 팀장급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현장 사진을 전송하며 '현장 들어가고 있는데 시위 인파가 많습니다.'라는 메시지를 공유하였고, 위 메시지를 확인한 국군방첩수사단장 김대우는 '그러면 우리 수사관들은 아예 국회에서 떨어진 외곽 큰 대로변에 차를 다 그냥 대로변에 주차시키고, 그 안에서 대기해라. 절대 차에서 내리지도 마라, 대기만 해라'라고 지시하였으며, 위 지시에 따라 구민회는 신동걸에게 유선으로 '내리지 말고 옆에서 대기해라'고 위 지시사항을 전달하였다. 위 지시에 따라 신동걸은 차량에서 대기하였고, 이후 최석일 또한 01:11경 위 단체대화방에 'cg(사령관) 지시로 현 상태 대기 지시 내려왔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

(중략) 구민회는 이 법정에서 "국회 주변에 먼저 도착한 신동걸 소령 조가 현장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현장사진을 보내 주었는데, 너무 많은 인파가 있어 물리적 접촉이 있을 것을 우려해 당시 본부에 있었던 김대우 단장이 '차에서 내리지 말고 옆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하여 제가 이를 출동한 수사관들에게 전달하였다. 최석일은 12. 4. 01:11경 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cg(사령관) 지시로 현 상태 대기 지시 내려왔습니다.'라는 메시지를 공유하였다. 나중에 최석일 소령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기획관리실장 박성하 대령이 비상계엄해제요구 의결을 보고 당연히 계엄이 해제된다는 생각에 여인형 사령관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사령관 명의로 대기 지시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01:45경 국회 인근에서 대기 중이던 방첩사 부대원들은 복귀 지시를 받고 차례로 부대에 복귀하였는데, 저는 위 대기지시나 철수지시에 대해서는 전파를 받지 못했다. 최석일 소령이 주로 전파를 받아 단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현장으로 내용을 전파한 것으로 안다."(중략)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판결문 669-670쪽)

방첩사 1처장 정성우는 그날 밤 여인형으로부터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지시"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가서 서버를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다른 간부들과 함께 '우리가 이 임무를 할 수 있는지' 토의했고, 법무실 검토를 거쳐 '출동하되 원거리에서 대기하라'는 방침을 세웠다. 토의에 참여했던 중령 양승철은 "(당시 선관위 출동 지시는) 정당하지 못했던 임무였기 때문에 겁이 났다"고도 증언했다. 대령 이종훈은 "(이런 명령은) 장교로서 고민하는 게 맞다"며 "군인이 적법한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말에는 명령이 적법한지 아닌지를 본인이 고민해봐야 한다는 말이 내재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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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첩사령부 1처장 정성우의 지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로 투입된 868경호경비부대장 양승철과 868경호경비부대 소속 9명 인원들은 01:15경 내지 01:20경 중앙선관위 과천청사 인근 주차장에 도착하여 대기하였는데, 당시 선관위 과천청사로 출동한 팀의 팀장인 송제영(당시 선바위역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라. 거기도 가깝다.'는 이야기를 듣고 01:35경 과천시청 시내버스 6번 차고지로 이동해 대기하였다. 송제영 등 위 인원들은 02:35경 1처장 정성우로부터 부대복귀 지시를 받고 02:50경 방첩사령부로 복귀하였다.

또한 1처장 정성우 지시로 수원 선거연수원으로 출동한 군사보안실장 이종훈은 01:27경 방첩사령부 위병소를 통과하였는데, 01:54경 과천의왕고속도로 의왕휴게소에 집합해 대기하던 중 02:35경 1처장 정성우로부터 부대복귀 지시를 받고 함께 출동한 인원 33명과 함께 02:57경 위병소를 통과하여 부대로 복귀하였다.

마찬가지로 1처장 정성우 지시로 선관위 관악청사로 출동한 정보보안단장 박태주는 2024. 12. 4. 01:03경 출동하여 01:27경 사당역 인근에 위치한 상호명 '○○' 주점 앞에 도착해 대기하였는데, 01:34경 1처장 정성우로부터 '최대한 원거리로 떨어져라. 근처도 가지 마라.', '원거리에서 대기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아 해당 장소에서 계속 대기하던 중 02:34경 정성우로부터 부대복귀 지시를 받고 부대로 철수하였다.

또한 1처장 정성우 지시로 여론조사꽃으로 출동한 사이버보안실장 유재원 등은 2024. 12. 4. 01:03경 출동하기는 하였으나, 유재원 및 함께 출동한 사이버수사과장 안○○, 윤○○은 후속으로 출발하는 팀원들에게 '한강 넘지 마라, 넘으면 안 된다, 현장 현 위치에서 어떻게든 대기해라'고 지시한 상황이었다. 유재원은 01:26경 1처장 정성우로부터 전화를 받아 '출발했냐?', '너희 원거리 대기하고 내 통제 없이는 움직이면 안 되다'는 지시를 받았고, 재차 01:34경 정성우로부터 '너희는 아예 가지 마라, 아예 딴 데 가 있어라'는 지시를 받자 '딴 데 가있을 겁니다. 강 안 넘을 겁니다.'라고 답변하였다. 이후 이들은 잠수교 남단 방면 주차장에 정차해 대기하였는데, 유재원은 02:05경 자신의 팀에 합류할 예정이던 정보보호단 인원들로부터 전화를 받고 재차 팀원들에게 '현 위치에서 대기하고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 강을 넘었느냐, 강 넘으면 안 된다'고 지시하는 등 자신의 팀원들에게 비슷한 취지의 지시를 전파하였으며, 02:35경 정성우로부터 '부대로 복귀하라'는 철수 지시를 받고 부대로 복귀하였다. (판결문 671-672쪽)

방첩사 군인들이 선관위 출동 여부를 고민하던 시점, 정보사는 이미 도착해있었다. 또한 '2수사단' 요원들은 야구방망이, 케이블타이 등을 갖춰 출동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기획자' 노상원은 대량 탈북을 대비해 요원을 선발했고, 혹시나 탈북을 위장한 북한 요원들이 인질극을 벌일 수 있어서 장비들도 준비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선포 전후로 북한의 특이 동향은 포착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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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령관 문상호는 피고인 윤석열의 비상계엄 대국민담화가 진행 중이던 2024. 12. 3. 22:25경 정보사령부 계획처장 고동희에게 전화하여 '선관위 지금 상황이 어떤가?'라고 물었고, 이에 고동희가 '지금 들어갈까요?'라고 말하자 '담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끝나면 들어가라'고 말하였다. 피고인 노상원은 그 무렵 문상호에게 전화하여 '속보 나온 것 봤냐? 확인했냐? 확인했으면 어차피 상부 명령이니까 투입해라'고 말하였다. 문상호는 22:30경 재차 고동희에게 전화해 '지금 들어가면 된다.', '부대원들과 함께 선관위 청사 안으로 바로 진입해라'며 고동희 및 인원들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 진입을 지시하였고, 위 문상호의 지시에 따라 고동희 등 10인은 즉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에 진입하였는데, 진입 당시 권총은 개인이 휴대하되 실탄은 차량에 보관한 상태였고, 진입 후 인원 중 2명(○○○, ○○○)이 정문 경비실을 확보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출입을 통제하였으며, 일부 인원은 전산실로 이동해 전산실을 확보하였다.(중략)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 서버실을 확보한 고동희는 문상호로부터 '서버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서버실 내부를 촬영해서 보내 달라'는 지시에 따라 다른 인원(○○○)과 함께 통합선거인명부 서버, 스토리지 서버 등을 촬영해 이를 문상호에게 전송하였고, 이후 서버실 통합관제실에 인원을 배치해 서버실 출입을 통제하였다. (판결문 470-471쪽)
김봉규는 이 법정에서 "문상호가 저와 정성욱 대령에게 '구체적인 준비된 임무를 지시하라.'고 해서 제게 소속된 인원들을 모아 지시를 하였다. 지시 과정에서 문상호가 제 비화폰으로 선관위 조직도 사진을 보내왔는데, 임무 문건에서 정해둔 확보 대상자와는 2~3명 빼고는 모두 달라 추후 선관위로 출동해서 인사부서에 가서 조직도를 가져와 명단과 비교해 보기로 했다. 저는 제 인원들을 4개조로 나누어, 수방사 B1벙커로 이동해서 선관위 직원들을 수용하고 취조할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방송실로 가서 협조 요청 및 협조하지 않을 시 체포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내부방송 송출, 선관위 전체 직원 명단 및 회의실을 확보, 선관위 전산실로 가서 홈페이지에 부정선고 관련 양심고백 촉구하는 공지 게시 등의 임무를 각 부여하였다. 저희의 주된 역할은 정성욱 조에서 확보한 인원들을 수방사 B1벙커로 이송하는 역할이라 이해했다. 행정을 담당할 인원 2명도 선정했다. 수사단 단장(구삼회)과 부단장(방정환)을 보좌해서 일일상황을 요약해서 보고할 수 있게 준비하라는 임무를 부여했고, 그 중 1명에게는 '12. 4. 아침에 노상원 전 사령관을 중앙선관위로 픽업해서 데리고 오라'는 임무도 부여했다. 피고인 노상원이 편의상 자신을 '단장'으로 부르라고 했지만, 노태악 관련 역할을 하는 정도로만 이해를 했었다. 한편, 구삼회와 방정환이 당시 와 있기는 했지만 별도로 임무 지시를 하거나 받은 적은 없다. 그냥 문상호로부터 '본인들이 단장, 부단장 직을 수행할 것이다.'는 정도 이야기를 들은 것이 전부라고 알고 있다. 저와 정 대령이 각자 임무 부여를 하고 차량 준비 등을 마친 시기가 12. 3. 24:00경 자정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부터는 대기를 하였다. 저는 정성욱 대령 방에 같이 있었고, 계속 TV만 시청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정성욱은 이 법정에서 "문상호가 전부 소집을 하더니 '중대방송이 있을 테니 방송을 보고나서 다시 소집하겠다.'는 취지로 대기 지시하여 일단 대기하였다가, 계엄 선포 방송이 있고 나서 문상호가 다시 전부 소집을 하여 '대통령의 계엄이 선포되었으니 합법이다, 합법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거다, 여러분들은 내일 아침에 가서 임무 수행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한다. 문상호가 그와 같이 말한 후 저하고 김봉규에게 '각 팀별로 데리고 와서 설명해줘라'고 말하였고, 이에 따라 저는 제 인원들을 3층 회의실에 소집해서 임무를 말했다. 인원 명단 불러주고 '아침에 해당 인원이 출근하면 신분증으로 이름 확인하고 회의실로 데려다 놓으면 된다.'고 설명하면서 '케이블타이로 묶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등의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일부 인원이 '케이블타이는 잘 끊어져서 사용하기 어렵다', '나중에 인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하여 케이블타이는 쓰지 않기로 지시했고, 그와 별도로 '야구방망이로 때리면 안 된다. 소리 내는 용도로만 사용해라, 신발주머니를 복면으로 쓰게 하면 안 된다. 안대로 해라.'는 설명 정도만 했다. 당시 제가 '체포'라는 용어나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무렵 문상호 사령관이 선관위 조직도 사진이 촬영된 비화폰을 제게 보여주었는데, 2, 3명 정도 외에는 임무 문건에 기재된 이름과 모두 달랐다. 문상호가 제게 기존 30명 외에 5명 정도의 이름을 추가로 불러주면서 '이 사람들도 추가하라.'고 말하였다. 당시 김봉규도 자신에게 소속된 인원들을 모아 1층 소회의실에서 별도로 지시를 한 것으로 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판결문 476-477쪽)
 윤석열은 결심실에서 김용현을 질책했다. 윤석열은 '두 번 세 번 걸면 된다'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위 그림은 증언을 토대로 AI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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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합참 결심지원실: 미련

정당성도, 치밀함도 갖추지 못했던 12.3 비상계엄은 국회의 빠른 대응과 시민들의 저항으로 선포 158분 만인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 3분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윤석열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 김철진은 국회 가결 후 합참 결심지원실로 온 윤석열이 "거봐, 부족하다니까. (국회에) 1000명을 보냈어야지. 이제 어떡할 거야"라며 김용현을 질책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김용현과 단둘이 있을 때 '상원아, 이제 더 이상 뭐 어떡하냐'라며 김용현과 노상원이 통화하는 장면도 봤다.

- "재판장님!"... 이제 하고 싶은 말 하겠다는 윤석열

결심지원실에는 방첩사 소속 A 중령도 있었다. 그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장관님이 대통령님께 뭐라고 말씀드리자 대통령님이 '그걸 핑계라고 대요?'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러게 사전에 잡으라고 했잖아요'라고 했고, '다시 걸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진술했다. 윤석열은 '두 번 세 번 걸면 된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A 중령은 이 상황을 방첩사 부대원들의 단체대화방에 공유했다. 이 대화방은 현재 삭제됐지만, 방첩사 기획관리실장 박성하는 그 내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 결심지원실 있던 장교 "윤석열 2차·3차 계엄 얘기" 증언
- 김용현 재판 멈춘 그 문자 "대통령께서 '다시 계엄하면 된다'고"

피고인 윤석열은 2024. 12. 4. 01:16경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을 방문하였다. 피고인 윤석열은 당시 전투통제실에 위치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박안수 및 합동참모의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등 주요 직위자들과 악수하며 '수고 많네.', '수고 많다.'라고 격려인사를 한 후 피고인 김용현의 안내에 따라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부에 위치한 결심지원실로 들어갔고, 국방부장관 피고인 김용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박안수, 국가안보실 2차장 인성환, 국방비서관 최병옥 등이 함께 결심지원실로 이동하였다. 피고인 윤석열은 결심지원실 안에서 법령집을 가져다 줄 것을 지시하였고,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 김철진이 법령집을 가지고 와 국방비서관 최병옥을 통해 피고인 윤석열에게 전달하자, 피고인 윤석열은 '다 좀 나가 있어라', '다들 나가고 우리 셋만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하며 피고인 김용현, 박안수를 제외한 인원들을 내보낸 뒤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 국가안보실장 신원식, 대통령비서실장 정진석이 01:46경 전투통제실에 도착하자, 피고인 윤석열은 결심지원실에서 나왔고 '곧 국무회의를 소집하는 대로 계엄을 해제하겠다.'는 취지로 말하였고, 01:47경 내지 01:49경 신원식, 정진석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퇴장하였다.

피고인 김용현은 01:38 피고인 노상원에게 전화하였으나 2초간 통화가 되었고 그 직후 피고인 노상원이 피고인 김용현에게 전화하여 1분 14초간 통화하였으며, 이후 피고인 노상원이 재차 01:41경 피고인 김용현에게 전화하여 2분 12초가량 통화하였는데, 위 통화 당시 피고인 김용현은 '응, 상원아.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하냐?'라고 말하였다. 피고인 김용현은 02:43경부터 02:45경까지 2분 3초가량 피고인 노상원과 통화하기도 하였다.

위 결심지원실에서의 대화와 관련해 A는 이 법정에서 "당시 전투통제실에 있다가 결심지원실에 따라 들어갔다가 나왔다. 결심지원실에 들어간 후 피고인 윤석열이 피고인 김용현에게 '그걸 핑계라고 대요.', '그러게 사전에 잡으라고 했잖아요.', '다시 걸면 된다.', '두 번 세 번 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김철진은 이 법정에서 "피고인 윤석열이 피고인 김용현에게 '국회에는 몇 명이나 투입했느냐?'라고 물었고, 피고인 김용현이 '500여 명 정도'라고 답변하자 이에 '거봐 부족하다니까. 1,000명은 보냈어야지, 이제 어떡할 거야?'라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대통령께서 전투통제실 들어오셔서 '국회에 몇 명 투입했는지' 물어보았고, 결심지원실로 이동하면서 물어보았는데 김용현 장관이 대답을 잘 못했고, 결심지원실 들어가서도 같은 질문을 했는데, 이때 김용현 장관이 '500명 정도'라고 답변하자 대통령께서 '거봐 부족하다니까, 1,000명은 보냈어야지, 이제 어떡할 거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저는 기억한다. 장소와 시간이 오버랩되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저는 국회법 책자를 찾아 가져다드리고 바로 결심지원실에서 나와 그 뒤의 일은 잘 모른다.", "장관님께서 02:30경부터 03:10경까지 대통령실에 회의를 다녀오셨다. 회의에 가기 전 결심지원실에서 여러 인원과 통화를 하였는데 그중 '응, 상원아,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하냐?'는 취지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평소 장관님께서 친근한 인원, 굉장히 친분이 두터운 인원들은 이름을 부르는 스타일이 있다. 장관님 수행하면서 정확한 내용은 들을 수 없으나 가끔 차를 타고 갈 때나 '응, 상원아'라고 하면서 전화를 받으시는 경우가 두세 번 정도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군내에 장성인사가 있고 나서 노상원 예비역 장군에 대한 소문이 돌아 안 그래도 장관님께 한 번 여쭤보려던 찰나여서 당시 새벽이었지만 '응, 상원아'라는 통화를 하셨을 때가 명확하게 기억난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판결문 657-659쪽)

윤석열은 국회 가결 직후인 12월 4일 오전 1시 6분과 13분에 걸쳐 이진우와 통화했다. 이진우는 이 통화에 대해서 입을 닫았지만, 목격자들이 있다. 첫번째 목격자는 그의 부관 오상배였다. 사령관 차량에 함께 탑승했던 오상배는 증인으로 나와 당시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했다.

"거의 계엄 해제 결의안 통과되고 5분 내에 통화가 있었던 것 같다. 조각조각 기억이 나는데, 제일 먼저 기억 나는 것은 (대통령이 사령관에게) '지금 190명이 들어와서 의결했다는데 실제로 190명이 왔는지는 확인 안 되는 거니까 계속 해라'는 취지다. 두번째는 '그러니까 내가 선포하기 전에 병력을 미리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해서 일이 뜻대로 안 풀렸다'는 취지로 얘기했던 것 같고. '결의안이 통과됐다고 해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 하면 되니까 너네는 계속 해라'는 취지로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너네는 계속 해" 수방사령관 부관이 증언한, 그날 윤석열의 전화 네 번

윤석열의 변호인들은 오상배는 조수석에, 이진우는 뒷좌석에 앉아있던 점을 거론하며 "청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가"라고 비꼬았다. 운전관 이민수의 '대통령과 사령관의 통화를 들은 기억이 없다'는 수사기관 진술을 내세워 오상배의 신빙성을 깎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몇 달 뒤 법정에 나온 이민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통령이) '총'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계엄을 다시 하면 된다'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민수는 수사 과정에서는 너무 긴장했고,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됐지만 "자꾸 침묵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 "그래서 막 정의감 불탔나?" 윤석열 변호인단이 젊은 군인을 대하는 방식
- 윤석열 쪽 요청 증인의 양심고백 "침묵한 제가 부끄러웠다"

김용현은 곽종근을 찾았다. 당시 방첩사 소속으로 특전사에 파견돼 전투통제실에 있었던 대령 김영권은 계엄 선포 후부터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그는 4일 오전 2시 13분, 휴대하고 있던 메모지에 "MND 현 병력 상황 하문. 선관위 투입? → 국회 X, 안됩니다. 미쳐가는구나. 다 ●●'라고 썼다. 국방부 장관(MND, Minister of National Defense)이 특전사령관에게 선관위 추가 병력 투입을 문의했고, 곽종근은 거부했던 상황에 관한 기록이었다. 김영권은 "이미 국회에서 계엄 해제 의결이 끝났는데 너무 어처구니없고 어이가 없어서 '이것은 반드시 증거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메모했다"며 "(까맣게) 지운 것은 '수사'라는 단어"라고 증언했다.

- "미쳐가는구나... 다 수사대상" 12월 4일 오전 2시 13분의 메모

피고인 김용현은 2024. 12. 4. 01:06경 육군특수전사령관 곽종근에게 전화해 '어떻게해야 되냐'고 물어보았는데, 이에 곽종근은 '철수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답변하였고,이에 피고인 김용현은 '알았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이후 피고인 김용현은 01:32경 곽종근과 재차 통화하였는데, 당시 곽종근이 '병력을 좀 빼겠다.'는 취지로 보고하자 이에 혼자말로'조금만 더 버텼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였다. 피고인 김용현은 02:13경 육군특수전사령관 곽종근과 재차 통화하며, 곽종근에게 현 병력 상황을 물은 후 '병력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였는데, 이에 곽종근은 '장관님, 지금 국회에서도 병력들이 다 철수했는데 선관위로 다시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어렵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하였다.
(판결문 661쪽)

김영권은 이 법정에서 "비상계엄 당시 방첩사령부 550 방첩부대장으로 특전사에 대한 보안 및 방첩 관련 업무를 지원했다. 12. 3. 23:00경 특전사령부 전투통제실로 이동했다. 이미 곽종근을 포함해서 박정환 참모장, 각 주요 참모들, 한 20~30명 되는 일반 전투 참모단이 다 소집되어 있었고, VTC에 각 여단장들이 전부 등장해 있었다. 굉장히 소란스러웠고 긴박한 상황이었다. 제가 기억하는 곽종근 사령관은 굉장히 차분한 분인데, 그때는 좀 흥분한 상태로 긴박하게 이것저것 지시하고 확인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그랬다. 전투통제실에 입실한 후 20~30분 정도 지났을 때 작전처장 남○○ 대령이 작성한 노트를 보고 김○○ 대위를 시켜 노트를 촬영하였다. 군 관련 정보수집이 방첩사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가 된 후 곽종근 사령관이 02:13경 김용현 장관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는 장내가 다 정리가 돼서 김용현 장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곽종근 사령관의 답변은 정확했다. '장관님 지금 국회에서도 병력들이 다 철수했는데 선관위로 다시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어렵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국회의 결의가 있었는데 다른 곳에 병력을 출동시키라는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고 이거는 반드시 증거로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에 다음과 같이 메모를 했다. 'MND'는 국방부장관을 의미한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판결문 685-686쪽)

윤석열은 국회 가결 후 3시간 23분이 흐른 12월 4일 오전 4시 26분에서야 대국민 담화로 계엄 해제를 알렸다. 그는 '국회 절차에 하자가 있었지만 수용했고, 국무위원 소집에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해명해왔다.
피고인 윤석열은 2024. 12. 4. 03:00경 대통령실에서 국방부장관 피고인 김용현, 육군참모총장 박안수 등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당시 피고인 윤석열은 '국무위원 소집에 시간이 걸려서 계엄해제 선언이 늦어지고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며 피고인 김용현에게 '군의 계엄상황을 먼저 종료시키라'며 군 병력의 철수를 지시하였고, 위 지시에 따라 피고인 김용현, 박안수는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로 복귀하였다. 피고인 윤석열은 03:47경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에게 전화하여 3분 39초가량 통화하였다.

피고인 윤석열은 04:20경 국무회의를 개최하여 그 심의를 거쳐 04:26경 대국민담화를 통해 이 사건 비상계엄 해제를 공표하였다. (판결문 660쪽)

윤석열은 끝까지 12.3 비상계엄은 "헌정 붕괴와 국정 마비의 국가 위기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주권자를 깨우기 위한 조치"였다며 "계엄을 해제하고 관저로 돌아와 안전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안심했다"고 했다.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는 내란이 될 수 없다"는 말도 남겼다.

2026년 2월 19일, 법원은 윤석열의 주장을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른바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여 둔다. 비상계엄 선포의 목적은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계엄법 제2조 제2항). 즉, 비상계엄은 중대한 위기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였을 때, 위기상황에서 비롯된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위기상황으로 인하여 훼손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선포될 수 있다. 또한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즉시 대통령은 평상시에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서서 국민의기본권을 제한하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권한을 보유하게된다(헌법 제77조 제3항). 그러므로 중대한 위기상황을 병력으로써 극복하는 것이 비상계엄의 본질이므로, 그 선포는 단순한 경고에 그칠 수 없고, 국민의 권리의무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도 위와 같은 피고인 윤석열과 피고인 김용현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위와 같은 주장 자체로 이 사건 비상계엄이 중대한 위기상황에서 비롯된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위기상황으로 인하여 훼손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그 본래의 목적으로 선포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판결문 1035쪽)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및 이 사건 포고령의 공고 행위는 그 자체로 앞서 본 국헌문란 목적을 실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란죄에 있어서의 폭동행위에 해당한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면, 육군특수전사령부와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인들과 경찰의 국회출입통제 행위 및 국회 봉쇄 시도 행위는 모두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 등을 종합하면, 국군방첩사령부 소속 군인들과 경찰이 합동 체포조로 편성하여 국회의원 및 정치인 등을 체포하려고 시도했던 행위도 모두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 등을 종합하면, 정보사령부와 육군특수전사령부 소속 각 군인들과 경찰이 중앙선관위 등을 점거하고 출입을 통제한 행위 또한 모두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 (판결문 1036-1042쪽)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및 포고령의 공고, 국회 봉쇄 행위, 국회의원 및 정치인 등 체포조 편성 및 운영, 중앙선관위 등 점거·서버 반출 및 직원 등 체포 시도 등의 폭동행위는 대한민국 전역, 그렇지 않더라도 국회와 선관위 등이 위치한 서울과 수도권 등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1) 이 사건 비상계엄의 선포 및 포고령의 공고로 인하여 전국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집회·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이 금지되었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령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으며, 파업·태업·집회 행위가 금지되었고,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의 현장 복귀가 강제되었으며, 이를 위반하는 국민들은 영장 없는 체포·구금·압수수색의 대상과 피의자가 되는 위험에 노출되었다. 이 사건 포고령의 효력이나 실제 형사처벌 여부에 대하여는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은 이 사건 포고령에 의거하여 영장 없는 체포·구금·압수수색을 당할 위험과 피의자가 될 위험에 노출되었으므로, 이 사건 비상계엄의 선포 및 이 사건 포고령의 공고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 전역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2) 이 사건 계엄선포 후 계엄군은 단독군장 등을 갖추고 개인화기를 소지하여 다수의 병력으로 버스 등을 이용해 국회로 출동하였고 경찰은 국회 외곽에서 각 국회 출입문을 맡아 국회 외부에서 내부로의 진입을 전면 차단하였다. 계엄군의 국회 침투 과정에서 국회의사당 안과 밖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기물이 파손되었으며, 계엄군을 저지하는 국회 방호직원들은 부상을 입었다. 경찰이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국회 진입을 차단하자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대치상황이 계속되었고, 국회의원들은 월담하여 국회 경내로 진입할 수밖에 없었으며, 일부 국회의원은 계엄해제요구 의결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리고 위와 같은 과정은 언론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국회는 국민들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이고, 계엄군과 경찰에 의한 국회 봉쇄는 곧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중단을 의미한다. 계엄군과 경찰은 국회의 의결을 방해하려고 하였고, 실제 계엄군은 계엄해제요구 의결이 진행 중이던 국회의사당 안에 진입하기도 하였으므로, 이 사건 비상계엄 당시 계엄군과 경찰의 국회 침투 및 통제 시도 활동은 대한민국 전역, 그렇지 않더라도 국회와 선관위 등이 위치한 서울과 수도권 등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판결문 1042-10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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